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ley B Nov 09. 2021

캐나다에서 여름을 보내며 내가 달라진 것들 BEST 4

캐나다 마인드셋 장착 완료! 이젠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두 달 반, 약 80일의 여름을 캐나다 사스카툰에서 보냈다. 매 년 해외여행을 갔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한 나라의 머무는 일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2011년 여름,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 있었던 이후로 거의 10년만이었나. 여행자와 거주자는 생활패턴이 너무나도 다르다. 3년 전 캐나다 사스카툰에서의 일주일 가을 여행은 너무나도 바쁘고 분주했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해야 했고, 먹어볼 음식들도 얼마나 많던지. 매일 5끼를 먹으며 볼록해진 배가 더 행복해졌다. 2021년의 여름,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철저히 차단된 곳에서 나는 관찰자로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았기에 단순하면서도 행복한 매일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여행자가 아닌 단기 거주자로서의 캐나다에서의 여름이 나를 달라지게 한 것들이 무엇인지, 어떤 캐나다 마인드셋을 장착할 수 있었는지 기록하고자 한다.




1. 영어 English

    한국에서는 영어를 쓸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도 한국인의 실력을 알고 있는 그들은 항상 나의 영어를 어떻게든 이해해줬고, 남편의 영어는 항상 나에게 맞춤화가 되어 있었다. 토종 한국인으로 영어를 쓰는 게 절대 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하는 게 불편하지도 않았던 그런 실력의 영어를 가지고 있었다. 11년 전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처음 미국에 갈 때와는 분명 달랐지만, 막상 캐나다에 도착하니 또다시 영어 쫄보가 되었다. 워낙 다인종인 캐나다에서 캐나다인들은 나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완벽하게 잘하는 네이티브라고 여긴다. 캐나다인들의 눈에 나는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 아닌,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캐나다 교포일 거라고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와 다른 인종을 '외국인'으로 바라보고, 당연히 한국어를 못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그들만의 slang을 섞어 나에게 질문을 하거나, small talk를 항상 위트 있게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캐나다 가족들과 긴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항상 나의 대화는 정말 간단한 안부를 묻는 것으로 끝이 났다. 혼자 음식 주문을 하려고 하면, 수많은 옵션들을 직접 나열해야 하고 주문 전과 후의 수많은 small talk들이 오가야 하던지. 완벽하지 못한 나의 영어 실력에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분명 나의 영어는 말 한마디 못하던 11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영어 때문에 좌절하고 있다니.

    


     왜 나의 영어는 완벽하지 못할까 자책만 하다가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자각하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영어 이름보다 한국 이름을 더 자주 쓰고 있는 진짜 한국인으로, 내가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못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라는 것. 나의 영어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네이티브처럼 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 이런 사실들을 몇 번의 잘못된 주문들과,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small talk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나의 영어는 절대 완벽해질 수 없으니까, 그냥 커뮤니케이션을 잘 이어나가는 게 목표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직도 조카들의 말을 완벽하게 다 이해할 수 없고, 음식 주문을 하러 갈 때 조금 떨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의 불완전한 영어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역시 영어는 잘하고 못 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영어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2. 나이 Age

    서른 살이 되면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젠 공적인 자리에 있거나, 강의를 하러 갔을 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나이를 속여야 하는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서른 살이 넘어가니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물어봤다. 결혼을 한 후에는 여자는 노산이 오기 전에 출산을 해야 한다며 나에게 출산 계획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본다. 나만의 시간표를 가지고 내가 계획하는 일들에 대해서 대체 왜 그들이 관심이 많은 건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 있으면서 나의 나이와 그에 맞는 일들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았다.

    

     How old are you?라고 직접적으로 묻는 게 너무나도 실례인 캐나다에서 나는 나의 나이를 잊고 살았다. 한국 나이가 아닌 international age를 가지고 한 살 어려진 것도 너무 좋았지만, 무턱대고 나에게 나이를 물어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있는 나라는 사람이었다. 나이에 따라 호칭을 정리하거나, 지금 내 나이 때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시부모님 역시 앞으로의 출산 계획이나 우리의 미래 계획 같은 건 하나도 물어보시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든 잘 해낼 것이라는 걸 믿고 있기에,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나의 기분과 감정, 나의 생각들을 훨씬 더 궁금해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다른 또래들과 많이 비교했었다. 저들은 나와 같은 나이임에도 자기만의 사업체도 있고, 멋진 외제차도 있고, 자가도 있고, 돈을 많이 버는 강의도 많이 하는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무얼 했을까 하는 불행한 생각들도 많이 했다. (지금은 그들의 피드 숨기기 설정을 통해서, 그리고 수많은 책들을 읽고 과거의 '나'와만 비교하기를 통해서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나이에 따라 무언가를 해야 하고, 남들이 하는 그 비슷비슷한 스케줄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해나가면서 하루하루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3.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Just do you!

    눈치는 영어로 딱히 번역할 말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한국적인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말이다. 모든 말과 행동에는 숨은 뜻이 있기에, 눈치를 차리고 눈치 있게 행동하는 게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나는 눈치를 참 많이 보는 사람이다. 눈치가 빠르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만, 사실은 나의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나도 많이 보는 게 피곤할 때가 많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는 상대방이 먹고 싶은 걸 항상 먹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보다는 상대방이 원하는 걸 더 많이 하고. 그냥 나는 친절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들이 하자고 했던 대로 따라줬을 뿐인데. 어느 순간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싸 여모 든 걸 그들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호구가 되어있었다.

    

     영어에서는 모든 것이 다 직접적이다.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말해줘야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나이가 어린 꼬마들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논리적으로 말한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그들에게 절대 강요하거나 억지로 도와주지 않고, 그들의 의사를 제일 먼저 확인한다. 어른이 하라는 건 무조건 따르고 해야 하는 유교 사회에서 자란 한국인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거절하는 것을 아무도 악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은 내가 지금 결정하기만 하면 되는 식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이 간단한 진리를 다시금 배우고, 한국 사회에서도 적용해본다.





4. 사랑해 Love you!

    '사랑해'라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잘하지 않는 말이 되었다. 직접 입 밖으로 내기에는 낯간지러운 말, 굳이 내뱉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그런 말. 특히나 무엇이든지 잘 표현하지 않는 우리 집에서는 더더욱 듣기 힘든 말이었다. 서로를 끔찍이 챙겨주고,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가족만의 사랑 표현방법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사랑이란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love you라는 말도 잘하지 못하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되었다.  

 

   영어권 문화에서는 직접적인 표현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지금 나의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든지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고, 상대방과의 대화를 어떻게든 이어나가는 건 기본 예의 중에 예의이다. 짧은 단답형으로만 대화를 이어나간다면 상대방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무례한 사람으로 기억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가족 간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해'를 꼭 말한다. 자주 표현하고 내가 몸소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들이 너무나도 중요해서, 나이가 어릴 때는 뽀뽀를 곁들인 love you 가 꼭 빠지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누구를 만나도 항상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랑이 넘치는 캐나다 가족들에게 처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은 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서 어색하게 얼어붙고 말았다. 하지만 뭐든지 자꾸 하다 보면 느는 것처럼, 사랑을 말하지 않던 내가 이제는 먼저 용기를 내어 사랑한다고 말해보기도 한다. 작별인사를 할 때면 세상 좋은 눈웃음과 큰 포옹을 하며 love you를 꼭 외치게 되었다. 자꾸 표현하고 말해보자. 너무나도 좋은 말, love you!






매거진의 이전글 코시국에 밴쿠버공항은 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