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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tta Nov 19. 2015

5,580원을 받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의 비애

  수요일 오전 10:43, 아무 일정이 없는 어제 조용히 글을 쓰러 문을 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왠지 일탈이 하고  싶어 졌다. 검은색 패딩을 꺼내 입고 나온 내가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던 일탈은 잘 모르는 카페에 가는 것이었다. 자주 가던 카페의 주인 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제는 그렇게 새로운 곳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골목이 아닌 번화가의 큰 카페에 도착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하고 콘센트 옆 자리에 앉았다. 백팩을 열어 노트북을 꺼냈고 습관처럼 메일을 확인했다. 진동벨이 울리고 나는 오래간만에 직접 내가 주문한 메뉴를 가지고 오는 수고를 했다.


 맛있게 드세요.

라고 활기차게 말하던 그녀. 유니폼을 입은 그녀는 내 또래로 보였고 금세 등을 돌려 다른 이들의 음료를 만들러 갔다.

  타닥타닥 신나게 자소설을 쓰는데 어디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안 나와!" "이래 놓고 음료값은 더럽게 비싸지!"관심 끄자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거북한 울림을 따라갔고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아까의 그녀를 거칠게 쳐다보고 있었다. 흠- 평일 오전에 등산복을 입고 대형 프렌차이저 카페에 온 아저씨들이 신기했고, 아저씨 부대의 음료 5잔을 혼자 만들면서 눈치를 보는 그녀가 불쌍했다. 3분도 채 안돼서 그들의 음료가 나왔고 내가 앉은 자리 건너편에서 아저씨들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신나게.. 타닥타닥 소리를 잡아먹는 그들의 음성에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카페에서 이어폰 끼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메리카노를 세 모금쯤 마셨을까. 문득 나의 아르바이트 시절이 생각났다. 카페와 레스토랑, 학교 내 근로학생까지 대학생활의 반 이상을 대학생인 동시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보냈다. 2012년 나는 호기심에 학교 앞 카페에 지원서를 냈다. 대학생으로서 뭔가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싶었고 돈을 버는 행위야 말로 진짜 어른들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카페 아르바이트. 유니폼을 입고 웃으며 손님을 대하고 착착 커피와 디저트를 만들어내는 내 모습이 내심 뿌듯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던 나는 카페가 나한테 적합하다고 나는 꼭 서비스업에 몸을 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5,000원 남짓 받던 어린애의 착각이었을까. 그 후로 나는 진짜 이상한 손님들을 만났다. 내가 잘못 계산했다고 소리 지르는 아주머니부터 외부음식 안된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닭강정을 먹는 대학생 무리와 화장실에 토해놓고 아무 말없이 쌩 나가는  커플까지. 그 외에도 "커피 맛이 평소와 다르네. 다시 줘" (늘 내 근무시간에 왔으면서 그리고 이미 얼음만 남은 아메리카노를 들고 오던 그 언니는 잊을 수 없다.) "리필 무료지?" (6명이 와서 3잔 시키고 잔을 달라고 한 뒤, 잔에 다 커피를 옮긴 후 빈 컵을 들고 와 다짜고짜 무료 리필을 요구하던 아주머니들) "다른 카페는 되던데 여긴 왜 안돼?" "서비스 좀 줘."  숨겨진 기저귀 찾기, 음료 제조 공간으로 쳐들어 오는 사람 등 삿대질과 가정교육은 필수요, "사장 나오라고 해!"라고 끝나는 이 격없는 대화는 신선했다. 다른 의미로. 생전 내가 내벹은 적도 없는 어이없는 대사를 치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참 돈 벌기 더럽게 힘들다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1년간 몸을 담았던 카페에서 마지막 월급을 받았던 날,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40만 원 벌기도 이렇게 힘든데 400만 원은 어떻게 벌지?" 아빠는 허허 웃으며 내 등을 퍽 쳤다. 


 잘 해야지. 잘 해야 그 대가를 받지.

  나는 아직도 아빠가 말한 '잘'의 의미를 잘 모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노동의 대가를 받으니 그 노동의 질에 상관없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최저임금안에 포함된 벅찬 노동과 변함이 없어야 하는 친절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무슨 의미일까. 생산활동에 참여하면서도 이미  계산된 그 제품과 서비스 때문에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그들의 상처는 과연 돈으로 완벽히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날 저녁, 나는 경제적 독립의 꿈은 어렵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다 식은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다 건너편을 바라보니 텅 빈 음료 잔만 남았다. 창 밖에는 카페 입구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는 아저씨 부대가 들어오는 손님 모두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까 보이는 깔끔하지 못한 그들의 뒷모습. 테이블 두개는 붙여놓은 그대로, 이리저리 옮겨진 의자도 그대로, 빨 때도 구겨진 휴지도 그래로 남아있는 그 자리가 참 보기 불편했다. 아 피고용인에서 소비자가 되어도 씁쓸한 그 마음은 여전히 남는다. 아니 오히려 연민이 들어 후회가 들었다. 생산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소비에 익숙해하고 은연중에 내가 했을 무식한 행동들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깨끗이 비운 컵과 접시를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잘 먹었다고. 예상대로 그녀는 싱긋 웃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내일도 커피를 만들겠지만 누군가의 어여쁜 딸이고 사랑을 듬뿍 받는 여자친구일 그녀에게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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