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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돌 Oct 17. 2019

톱질의 기본자세

#1 시작 / 10월 둘째 주 일요일

수업과 실습이 이루어지는 목공방의 이름은 'ㅁㅁ 퍼니처'다. 종로3가역 11번 출구로 나와 반 블록 정도를 지나면 종묘 입구가 있고, 거기서 좀 더 걸으면 왼편에 샛길이 보인다. 종묘의 외벽을 따라 난 길이다. 이름은 ‘동순라길’. 그 샛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ㅁㅁ 퍼니처’가 있다. 뭔가가 더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을 때 건물이 딱 나타나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도 같은 느낌이었다. 열었나 싶어 다가서면 내부를 비추는 백열등 몇 개가 보인다. 건물의 외벽과 기본 양식은 한옥이지만 지붕에는 한옥식 기와 대신 쥐색 방수막이 덮여 있다.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이다.


수업은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된다. 첫 수업은 내 사정으로 일요일에 진행했다. 선생님과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목재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원목, 집성목, 각재, 합판, MDF, 파티클보드 등의 구분법을 배웠고, 하드우드와 소프트우드의 차이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더 습득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이 분명하게 파악되는 시간이었다. 학생이 나 혼자여서 부담 없이 질문을 하기도 했다. 목재로서의 월넛(호두나무)과 오크(참나무), 그리고 체리(벚나무)의 차이를 학습했다. 선생님은 군더더기 없이 설명하는 스타일이셨다. 이론 수업은 길지 않았다. 바로 공구함을 열었다.


공구함 속에는 각종 절삭 기구들과 측정 기구들이 들어 있었다. 내가 아는 명칭은 톱, 대패, 자, 이 정도. 선생님은 공구에 내 이름을 적어두라고 했다. 네임펜 뚜껑을 열고 무엇을 적을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P.’를 적어 넣기로 했다. 나는 빠르게 공구들을 쥐었다 놓으면서 이니셜을 적었다. 


1미터 남짓의 각재 하나가 오늘의 실습 도구였다. 직각자와 먹금자를 이용해 나무 위에 2cm 간격으로 표시를 한 다음 톱 사용법을 배웠다. 기본자세는 다음과 같다. 양발을 어깨너비 정도로 벌리고, 허리는 스쿼트 준비 자세 정도의 긴장감으로 살짝 구부린다. 그리고 톱의 손잡이 윗부분에 내 검지를 걸치듯 올려놓는다. 손등과 천장이 수직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손잡이의 윗부분과 내 팔 등 전체가 일직선을 이루고, 엄지와 중지는 손잡이의 양옆을 가볍게 쥔 자세가 된다. 마우스를 쥔 것과 비슷하다. 그 상태를 유지한 채 내 시선과 톱의 등을 조준하듯 수평으로 맞추면 준비 완료. 이제 팔을 기계처럼 움직이면 된다. 이 움직임에서 기억해야 하는 두 가지는 손목이 오른쪽으로 꺾이지 않게 하는 것과 팔과 손 어디에도 힘을 주지 않는 것이다. 둘 중 하나라도 놓치면 톱질의 방향이 사선으로 꺾인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 선생님은 슥슥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톱에 힘을 주고 있는지 힘을 충분히 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엔 잘 안 됐다. 수영을 배울 때처럼 하나의 자세를 고치면 다른 하나가 무너졌고, 자세를 전부 교정한 뒤에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살펴야 했다. 전체 자세를 벽에 핀을 박듯 고정시킨 뒤에야 팔에 힘을 뺀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30분간은 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다시 고쳤다. 


‘가이드’라 불리는 지지대를 이용해 미리 표시해둔 곳을 2-3mm 정도 파낸 후 톱의 방향을 점검한다. 그리고 자른다. 1/3 지점에서 톱을 잠시 빼낸 다음, 방향을 다시 확인한다. 그 순간 이번 톱질의 성패가 판단된다. 이 과정의 순서와 각각의 감각을 몸에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톱질이 조금 뻑뻑하거나 톱등과 내 시선이 약간 어긋나 있단 느낌이 들면 여지없이 뭔가가 잘못된다. 톱질의 결이 고르지 못하거나 사선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은 직전의 톱질에 문제가 있다면 그다음 톱질에서는 반드시 작은 것 하나라도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수업에서 ‘점검’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될 거란 말도 덧붙였다. 수업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집중력이 한껏 올라섰다. 하나하나의 과정이 매끄러워졌고 그만큼 실수도 반비례했다. 하지만 종반에는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힘이 떨어져 있었고 손마디가 시큰거렸다. 근력 운동을 끝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피로가 혹은 쾌감이 온몸에 가득 찼다.


2시에 시작한 수업은 8시에야 끝났다. 1시간 혹은 2시간이 금세 지나가 있었다. 중간에 1시간 정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잠깐 쉬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적당히 멈추기 어려운 주제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보다 솔직하게 말했고 선생님은 평소처럼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직 잘 모르는 누군가와 긴 대화를 할 때 생기는 긴장과 활력은 요즘 내 생활에서 드문 종류의 경험이라 퍽 즐거웠다. 대학 신입생 때 나보다 열 배는 영민하게 느껴지던 선배들 이야기를 들으며 흥분했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겨우 첫 수업일 뿐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만 흥분을 감출 순 없었다. 긴 호흡으로 잘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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