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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tta Dec 12. 2015

첫 날갯짓 준비

4년간의 결과 보고서

    마지막 학기가 끝났다. 목요일 시험을 끝으로 공식적인 내 대학생활의 학기가 모두 정리된 것이다. 

화요일 열심히 답안을 적어내려 간 후 시험지를 제출하러 가는데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스터디를 포함해 선생님과 함께한 영문학 토론 시간이 세 번이나 됐다. 그렇다고 해서 가까운 사이도 먼 사이도 아니었지만, 나를 쳐다보시길래 조그맣게 속삭였다.


"선생님, 저 졸업해요. 드디어 저.. 졸업을 준비해요."

"어머, 그래. 알아. 벌써 졸업반이니."

"마음이 허- 해요. 하하 섭섭한 건지 속 시원한 건지 조금 아릿합니다."

"내 연구실로 찾아오렴. 언제든지 환영이야."


  시험을 치고 있는 다른 학생들이 있어 그저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시험장을 나왔다. 

복도에서 재잘재잘 어떤 식으로 답안을 작성하였냐는 후배들의 요란한 대화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몇 년 전의 나도 분명 저랬을 테지... 시험장을 나오자마자 책일 뒤적이고 답안 하나하나에 간절했던 순간도 이제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씁쓸한 생각이 엄습해오면서 정말 마지막 시험이 남은 상태였지만 모두에게나 나는 학교를 떠날 이로 비친다는 사실에 다시 알 수 없는 오묘한 빛깔의 기분에 휩싸였다.



  나의 지난 4년을  되돌아보면 늘 기분이 참 묘하다. 중간에 휴학 생활까지 포함하면 5년이다. 

20대 초반을 대학교 근처와 저 멀리서 보냈고 나는 이제 20대 중반이 되었다.

20살,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얻은 자유와 동시에 부여되는 책임에 나는 많이 방황했다.

딱히 목표의식 없이 대학생이 되면서 혼자 똑똑한 척 잘난 척은 다한 듯 싶다.

그저 그렇게 2학년이 되었고 슬슬 대학생활에 적응하는 듯 싶었다.

딱 대학 생활의 중간에 나는 휴학을 했다. 가장 다이내믹하였던 한 해였고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했다. 일말의 후회도 아쉬움도 전혀 없었으며 나는 늘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 품에서 즐겁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복학. 일 년간의 휴식기 후에 돌아온 학교는 더욱 차가웠다.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내 또래들을 만나면 취업 이야기에 술잔을 기울였다. 학칙은 바뀌었고 성적 따기는 더욱 어려워졌으며 준비가 안된 나에게 다들 어디 갈 거냐고 자꾸 물어봤다. 주변의 몰아세움이 나의 안정을 서서히 깨트렸고 나는 이리저리 여러 가지 활동의 꽁무니만 쫒아다니다가 다시 방향을 잃었다. 



  두개의 시험을 끝내고 마지막 시험을 앞둔 상태, 가운데 날인 수요일에 나는 따르던 선생님을 찾아뵀다.

늘 과감한 선택이 내 앞에 다가올 때만 그들의 연구실을 찾아가는 것 같아 다소 민망했지만, 늘 그랬듯이 선생님은 나를 담담하게 반겨주셨다.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니?"

"선생님 그냥 감사  인사드리러 노크했어요."

"시험은 끝났니? 이제 졸업이지?"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당장 시험감독을 앞두던 선생님은 나에게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내주셨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오랜만에 속내를 다 털어놔서 속이 후련했던 것일까 아님 내 치부를 들켰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던 것일까.

나는 선생님 앞에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다고, 내 지난 대학 4년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고, 나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고 그리고 마음에 꼭꼭 묻어놨던 악랄한 질투마저 다 펼쳐놓았다. 휴지를 들고 촉촉하진 눈가만을 닦아내기엔 나의 울음이 너무 커져버렸다. 할딱대면서 나는 잘도 울었다. 


  대담한 척하면서 졸업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무식한 상상에 이제 나도 진절머리가 난 듯 싶었다.

견고하지 못한 나의 미래설계에 나는  또다시 방향성을 잃었다. 내가 꽤 유쾌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 일을 왜 하고 싶나요? 이 일을 위해 어느 수준의 실력이  준비됐나요?"라고 묻는 멍청한 컴퓨터 앞에 완벽한 소설을 써 내려가지 못해, 아님 이것이 소설임을 들켰다는 사실에 마음이 꽤 아프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에 아프다. 지난 나의 경험들이 모두 헛되었고 종이 한두 장으로 내가 평가받는 사실에 누가 바늘로 나를 쿡쿡 찌르듯 아리다. 어미새의 응원과 부단한 노력으로 푸드덕 대는 아기새의 첫 날갯짓으로 그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으면서 축하받을 수 있을까 아님 둥지 밖이 위험한데 당차게 나가려고만 한다고 핀잔만 받을 것인가.

칭찬과 축하를 받고 싶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서 나의 날갯짓이 힘이 없다. 이러다가 다시 다리를 접고 앉아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만 낼름 받아먹는 무기력한 존재로 퇴보할까 두렵기까지 한다. 나는 나의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다. 이제까지의 방학과 다르게 보내야 할 마지막 방학에 조금은 겁이 난다.


  물론 2월의 졸업식 전 까지는 대학생이라는 소속을 달고 있겠지만, 앞으로 남은 2달 남짓한 시간들과 남은 2016년의 날들이 걱정된다. 학생과 사회인, 나는 이 사이에 있다. 소속을 잃은 채 방황하고 싶지 않다. 애써 밝은 척 긍정적 인척 하지만 나는 다가오는 겨울이 또다시 나를 위협하는 방황의 시간들이 될까 봐 겁이 난다. 그리고 이 방황과 나의 두려움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에 그 겁은 저지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간다.

  나는 정말 여전히 어리고 아름다운 것일까? 나는 언제쯤 혼자 우뚝 설 수 있을까?

나의 빛은 나에게 냉담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점점 꺼져간다. 

대학생활 4년의 결말이 이런 식이라니, 참으로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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