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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B Nov 27. 2021

시월드에서 만나는 남편의 모든 것 1

남편을 더 잘 이해해보기로 했다. 

    5년의 장기 연애 중에도 크게 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우리는 결혼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한 언니들에게 우리는 하나도 안 싸울 것 같다며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현명한 언니들은 결혼해보면 또 다르다고 조언해줬다. 그 당시의 나는 절대 이해가 가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와 함께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나 혼자 살아본 경험은 해외에서 잠깐뿐이었고, 가족 이외에 누군가와 오랫동안 같이 사는 건 처음이었다. 생활양식이 어쩔 수 없이 비슷해진 가족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해야 했다. 양말을 벗어놓는 스타일로 서로 싸우고, 치약을 짜는 방법으로도 싸우는 게 부부라는데, 서양문화권 출신의 남편과 모든 걸 맞춰가는 게 힘들어졌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면 일과 쉼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항상 노트북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했다. 일을 끝내는 게 아니라, 계속 확장된 일들을 마무리 짓고 새로 시작하는 식이었다. 내가 움직일수록 내가 무언가를 해낼수록 돈을 만들어내는 게 프리랜서이니까. 영어강의를 하는 남편은 집은 무조건 쉬는 곳이었기에, 내가 집에서도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다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괜히 본인도 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싫다는 거다. 한 순간도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는 건데 무슨 이야기지? 화가 났다. 

    

   


    시부모님을 만난 건 이번 여름이 네 번째였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을 같이 있는 건 또 처음이었다. 5년 전 막 연애를 시작하고서 미국 여행을 같이 할 때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 신분의 부모님을 만난다는 이 상황 자체가 신기했다. 3년 전 캐나다에 갔을 때는 5일 동안 먹어볼 것도,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아 바빴다. 2년 전 시부모님과 시고모님이 한국 여행을 오셨을 때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음식과 여행지를 찾느라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2021년 여름 3개월의 긴 시간 동안 캐나다 시부모님 집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캐나다 중서부에 있는 시부모님 댁은 '집'이라는 공간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완벽한 쉼을 할 수 있는 공간, 밖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적다 보니 집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어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너무나도 편한 나의 인생 소파를 만났다. 게스트룸들까지 포함해서 총 5대의 대형 TV에는 모두 넷플릭스와 수많은 OTT 서비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수많은 보드게임들이 한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고, 수많은 베이킹 재료들과 각종 향신료와 조리기구들이 많았다. 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와 보수공사는 늘 계속되었다. 여름 마당에서 혹은 겨울 차고에서 자라는 농작물들과 식물들을 가꿔야만 했다. 한국에는 워낙 새로운 곳들도 많고 할 것들도 많고, 회사 일도 워낙 많다 보니 집은 보통 숙소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공간이 불편할 때도 많았고, 일이 많을 때는 밖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기도 했다. 캐나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올해 여름에 나는 그 집에서 평생을 살아온 남편의 상황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온전한 쉼이 있는 공간이라는 게 너무나도 중요하고, 가족끼리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 일상적인 집에서의 생활. 캐나다 집에서의 생활이 없었다면 남편을 평생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어쩔 수 없는 집콕 생활이 늘어나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참된 의미를 한국에서 더 알아가고 있다. 나만의 취향이 잔뜩 드러난 나만의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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