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내가 했던 바로 그 말.
12년 전 여름. 처음 미국에 갔다. 어학연수라는 이름의 5개월 간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이었다. 캘리포니아 제일 남쪽에 위치한 Sandiego는 미국인들이 은퇴하고 가고 싶은 도시 1위로 항상 꼽힐 만큼 살기 좋은 도시였다. 1년 내내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보았던 미국 생활이 내 앞에 펼쳐질 것 같았고, 미드에서 보았던 하이틴 러브스토리를 꿈꿨다. 미국에 오기 전 나름 영어 회화 학원 새벽반에도 갔고, 영어 스터디에도 참여했었다. 3개월 동안 학원에 빠진 적이 별로 없었기에 내 영어는 괜찮을 줄 알았다. 그렇게 시작된 미국 생활이었다.
University 이름을 가지고 있는 어학원에 갔다. 나는 영어를 이미 조금 할 수 있으니, 제일 높은 반에 넣어달라고 했다. 부모님의 바람이었다. 한국에서 많이 풀어봤던 정말 간단한 유형의 레벨테스트를 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제일 높은 TOEFL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1,000페이지가 넘는 종이 토플책과 6개의 CD를 받아봤을 때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Sandiego에 있다 보니 같은 반에 있는 20명의 친구들 중 15명은 아시아인들이었다. 그중에 5명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5명은 멕시코와 브라질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Reading 시간에는 돌아가면서 한 문단을 읽어야 했는데, 가끔 어려운 단어들을 제외하고는 괜찮았다. Reading 이 제일 어렵다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모든 것들이 문제였다. Listening 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Writing은 토플의 학문적 지식이 없었기에 쓸 말이 없었다. 그리고 Speaking 시간에는 단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은 항상 Warming up으로 둘이서 짝을 지어 간단한 일상 대화에 대한 답변을 30초 이상 해야 했다. 진짜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될 텐데, 나는 항상 상대방에게 Sorry를 거듭 반복하며 5초를 쓰고 나머지 25초 동안 조용히 있었다. 워밍업에서 한 마디도 못하는데, 수업 중에 Topic을 가지고 말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가만히 앉아있는 내가 너무 창피했다. 이럴 바엔 어학원에 오지 않는 게 좋을 거라며 학원 수업에 빠지기 일쑤였다.
어학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한국 사람들이 있었다. 집안에 돈이 많아 쉽게 미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오직 한국 사람들과 지내면서 한식당에만 갔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결국엔 한국과 똑같은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나랑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다른 한국인들이 말하길 그들은 미국에 온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영어를 아직도 못한다고 했다. 3년이나 있었는데도! 그리고 다른 부류의 한국인들은 제대로 미국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그들의 파티에도 꼭 초대받았다. 같은 토플 반에 있으면서도 Speaking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인 언니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냐고. 그 언니는 아직 자신의 영어 실력은 부족하지만, 본인이 영어를 공부했던 방법을 알려줬다. 미국에 오기 전에 다녔던 영어 학원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면서 말이다. Wall Street English라는 영어학원인데 기본 영어 수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들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영어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나 서울에 있는 많은 지점 중에서 여의도점 오전 11시 수업을 들으라고 했다. 여의도점은 회사원들이 많아서 아침반과 저녁반에 사람이 제일 많기에 오전 시간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 때인지라 수업이 끝나고 외국인 강사님과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친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Wall Street English라는 영어 학원을 토플 책 제일 앞에 적어두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 공부를 위해서 그리고 외국인 강사와의 친분 혹은 그 이상을 위해서 꼭 확인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리고 나는 어학원에 있는 말 한마디 못하는 한국인처럼 되지 않으려고 수업을 빼먹지 않고 어떻게든 참여했다. 외국인 친구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는 기회들을 마련했고, 말 한마디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끄덕이고 있더라도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3개월이 지나니까 두 마디를 할 수 있었고, 5개월이 지나고는 다시 한국에 오기가 싫을 정도로 미국 생활이 익숙해졌다. 여전히 음식 주문을 하거나 미국인들과 캐주얼한 대화를 하는 건 어려웠지만, 다른 아시아인 친구들과 부담 없이 영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음 미국 생활을 꿈꿨다. 휴학하고 온 대학교에 돌아가야 해서, 미국 생활이 너무 비싸서 돌아와야만 했지만 다음엔 꼭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토플 책 제일 앞에 적어둔 한국인 언니가 알려준 영어학원을 찾아보았다. 매 달 외국인 강사와 함께 영어 공부하는 한국인들과 외국에서 하는 그대로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었고, 내가 원한다면 하루 종일 학원에 있으면서 영어를 말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비쌌다. 비싸도 너무 비쌌다. 결국 홈페이지에 학원 등록을 위한 정보를 등록만 해놓고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대신 대학교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려고 노력했고, 다양한 밋업 이벤트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다.
2015년 가을. 채팅 앱으로 만난 구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을 홍대에서 처음 만났다. 이미 늦잠을 자서 아침에 약속을 파투 낸 나였기에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만났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이렇게 이야기가 잘 통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이렇게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솔직히 내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새로움과 편안함의 사이에 이끌려 우리는 계속 만났다. 첫 데이트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바로 구 남자 친구이자 현 캐나다 남편인 이 사람이 Wall Street English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학원에 있다가 이곳으로 온 지는 별로 되지 않았지만, 외국인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첫 데이트에서 그가 영어 아재 개그를 한다거나 본인의 특기인 모든 나라의 수도를 말할 때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5년 전 미국에서 토플 책 앞에 적어두었던 그 이름이 떠올랐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만났던 이 사람이 사실은 내가 직접 적어두고 말했던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니. 그 이후로 구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과 만나면서 일대일 영어수업이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자주 틀리고 있던 영어 표현들을 항상 지적해줬고 (연애 초반에는 이것 때문에 진짜 많이 싸웠다. 넌 내 선생이 아니라면서!) 이제는 남편이 자주 하는 말들을 따라 하다 보니 정말 자연스러운 영어를 하게 되었다.
뭐든지 내가 생각하고 적어두고 말해둔 것들은 이뤄진다는 걸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미국 어학원에서 영어 스피킹을 잘하고 싶어서 적어두기만 했었는데. 외국인 강사와 친해지면 데이트까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가 만약 그때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적어뒀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내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은 결국 내 인생이 된다. 그 모든 것들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