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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13. 2020

끝나지 않는 집밥의 기록과 나를 위한 라떼 한 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집콕으로 어쩔 수 없이 집밥 중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는데, 큰아이가 방학을 한 1월 초부터 석달 넘게 나에게는 집밥 미션 중이다. 물론 그 중에 교회에서 하는 의료선교에 다녀오고, 코로나19 아주 초기에 스키장도 한 번 다녀왔지만, 그 이후 계속 집콕중이다. 프리랜서로 하는 이런 저런 일들은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취소하거나 재택으로 하는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과 나의 삼시세끼를 챙기느라 재택근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 그런데 또 딜레마는, 계속 집에만 있기 때문에 먹는 것 말고 즐거움이 없어서 먹을 게 맛이 없으면 인생의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점. 



처음에는 호기롭게 김밥을 쌌다. 김치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백김치 묵은지를 어떻게 처치할까 고민하다가 했던 묵은지참치 김밥. 아이들은 남은 재료로 옆에서 주먹밥을 만들었고, 녹차를 끓여서 점심으로 다같이 맛나게 먹었다.  김밥재료를 여러가지 준비하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보람도 있고 맛도 있었다. 그래서 한 일주일쯤 후에 또 쌌다. 



한 번 해봤으니 이번엔 다양하게 만들었고, 이번엔 아이들과 남편과 김밥 말기를 분담했다. 묵은지참치 김밥, 햄김밥, 치즈김밥. 이렇게 세 가지 재료를 준비하려니 재료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또 한 끼 넷이서 잘 먹었다. 일주일쯤 후에 다시 "김밥 쌀까?" 하고 물어보니 이번엔 아이들의 반응이 시원찮다. "으응...? 또?" 뭐 이런 식이라 나도 힘들고 애들도 지겹구나 해서 그만두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는 계속되어야 했다. 이제 아침은 각자 알아서 쪼끔씩 먹고, 점심을 잘 해먹고 돌아서면, '어 저녁엔 또 뭐 해먹지?' 하는 질문과 싸워야 한다. 선택받은 또 한가지 메뉴는 떡볶이.



친구가 추천해준 야끼만두 집에서 만두 50개를 택배로 주문하고, 같이 먹으려고 냉동 김말이를 주문했다. 시어머니가 해주신 가래떡을 냉동실에서 꺼내 녹인 다음에 4등분으로 써는 힘겨운 과정을 거쳤다. 매운 걸 잘 먹지 않는 우리 집 입맛 특성상 간장 위주로 떡볶이를 했다. 아이들과 남편은 야끼만두가 내용물이 없고 너무 튀김이고 딱딱한 게 싫다며 궁시렁댔다. 떡볶이는 하기가 꽤 쉬운 메뉴라 그 이후 한 번 더 했는데, 세번째는 지겨워하는 아이들을 배려하여 검색 끝에 단호박치즈떡볶이를 해보았다. 


     


이번엔 고추장을 좀 넣고 빨갛게 해보았고, 단호박 안에 집어넣은 떡볶이 외에도 엄청난 분량의 떡볶이가 존재했다. 모짜렐라 치즈를 좋아하는 둘째와 입맛이 살아있는 첫째 모두 엄지척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끼 잘 먹어도 또 다음 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이후로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돈까스를 했다. 

간만에 지지고볶고 튀김을 하니 새삼스레 튀김에는 기름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돈까스 소스를 사는 것을 깜빡했지만 아이들은 케챂에 찍어 잘 먹었다. 그런데 이것도 4인분 한 끼로 끝났다. 그 다음 끼니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레시피로 했던 목살스테이크를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생각이 났다. 

원래 레시피는 돼지목살에 밀가루를 입펴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내는 것이었는데, 이 요리의 가장 귀찮은 과정이 그거였어서 이번엔 그냥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양파 마늘로 향을 내고 간장 케챂 설탕 올리고당 등을 넣은 소스를 만들었다. 에어프라이어에서 꺼낸 고기를 소스에 넣고 조금 더 졸였다. 이것도 3인분 양을 하려니 꽤 많아서, 냉장고에 있는 여러 야채를 꺼낼 생각도 못하고 씻어놓았던 양상추에 키위소스만 뿌려내고 홍미밥과 함께 먹었다. 아이들이나 나나 맛있어서 대만족이었던 메뉴.


그런데 이렇게, 끼니를 먹으면서 다음 끼니를 고민해야 하고, 삼시세끼가 끊이지 않고 연속되면서 지쳐가던 나에게 가장 힐링이 되었던 것은, 마스크 사러 나갔다가 어리버리해서 허탕친 후 허무한 마음으로 동네 단골 카페에 들렀을 때 너무나도 이쁘게 나왔던 라떼 한 잔이었다. 


그래도 가장 환기가 잘 될 것 같은 느낌에 문과 가까운 곳 창가 자리에 앉아, 잠시동안이지만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에 인터넷으로 원두를 사서 집에서 드립커피를 하기는 하지만, 집에 에스프레소 기계는 없어서 라떼는 먹을 수가 없었다. 가끔 그 맛이 그리웠는데, 오늘은 기대도 하지 않은 예쁜 라떼아트에 바리스타의 마음이 전해져서 유난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주 잠시동안이었지만 충만한 몸과 마음으로 카페를 나서며, 매끼 고민하지 말고 아예 일주일치 식단을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온라인 개학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니까, 그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 표지의 주방도구 일러스트는 https://www.123rf.com에서 가져왔습니다. 상업적 용도가 아니라 이미지를 구입하지는 않았어요. 초보 브런치 작가라 괜찮을지 모르겠어서 한 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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