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왔고 잘 살 예정인 아홉수의 고백
곱씹어 볼 새도 없이 시간은 잘도 흐른다.
작년 이맘때쯤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생각도 안 날 만큼 속절없이 지나간 올초, 나는 그렇게 29살이 됐다. 오래된 벗은 아홉수라며 울먹이더니 결혼을 준비하고 나는 퇴사를 했다. 어느 유행처럼 돌던 파이팅 넘치는 스물아홉이 제목에 들어간 책들과 달리 스산하게 시작된 나의 마지막 20대. 야간 도주를 하듯 허겁지겁 중국 땅을 떠났고 씹던 껌을 뱉듯 회사를 떠났다. 대학 졸업 후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한 곳에 버티자 했던 마음가짐은 사년이 지나니 불씨가 죽었고 이 도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와 함께 미련 없이 귀국했다.
지난 십 년의 세월은 앞선 십 년보다 더 다이나믹했다. 그 이전의 십 년은 기억도 안나니 비교대상이 못되고. 무엇보다 내가 우선, Me first 갑옷을 장착하게 됐다. "넵넵 알겠어요"를 하다 보니 정말 물로 보는 이도 있었고 "그래그래 좋아 좋아"를 하다 보니 줏대도 없는 사람이 됐다. 친절은 유지하되 무조건 죄송해하지 않기. 원하는 바를 상황에 맞게 말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무조건 나를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지금처럼 나를 우선으로 두고 살기로 했다.
그간 야무지게 빚은 습관도 있다. 나를 우선시하다 보니 나의 정신과 신체 건강 또한 무너지지 않게 노력 중이다. 척추를 보호하고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한 요가가 벌써 2년, 여전히 주 3회 이상 소규모 요가 스튜디오를 다니며 수련하고 있다. 처음에 안되던 자세가 가능해지고 단순히 몸 움직임을 넘어 정신과 마음을 단련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다음 십 년도 꾸준히 할 예정이다. 더불어 대학생 때부터 매일같이 하는 취침 전 20분 명상. 초반에는 온라인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잔잔한 노래도 틀고 했지만 지금은 가부좌로 무사히 끝내고 있다. 각종 고민과 노고가 사라지는 명상 혹은 멍상의 시간은 이제 하루를 마무리함에 있어 필수 요소. 전자파 단식 또한 꼬박 지키고 있다. 연락을 주고받고 할 이가 적으니 하루 정도는 휴대폰과 컴퓨터를 아예 보지 않는다. SNS를 보며 타인의 현재를 부러워하는 대신 밀린 집안일이나 운동, 외국어 공부에 힘쓰는 시간이 보다 소중해졌다.
그 와중에 빼놓을 수 없는 연애사, 나의 이십 대에는 울고 불며 진득한 연애도 있었다. 지난 그와 데이트 전 설레하며 준비를 하던 날도 있었고 지난 그의 문자를 기다리며 밤을 새기도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한 네 번의 연애, 그 후 연락처도 모르게 된 남자들은 누군가를 나보다 애정하며 지금을 보내겠지.
부모와 이성 외 다른 애정을 주는 이도 함께했다. 학창 시절의 벗도 머리가 커갈수록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 더욱 가까워지기도 혹은 세상 끝까지 내편이라 생각했던 벗과 멀어지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를 끔찍이도 걱정하는 이를 만났고 그만큼 생각나는 이도 생겼다.
인생의 스물아홉 번째 봄, 아니 여름의 시작은 스스로에 대한 되새김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아직 어려 그래 난 어리고 말고 하는 자신감과 도전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으나 끊이지 않는 번뇌 속에서 헤엄을 친다. 언제쯤 누구에게 기대지 않은 채 정신적 그리고 경제적 독립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까. 남은 마지막 이십대 시절을 잘 보내고 싶다.
19살에는 대학이 전부인 줄 알았다. 간절함이 전보다 배는 깊어진 지금, 나는 어떻게 39살을 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