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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B Nov 28. 2021

시월드에서 만나는 남편의 모든 것 2

남편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에는 모든 노력과 최선을 다한다. 작은 실수 하나 하지 않으려고 미리 완벽한 준비를 해놓아야 하는 스타일이다.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될 대로 되겠지라며 절대긍정을 외치는 나와는 너무나 다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는 엄청난 열정을 바친다. 주로 하키 경기하기와 하키 경기 보기, 비디오 게임, 요리하기, 퀴즈 맞히기, 댓글로 논쟁하기 뿐이지만. 본인의 일과 좋아하는 일이 아닌 일에는 모든 정신을 놓아버린다. 조심성이 없고 많이 덜렁대는 사람이다. 화장실 불을 제대로 끄는 걸 본 적이 없고, 여름 에어컨이나 겨울 난방을 끄지 않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 물건 정리를 잘 못해서 항상 무언가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에게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네 엄마가 아니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항상 알려줄 수 없다고 매번 말하는 내가 매일 소환된다. 음식을 먹을 때도 항상 흘리고 먹고, 본인이 좋아하는 요리를 할 때도 주방은 난리가 난다. 결국 뒷정리는 내가 전부 다시 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거는 연애할 때 많이 잃어버렸던 지갑과 핸드폰을 결혼 후에는 조금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걸까. 무선 이어폰을 최근에 두 번이나 잃어버렸으니 그건 또 아닌 걸까. 모든 물건을 너무나도 소중히 다루고, 잃어버린 물건이 혹시라도 생기면 나 자신에게 화가 나면서 어떻게든 찾아내고야 마는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넓은 대륙의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자신만의 큰 집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대도시가 아닌 이상 아파트나 높은 빌딩에서 사는 일은 절대 흔하지 않다. 아파트라고 불리는 공간들도 기껏해야 2층 정도 있는 게 전부다. 캐나다 시댁에 머물면서 우리는 지하 전체층을 썼다. 한국에서 상상하는 반지하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집의 공간 그대로를 게스트룸처럼 지하 공간에 모두 마련해놓았다. 또 다른 집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푹신푹신한 바닥에서 아이들이 뛰놀 수도 있고, 대형 TV와 안락한 소파가 있어 무언가를 보고 즐기기에도 좋다. 큰 침실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하공간을 세를 주어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도 한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많이 관찰하게 되었다. 익숙한 패턴이 보였다. 캐나다 아빠가 다녀간 곳은 항상 똑같았다. 불이 그대로 켜 있었고, 사용한 전기기구들이 그대로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는 항상 핸드폰과 안경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다. 캐나다 엄마는 먹은 자리가 항상 분명했다. 샌드위치 속이 빠져있거나, 샐러드 재료가 떨어져 있거나, 아이스크림 자국이 있었다. 집에 핸드폰을 두고 가서 일하는 중간에 집에 오기도 했다. 침대 위에는 바로 벗어둔 옷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본인의 차키가 어디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한국에 다시 돌아온 우리에게 혹시나 우리 짐에 섞인 건 아닌지 몇 번을 물어보고는 했다. 그렇다. 남편이랑 너무나도 똑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바로 그런 덜렁 거림에 아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던 음식을 흘렸으면 그냥 허허 웃고 마는 것. 내 핸드폰이 또 안 보인다며 가벼운 조크를 상대방에게 건네는 것. 불이 종일 켜져 있었는지 의식하지도 않는 것. 그냥 사소한 일은 사소한 일로 두었다. 


    K-장녀로 살아온 나는 항상 모든 게 완벽해야만 했다. 물을 실수로 엎지르기라도 하면 엄마한테 혼이 났다. 내가 8 살인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기 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불을 꼭 끄고 다녀야 한다는 잔소리. 꽂혀있는 콘센트가 없는지 나가기 전 모두 뽑고 가야 한다는 건 물론, 현관문 앞에는 나가기 전 꼭 확인해야 하는 리스트가 있었다. 불, 가스, 보일러. 물건을 왜 잃어버렸냐고 책망하는 부모님 앞에 무언가를 잃어버려도 다시 사달라고 하지를 못했다. 그렇게 나는 학습된 환경들로, 누군가에게는 작고 사소한 일일 수도 있는 것들까지 완벽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알았다. 그런데 캐나다 남편과 캐나다 엄마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사소한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굳이 모든 것에 스트레스받는 완벽한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었다. 만일 내가 너무나도 꼼꼼하고 신경 쓰는 스타일이라면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관심하거나 잘 신경 쓰지 않는 캐나다 엄마 아빠 타입이라면 그냥 그대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무얼 하든지 간에, 나의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었다. 그냥 내가 선호하는 대로 하면 되었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잔소리하는 우리 엄마처럼 되지 않기로 했다. 화장실 불 좀 끄고 나오라고 닦달하지 않는 것. 나도 가끔은 화장실 불 끄는 걸 잊고 나올 수도 있다는 것. (그런 일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사소한 일에 덜 신경을 쓰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생각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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