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tta Nov 22. 2015

지독한 애증의 관계 : 자매

사랑하는 나의 동생 J에게

  J가 태어난 날이 기억난다고 한다면 그건 완벽한 거짓말이다. 

그때 나는 겨우 3살 배기로 병원을 뛰어다녔을 테니까. 그날 이후 엄마 아빠의 사랑은 J에게 쏟아졌고 나는 언니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됐다. 큰딸, Eun 그리고 언니. J가 날 언니라고 처음 부른 날, 그날부터 전쟁이었다.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이유로 우리는 열렬하게 싸웠다. 정말 열렬하게 그리고 둘 중 한 명은 엉엉 울었다. 민망하지만 눈물을 찔끔거리며 엄마한테 일르는 역할은 종종 나에게도 돌아왔다.  


  내가 중학교 교복을 입던 날, 우리는 드디어 따로 등교를 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얼굴을 붉힌 채 학교를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집에서만 만났고 더욱 격렬하게 싸웠다. 1,000원 치 떡볶이 앞에서, 반올림이 나오는 텔레비전 앞에서, 청소년 미사 끝나고 성당앞에서 시공간을 뛰어넘어 일관성 있게 싸움을 이어나갔다. 엄마는 우리의 난폭한 대화에 학을 땠고, 이 대화가  마무리됐을 때 엄마는 우리에게 무릎을 꿇고 집안 모서리만 쳐다보는 반성의 시간을 주었다. 


  지난 16년과 다르게 이 지독한 언쟁과 주먹다짐은 이상하게도 내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한풀 꺾였다. 

나름 먼저 10대 꼬리표를 뗐다고, 대학생이 된 언니라고 나는 J를 챙겨주려 했다. 나는 동생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다시 떠올렸다. 시험 공부 팁도 주고 간식도 사다 주고 나름 친절한 언니 코스프레를 하기 시작했다. 통통한 볼따구도 귀여워 보이고 동글뱅이 안경도 귀여워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험성적에 속상해하는 J를 보며 나는 더 속상해했다. 등급에 예민한 동생을 보며 나는 늘 함께 울어 주었고 너는 1등급이라고 멋진 사람이라고 치켜세워주었다. 


  이제 우리는 둘 다 20대라는 새로운 세상에 함께 들어왔다. 교복을 입던 시절보다 훨씬 더 잔인한 등급 나누기와 절절한 연애 산업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고민들은 맞이했다. 어린 자매가 꿈꾸던 핑크빛 대학생활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고 또 기죽고 넋 놓기 시작했다. 내가 겪었던 고민을 3살 어린 J는 똑같이 하고 있었고 나는 사소한 고민 때문에 우울해하는 J가 안타까웠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런 고민을 친구가 아닌 서로에게 하나씩 터놓기 시작했다. 깜찍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고 냉철하게 조언을 하기도 하면서 J와 나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됐다. 희로애락을 공유하면서 나는 동생에 대한 미움보다 함께 겪는 고민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고, 코스프레가 아니라 언니로서 진짜 동생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생은 내가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더 배려심 깊고 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이제까지 잘 도와주었다. 


  나는 응팔을 보고 있고 하나뿐인 내 동생은 지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지고 볶고 한참을 싸웠던 우리는 이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단짝이 되었다. 혼자 지내는 J의 외로움도 자꾸 거절만 맛보는 나의 좌절감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부모님이나 친구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서로에게 하며 시시콜콜 하루를 공유한다. 如足如手우리의 관계는 憎에서 愛로 발전했다. 



작가의 이전글 5,580원을 받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