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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Nov 30. 2023

내가 보는 세상 누가 만듬? | 처음 통역을 해 보며

2023년 11월에 느낀 것들

1. 우리는 얼마나 서구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


넷플릭스에 <오스만 제국의 꿈>이라는 시리즈가 있다. 15세기 오스만제국이 어떻게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을 정복하고 더 나아가 현재의 동유럽까지 진출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큐 시리즈이다. 배우들이 나와 그 당시를 재연하고 중간중간 역사학자들이 등장해 코멘트를 넣는 신선한 형식의 시리즈다. 

파트2에서는 지금의 터키를 정복한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 2세가 왜 유럽 정벌에 나섰고, 그 정벌이 동유럽에서 그쳤는지를 보여준다. 그를 동유럽에서 막은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드라큘라 백작이다. 사실 드라큘라는 백작이 아니라 당시 루마니아의 왕이었다.


 “드라큘라 덕분에 오스만제국의 확장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이슬람 세력)이 유럽으로 오지 못하게 막은 영웅이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은 나는 파트2가 끝나갈 때쯤 메흐메드와 드라큘라가 화끈하게 한 판 붙는 것을 기대했다.

  "메흐메드와 드라큘라가 마지막으로 전장에서 만남 > 드라큘라의 확실한 기선 제압 > 메흐메드 런?"

메흐메드2세로 나온 배우 귀여운듯 ^^

하지만 실상은 내 상상과는 달랐다. 메흐메드는 긴 전쟁에 지쳐 전쟁을 그만둔 거였다. 드라큘라는 이미 재기하지 못할 만큼 힘이 빠져 도망간 상태였다. 메흐메드는 형에게 진절머리가 난, 형보다 메흐메드와 더 친한 드라큘라의 동생을 왕으로 앉힌 후,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갔다. 그리고 15년 후 메흐메드는 콘스탄티노플 거리에서 이미 세상과 하직 인사한 드라큘라의 머리와 조우한다.


<오스만제국의 꿈>을 같이 본 남편에게 말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드라큘라가 오스만제국의 진출을 막은거야? 메흐메드도 수도까지 치고 올라가고, 마지막 전투에서 진 건 드라큘라잖아. 그만 둔 건 메흐메드의 선택이고. 그런데 이걸로 드라큘라가 유럽을 지킨 거라는 거야?”

 “루마니아 이후로는 안 갔으니까.”

 “아니 그건 드라큘라가 힘이 세서가 아니고 메흐메드가 선택한 거잖아.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건데?”

 “뭐 어쨌든 거기서 그만뒀으니까.”


“이기는 편 내 편. 힘 센 놈이 장땡. 역사는 결국 승자가 쓰는 것.”
“우리가 배운 역사는 얼마나 서구의 시각으로 쓰여있나?”

이것만 본다면 딱히 드라큘라가 유럽을 구한 느낌이 아니다. 메흐메드는 꽤 괜찮은 왕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스만제국은 남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일대를 600년 이상이나 지배한 대제국이었다. 초기 몇 백년 간 유럽은 오스만제국을 두려워 했다.

이런 나라인데 우리는 역사시간에 오스만제국을 얼마나 배웠나? 여전히 서구가 패권을 가지고 있는 세상에 사는 지금 우리는 무얼 보고 느끼고 있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PS. 참고로 그 시절 메흐메드는 인센티브를 바로바로 꽂아주는 아주 좋은 리더였다. 그에 반해 드라큘라는?

물리친 적의 수대로 은화를 지급하는 메흐메드 VS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널 죽일 거라고 말하는 드라큘라 (산 사람을 말뚝 박아 전시하는 드라큘라는… 정말 역겹다. 주인공인데 이렇게 정이 안 가는 건 처음.)



2. 첫 통역사 일을 하며 느낀 점.


11월 7일부터~10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K-Contents Expo가 열렸다. 좋은 기회를 얻어 거기서 통역사로 일했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사실 이 일을 한 이유는 영어를 까먹을까봐..

한국의 드라마, 애니메이션, 캐릭터 회사들과 유럽의 바이어들 간의 비즈니스 미팅을 도와주는 통역 일이었다. 다행히 사고치지 않고 잘 하고 옴.


느낀점.

1) 벨기에에서 한다고 해서 벨기에 회사들만 오는 게 아니라 유럽 전역, 심지어 이란에서도 바이어가 왔다. 그래서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하는 사람이 필요했던거다. 이런거 보면 유럽은 정말 나라들끼리 교류도 많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벨기에에서 하는 행사인데 프랑스에서까지 통역할 사람을 찾는다. 벨기에에 한국 사람이 많이 없는가? 정말 유럽의 국경은 참 희미하다.


2) 다양한 회사들을 보며 시야를 넓히거나 다르게 생각해 볼 가능성을 여는 느낌?

프랑스에 있는 회사인데 유럽 뿐 아니라 아프리카 시장까지 담당하는 회사, 이탈리아 회사인데 중동 쪽 방송사와 밀접하게 일하는 회사 등을 봄.  >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잘 안 된다면 그것이 먹힐 만한 곳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런 지역까지 한류가 불고 있다는 사실. 인적자원 손실(a.k.a. 출산율 나락)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한국의 미래지만 그래도 문화는 잘 버티고 있다... 제발 계속 버텨주세요. ㅠㅠ

3) 아예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 


- 내가 맡았던 회사는 2021년 한국을 강타했다던 드라마 '옷소매 붉은꽃등'의 제작사였다. 내가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면 정말 유명한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를 제작한 분과 3일동안 옆에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아이디어를 짜고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글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 특히 아직은 내게 넘사벽으로 느껴지는 '픽션'을 쓰는 것에 대해 여러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셔서 참 감사하다.


- 아이디어만 파는 회사의 존재. 콘텐츠로 만들면 좋은 주제를 늘 생각하고 그 컨셉을 판매하는 회사도 있다. 그리고 국제콘텐츠마켓과 같은 마켓플레이스가 있어 아이디어와 컨셉, 포맷 등을 사고 팔 수 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된 사실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내 분야의 사람들만 만나고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렇게 아예 다른 분야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세상은 넓다는 생각이 든다.

컨셉과 아이디어기에 특허를 낸 것도 아니라 누군가 그것을 훔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재 소송 중인 게 하나 있다던 대표님의 말씀...


몇 년 전 프랑스 TV에서 ‘복면가왕’ 포맷을 구매해서 프랑스판 복면가왕 ‘Mask Singer’를 만들었는데. 꽤 인기 있었음. 

https://welcon.kocca.kr/ko/info/trend/1939283


- 다양한 통역사들의 이력: 사실 나만해도 프랑스보다는 아직 싱가포르와 한국이 더 친숙한 사람인데 그들 눈에도 나의 이력이 신기해 보였겠지만 나 역시 그랬다.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에서 박사과정과, 법학 석사과정을 다니는 학생, 조각가, 작곡가, 패션디자인까지...  특히 조각가나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처음 봤다. 내가 예술의 나라에 있다는 걸 실감한 순간.


4) 영어와 통역에 대한 생각.

-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직접 부스에 들러 미팅을 하는 바이어들을 보며 언어의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해 봄.

- 한동안 영어를 자주 쓰지 않았어도 영어모드 ON을 하니 그래도 많이 죽지 않은 것같아 다행이다. 내 영어가 그래도 일정 수준에 올랐다는 증거겠지?

- 통역 일 의외로 재미있었다. - 바이어의 질문을 들으며 키워드와 핵심을 파악하고 그걸 한국의 콘텐츠 제작사에게 전달해 주는 일, 내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 전달하지도 못한다.

- 영어는 결국 단어 싸움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낌. 그 분야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모르면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음. 컨텐츠, 방송 쪽의 단어를 부랴부랴 정리함.


* 그리고 브뤼셀에서 비바람 불던 어느 저녁, 인생 처음 소매치기를 당함. 

그동안 약 30개국 되는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소매치기 한 번 당한 적 없는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는데... 

 ‘어디다 정신을 두고 다니는 거야?’

이제 누구한테 이런 말 못하겠다. 소매치기는 예고 없이, 눈깜짝할 사이란 말도 적용 안 되는, 그 어떤 느낌도 없이 찾아온다................ (이렇게 적으니 꼭 첫눈에 반한 누군가를 만난 듯한 묘사지만 ..)

 휴대폰, 신용카드, 비자 등 잃어버리고, 경찰서에 가서 짧은 불어로 더듬더듬 신고했다. 소매치기가 잦아서 심드렁할 줄 알았지만 그래도 나름 공감해 주려고 노력하는 브뤼셀 경찰이었다. 그래도 잃어버린 물건이 다시 내 손에 오진 않겠지만.


누굴 탓하겠어,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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