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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19. 2019

IMF와 상관없었던 아빠의 실직

'82년생 김지영' 76-78쪽

아버지는 결국 명예퇴직을 선택하셨다. 남은 인생은 길고,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고, 자리마다 PC가 놓였지만 수기 세대인 아버지는 여전히 검지로만 자판을 쳤다. 이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근속 연수를 채웠고, 지금은 퇴직금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중략)

아버지는 그렇게 중국 사업을 포기하셨고, 장사를 하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투자 목적으로 전세를 끼고 사 두었던 아파트를 제법 이익을 남겨 팔고 아버지의 퇴직금을 더해 신축 주상 복합 빌딩 1층의 한 미분양 상가를 매입했다.
(중략)
첫 번째 장사는 찜닭이었다. 프랜차이즈 찜닭이 대유행을 했고, 아버지의 가게도 처음에는 줄 서서 먹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러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익을 남기지도 못한 채 첫 장사를 접고, 다음으로 치킨집을 시작했다. 말이 치킨집이지 술집이었다. 나인 투 식스 근무 리듬에 맞춰진 아버지의 몸은 밤샘 업무로 급속히 노쇠해 갔다. 이번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급히 장사를 접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빵집을 시작했는데, 곧 비슷한 빵집이 주변에 마구 들어섰고, 심지어 길 건너에 아버지가 하는 가게와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도 생겨났다. 다 비슷비슷하게 장사가 안 되다가 한두 곳씩 간판을 내리기 시작했다. 임대료 부담이 없는 아버지는 그래도 좀 버틴 편이었는데, 근처에 대규모 카페 겸 베이커리가 들어오면서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82년생 김지영' 76-78쪽)


김동진씨의 아빠는 은행원이었다. 김동진씨가 어렸을 때는 주택은행에 다녔고, 김동진씨가 좀 자란 후 새로운 은행들이 생겨날 때 '동화은행'이라는 은행으로 이직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동행하여 어딘가에 자주 다녀왔고 은행과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차장이었던 아빠는 지점장으로 승격하여 이직했다. 아주아주 나아중에 엄마가 욕설과 함께 내뱉었던 말로는, '돈 싸들고 다니며 지점장 시켜줬더니, 지 밥 그릇도 못 찾아먹은' 것이었다.


아.. 긴 글이 될 것 같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김동진씨의 기억으로 김동진씨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이사하다가, 김동진씨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에 아파트를 하나 사서 이사했다. 김동진씨는 전학가지 않고 그 아파트에서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에도 다녔고, 엄마의 주도로 했던 위장전입 덕분에 다른 구에 있는 중학교에도 버스를 타고 다녔다. 김동진씨네 가족은 오빠 김욱진씨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김동진씨도 고등학교 배정을 받은 이후에야 강남구 **동의 4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강남구의 그 40평대 아파트는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원래 김동진씨의 엄마는 김동진씨의 아빠에게 신청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김동진씨의 아빠는 김동진씨의 엄마 몰래 추첨에 신청했고, 우연히 당첨된 것이었다. 김동진씨의 엄마는 그 동안 은행원 아빠의 월급으로 생활하면서 한 푼 두 푼 모아두었던 돈을 탈탈탈 털었고, 그 액수는 꽤나 거대하여 모자란 집값을 채울 수 있었다. 김동진씨의 친척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김동진씨 엄마의 놀라운 절약을 칭찬했다.


그렇게 해서 이사한 아파트였다. 발단은 은행 지점장이던 그 아파트를 담보로 S침대 사장의 대출에 보증을 서주면서 시작되었다. 그 때 당시는 연대보증 제도가 있었고, 누군가 대출을 받을 때 누군가의 보증을 받아야 했으며, 대출받은 사람이 만일 돈을 갚지 못한다면 보증인이 그 돈을 갚아줄 의무가 있었다. S침대 사장은 김동진씨의 고모부가 아빠에게 소개해주었다고 했다. 지인이니 잘 해주라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김동진씨 아빠는 고모부를 믿고 그 S침대 사장의 보증을 서 주었다. 그리고 그 S침대 사장은 대출을 갚지 않고 튀었다. 그 때 당시 비일비재하던 일이었다.


김동진씨의 아빠는 그 즈음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김동진씨의 둘째외삼촌에게 갔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주 나아중에 김동진씨가 전해들은 바로는, 그 때 당시 둘째외삼촌의 (아마도 철강?)사업이 너무도 잘 되고 있었고 전혀 망할 기미가 없었다고 한다. 김동진씨의 아빠는 평소 김동진씨의 엄마 및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던 둘째외삼촌에게 가서, 김동진씨네 아파트를 제1순위 담보로 저당잡아 두었다. 뭔가 그렇게 하면, S침대 사장이 부도를 내고 도망간다 하더라도 아파트가 다른 사업체에 1순위로 저당잡혀 있기 때문에 아파트는 안전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외삼촌의 사업 또한 부도가 났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김동진씨네 아파트는, 아빠가 피땀흘려 일하고 엄마가 개미처럼 살뜰히 모아서 장만한 강남구의 그 40평대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는 S침대 사장이 부도내고 도망간 일로, 그 사람의 보증인이란 이유로, 지점장 자리를 내놓아야 하게 되었다. 즉 해고당한 것이다. 그것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혹시 알아야 할 경우에 김동진씨의 아빠는, 그 때 당시 많은 사람들을 실직하게 했던 IMF 때문에 은행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사실상 그것과 관련은 없었다.


아빠가 실직하고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김동진씨는 대학교 3학년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런저런 일들에 엄마는 히스테리적으로 대응했다. 김동진씨 아빠에게, 그리고 외가쪽 친척들에게, 울고 소리지르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김동진씨네는 집이 경매에 넘어간 후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김동진씨의 엄마는 김동진씨에게 아파트 단지 안에 과외 학생을 구하는 전단지를 써붙이라며, 본인이 직접 문구와 디자인까지 도맡아 했다. 그래서 연락이 온 몇 군데에서 김동진씨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빠 김욱진씨는 하지 않았다.  


김동진씨의 아빠는 은행을 나오고 얼마 후, 가락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는 고등학교 동창을 도와 같이 일한다고 했다. 평생 책상 앞에서만 일하던 아빠였기에 아마도 갑자기 몸을 쓰는 일을 하니 무리가 갔었으리라. 김동진씨는 몇 번 아빠의 어깨에 파스를 붙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아빠는 그 일도 오래 하지는 못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다. 김동진씨는 아빠에게 물어보지 않았고, 아빠도 해주지 않았으며, 엄마와도 말하지 않는 듯 했다. 다만 엄마는 때때로 김동진씨를 시켜 아빠에게 생활비 재촉을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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