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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tta Sep 17. 2017

떠나요 혼자서

떨어져 있음에서 오는 힘

까매진 등이 간지럽다. 

노출되지 않았던 하얀 살결은 탐스러운 갈색빛으로 물들었고 그 자리가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는 중 

뒤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온 지 이틀 차, 여전히 지난 일주일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쉽게 볼 수 있는 이 진부한 한마디가 나에게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실 직장생활이 이년도 채 되지 않은 나에게 잠깐 자리를 비운다는 것마저 사치라고 생각했으니까 - 


한 달 전 비행기 티켓을 사고 떠나기 삼일 전 숙소를 예약하고 무계획 게으름뱅이의 일주일 호치민 여행이 시작됐다.작년 여름 이후로 처음 떠나는 여행이었고, 동남아는 참. 몇 년 만인지 기억도 가물가물 

자유여행, 배낭여행 이름을 붙이기는 좀 애매하니 요양 여행이라 칭한 채 달랑 수영복과 여권을 챙겨 집을 나섰다. 


밤을 가르는 수많은 라이더들 

무계획이다 보니 하는 일이라곤 리조트에 누워 아침부터 칵테일을 마시고 첨벙첨벙 수영을 하기

넘실거리는 바다를 뒤로 수영장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챙겨간 밀린 책 읽고, 

가격도 묻지 않은 채 후딱 끓여 서 나오는 쌀국수를 허겁지겁 먹었다. 


보통 생각을 정리하러 여행을 가는데 이번 떠남은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주문해 먹고 예약한 숙소에서 빈둥대다가 싸구려 쪼리를 신은채 잘도 돌아다녔다.

35도 가까이 되는 더운 동네로 다시 돌아오니 신경 쓸 새도 없이 피부는 익어가고 예쁘게 네일을 바르고 온 발에 하나 둘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분명 요양하러 왔는데 피곤한 건 뭘까 - 




열이 잔뜩 오른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차가운 마스크팩을 얼굴에 올렸다.

밀린 예능을 보려고 랩탑을 열었고, 지난 효리네 민박을 틀었다.


민박집 사장님이 손님에게 묻는다.

휴가에 이렇게 멀리 나오면 안 피곤해요?

하루 종일 사람을 대하는 영업 부서의 손님은 답한다.

여행에서 오는 힘이 있어요.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힘이 오지요.


나의 지난 일주일을 딱 대변하는 답변이었다.

피곤한데 정말 요양하러 간 건데 그 피곤함 속에서 느껴지는 뿌듯함과 개운함

지겨운 의자에 앉아있는 게 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향과 익숙지 않은 장면에서 느끼는 떨림

뭐라 딱히 명칭이 없는 이 힘이 다시 나를 깨웠다.



베트남 모자를 쓴 채 귀가한 나에게 재밌게 잘 보냈니?라고 묻는 플랫 메이트에게 쉴 틈 없이 재잘대며 답변했다.

너 엄청 활기차, 즐거웠나 보구나 라고 이야기해주는 그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여행이 주는 힘이란, 

다섯 시간 하늘을 날고 케리어를 질질 끌며 시티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하기까지 - 

피곤해 쓰러질 것 같아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느낀 여유가 이렇게 나를 들뜨게 한다니! 


기분 좋게 마무리된 여름휴가

언제 연차를 쓰고 다시 다녀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여행으로부터 받은 힘 아껴 써가면서 잘 지내야겠다. 

선택과 집중 중 긍정적인 집중도가 최대치인 현재, 더욱 열심히 일한자 다음 떠날 날을 기약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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