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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아들과 독서모임을 했다

첫 번째 우리 가족 책'빵' 모임

by 홍밀밀

첫 가족독서모임을 했다. 독서모임 이름은 ‘우리 가족 책빵’. 날날이가 이름을 지었고 책 이야기를 하면서 빵을 먹는다는 의미에서 ‘책빵’이라고 이름 붙였다. 첫 모임은 제주도에서 진행되었다. 통유리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점심을 많이 먹어서 배가 아주 불렀지만) 빵을 먹으면서 했다.


가족독서모임 아이디어는 <아빠의 가족 독서모임 만드는 법>을 쓴 신재호 작가님께 얻었다. 인터뷰를 한 것은 2년 전이었고, 그때 신재호 작가님은 독서모임을 무조건 시작해 보라는 조언을 해줬다.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한번 해보라고. 다만, 가족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은 힘든 게 당연함을 디폴트 값으로 두고 시작하라고.



당시 인터뷰에서 신재호 작가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족 간의 소통을 할 수 있고, 가족의 몰랐던 면을 알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사춘기 아이와 대화할 때 독서모임이라는 수단이 정말로 유용했다고.


인터뷰 이후에 남편과 ‘가족독서모임을 해보자’라고 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날날이가 3학년 후반기가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날날이가 읽는 책을 성인인 우리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됐을 때(참고로 신재호 작가는 한글이 서툰 둘째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가족독서모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홍밀밀

가족독서모임 첫 책으로 선정한 책은 이현 작가의 책 <플레이볼>. 날날이는 이전까지 야구를 직접 하는 것보다는 응원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공교롭게도 티볼을 하는 재미에 푹 빠지기 시작했을 때 <플레이볼>을 읽게 됐다. 남편이나 날날이처럼 야구에 대해 잘 알았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나처럼 야구 용어나 룰을 전혀 몰라도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소설책을 거의 안 읽는 남편은 책을 읽고 울었다고 했다. 이유는 아래를 보면 알 수 있다.



줄거리


<플레이볼>은 구천초 야구부 4번 타자 동구가 주인공인 장편 소설이다. 새로 부임한 감독은 ‘최선보다는 최고가 되어야 한다’라고 ‘이겨야 야구를 할 수 있다’라고 하지만, 동구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동구는 중학교에 가서도 야구를 할 수 있을까?



독서모임 진행 방식


독서모임을 많이 경험해 본 나와 달리 남편과 날날이는 독서모임이 처음이었다. 독서모임을 진행하기 전에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을 주제 또는 질문 하나씩을 뽑아오라고 부탁했다. 독서모임 진행과 기록은 내가 맡았다. 아래에서 땡땡은 나, 뿡뿡은 남편이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


땡땡 : 이 책 어땠어? 간략한 감상을 말해줘

날날이 : 내가 원래 야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감동적이어서 재밌었어.

뿡뿡 : 나는 너무 슬펐어. 동구가 동생이 아파서 엄마가 야구장에도 못 오고. 그리고 동구가 야구를 아주 잘하는 게 아닌데 하려고 하는 상황이 슬펐어.

땡땡 : 야구를 잘 몰랐는데 야구의 매력에 대해 알게 됐어. 그리고 부산이 배경인 소설이라서 어릴 때 아빠랑 사직구장 갔던 기억도 났어.

뿡뿡 : 나도 어릴 때 아빠랑 야구장에 많이 갔어.


땡땡 :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과 그 이유를 말해볼까.

뿡뿡 : 영민이가 결국 원하던 학교를 못 가고 신생 중학교를 갔잖아. 영민이는 동구보다 야구를 잘하는데도 좋은 학교를 못 간 게 인생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것 같아.

날날이 : 아람중 감독님이 동구한테 말씀하신 게 기억나. 져도 된다고. 야구는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라고. 구천초 야구부 감독님은 ‘이겨야 야구다. 이겨야 야구를 할 수 있다’라고 하셨잖아.

땡땡 : 나도 마지막에 야구에서는 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잘 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던 게 인상 깊었어.

뿡뿡 : 야구 경기 보면 17점 차가 나서 뒤집을 수 없는데 그래도 열심히 한단 말이야. 다음날에 경기를 해야 하니까. 잘 지는 게 중요한 거지.


땡땡 : 나는 푸른이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때 기억에 남았어. 근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고민될 것 같아.

뿡뿡 : 친한 친구랑 같은 편 하면 질 걸 아는데 같은 편 할지 말지 고민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날날이 : 그래도 같이 해야지.

뿡뿡 : 근데 그 친구가 진짜 못해. 계속 실수하고. 그럼 어떻게 해?

날날이 : 잘 못하는 친구랑 팀이 되고 싶지는 않아. 그래도 내가 잘하면 되지.


땡땡 : 나중에 실력 좋은 아이들이 야구부에 들어오는데 그 애들은 경제적 상황이 뒷받침되는 아이들이라고 나오잖아. 동구는 아니고. 그런 걸 보면서 실력이라는 게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뿡뿡 : 불공평하다고 핑계를 대면 아무것도 안 돼. 그럼 불만충이 되는 거야. 그게 최악인 거야.


땡땡 : 각자 하나씩 준비해 온 질문이 뭔지 들려줘.

날날이 : 만약 내가 동구의 상황이라면, 효대초랑 영주초를 응원할 때 누구를 응원할까? 효대초는 우리랑 아무 상관이 없는 팀이고, 영주초는 우리를 이겼던 팀이고 같은 부산에 있는 팀이야.

땡땡 : 영주초가 나를 이겼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효대초를 응원할 것 같아.

뿡뿡 : 나는 영주초. 왜냐면 영주초가 우리를 이겼는데 영주초가 효대초한테 지면 우리가 제일 밑이 되잖아.

날날이 : 나도 영주초. 같은 부산 팀이니까. 그리고 아빠가 말한 이유도 있어.


뿡뿡 :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게. 내가 좋아하는 게 있는데 잘 못하는 거야. 미래가 어두워. 그런데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할 거야?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걸 할 거야?

날날이 : 좋아하면 계속해야지. 연습하면 실력이 좋아질 수 있으니까.

뿡뿡 : 중학교 때까지 계속했는데 결국 야구를 하는 고등학교에 못 가도 상관없어?

날날이 : 안 됐을 때는 그냥 친구들이랑 야구하는 거지.

땡땡 : 잘하든 못하든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후회가 안 남지 않을까. 그 경험을 토대로 또 다른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뿡뿡 : 나는 동구 아빠랑 같은 입장이야. 그래도 계속하고 싶다고 하면 민구를 응원해 줄 수밖에 없겠지. 너무 큰 실패를 겪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손상을 입지 않도록 챙겨줘야 하겠지. 나는 시험공부를 했잖아. 나는 다행히 합격했지만 그 시험을 10년 동안 공부를 사람도 있어. 그렇게 해서 떨어지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땡땡 : 그런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일 수도 있어.


땡땡 :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게. 동구 동생 민구가 형이 야구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잖아.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날날이 : 그냥 떼쓰는 거지. 상관없어. 내 알 바 아님.

땡땡 : 형 탓을 하는 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시일 수도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도둑질도 계속하고. 그래서 안타까웠어.

뿡뿡 : 동구의 삶이 불쌍해. 작가가 너무 동구를 힘든 상황에 밀어 넣었어.

날날이 : 아빠를 못 오게 한 다음에 민구를 엄청 혼을 내. 그럼 끝이 나.


땡땡 : 우리가 흔히 승부는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이겨야 재밌는 거 같기는 해. 나도 요가나 달리기 할 때 성과가 나야 재밌고.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재밌게 만드는 거 같기도 해.

뿡뿡 : 승부가 상관없다는 사람은 둘 중 하나야. 관심이 없거나 거짓말하거나. 그런 애들은 대충 하겠다는 뜻이야.

날날이 : 학교에서 킥런볼 해서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졌는데 난 둘 다 좋았어. 이기는 게 좋지만 과정이 재밌어.


땡땡 : 이 책을 누구한테 추천하고 싶어?

날날이 : 이OO(날날이 친구)한테 추천하고 싶어. OO이가 야구를 좋아하니까. 이 책을 읽고 나랑 같이 티볼을 했으면 좋겠어.

뿡뿡 : 나도 이OO한테 추천하고 싶어. OO이가 이걸 보고 끝까지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

땡땡 : 친한 친구 아들한테 추천하고 싶어요. 초등학생이고 야구를 엄청 좋아하는데 중학교에 가서도 계속 야구를 할까 고민하는 친구.


땡땡 : 오늘 모임 소감 어땠어?

날날이 : 독서모임이라는 걸 처음 경험해 봐서 재밌었어요.

뿡뿡 : 서로 생각이 다른 것 같아서 놀랐어. 같은 생각일 줄 알았는데. 그리고 계속 말을 잘라먹어서 죄송합니다.

땡땡 : 동구의 상황에 대해 엄마 아빠는 좀 비관적인데 날날이는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뿡뿡 : 날날이 같은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싶어.



첫 번째 독서모임을 마치며


독서모임은 1시간 남짓 진행됐다. 나는 진행병이 있어서 계속 질문을 했고, 딴지 걸기 좋아하는 남편은 다른 사람이 말할 때마다 끼어들었고, 날날이는 가만히 앉아서 대화에 집중하는 걸 힘들어했다 ㅎㅎㅎ 평소에도 우리 가족은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지만,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건 대화의 질이나 밀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세 사람이 독서모임 멤버로서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책은 이번에도 날날이가 고른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고소했대>를 읽기로 했다. 셋이서 크리스마스 파티하면서 독서모임을 하기로. 그때는 어떤 빵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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