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에 대한 고찰
199×년 나는 드디어 '학교'라고 불리는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듣는 공식적인 학생이 되었다. 배움이 아닌 가르침을 주는 역할을 하던 엄마는 8살짜리 통통이 손을 잡고 동네 서점에 데리고 갔다. 격주 토요일 점심을 먹고 엄마와 함께 나서던 그 오후의 데이트는 6년이나 지속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일 것이다. 내가 엎드려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나는 이미 옆집 꼬마에게 넘겨 준 '초등학생을 위한 고전 소설' 시리즈를 한 권씩 사는 재미에 엄마를 보채곤 했다. 그리고 비디오를 빌려서 영화로 그 내용들을 다시 접했다. 나는 키스신만 나오면 내 눈을 가리는 엄마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비디오 화면과 내가 이미 읽었던 내용들을 비교하였고 혼자 울컥하기도 감동하기도 했다.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소설보다 메신저와 더 가까이 지냈고, 수능을 준비했을 때에는 지정된 소설과 시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앞선 6년과 달리 꽤 드라마틱한 6년이었다. 너무 안 읽다가 강압적으로, 암기식으로 무자비하게 읽는 것은 정말 읽는 것에 그친 것이었다.
최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정도 두께의 책은 가볍게 이틀 내에 읽었던 나인데 일주일 넘게 달고 있다. 꽤나 충격적이었다. 글자를 읽는 것에 무뎌졌기 때문이다. 보고 엄지 손가락으로 넘기는 것에만 익숙했지 읽고 느끼고 적는 것에 있어 완전한 퇴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똑똑한 사람보다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 들어주고 잘 공감하고 내 의견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되고 싶어 하는 깊이 있는 사람보다 스마트폰 없이 못 사는 가벼운 그리고 멍청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우리는, 지금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읽는 것보다는 듣고 보고 넘기는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다. 이것을 쿨하다고 느끼나 정작 그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면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우리 모두 보고 읽은 뒤 그 느낌들을 기록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시키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있다. 아이폰을 통해서만 콘텐츠를 접한 다음 그 내용은 완전히 잊어버린다. 아니 잃어버린다.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은 이미 옛날 옛적의 이야기지만 하얀 종이 위 타이핑된 글자를 잊으면 안 된다. 문장을 구성하는 법, 의견을 정리하는 법,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기까지 독서는 나의 깊이를 무궁무진하게 확장시켜준다. 이를 통해 새로운 교훈을 얻고 나만의 철학이 만들며 삶을 더욱 다채롭게 살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SNS를 배제한 나의 인생을 생각하지도 않지만, 보다 더 따뜻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낵 컬처보다 종이를 넘겨가며 책갈피를 꼽는 습관을 다시 길러야겠다. 하염없이 하던 새로고침은 그만! 잘 씹어먹고 잘 소화해내야지. 차근차근
다시 비가 내리는 오늘, 커피를 마시며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이 나의 깊이를 한 뼘 더 깊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온전히 흡수하고 꼭꼭 소화해서 깊이를 전달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지.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감동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또한 상대를 배려하는 이야기꾼이 되기 위한 나의 어설픈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