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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B Aug 29. 2022

서른넷 나의 첫 해외 취업, 말레이시아 KL (2)

말레이시아에 도착하기까지, 그 험난했던 여정.

    마땅한 경력이 없어서 한국 회사에는 지원할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 죽도록 일하는 한국 회사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해외에서의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 링크드인 Linked In에 나의 프로필을 올렸다. 얼마나 귀찮았던지 마음먹은 지 3개월이 지나서야 모두 완성을 했다. 집 근처 투썸플레이스 카페 2층 자리에서 마침내 끝냈다는 기쁨을 누린 지 20분 후. 어떤 인도계 외국인에게 개인 채팅이 왔다. 


'안녕. 너의 링크드인 프로필을 봤어. 우리 회사랑 잘 맞을 것 같은데 지원해보는 게 어때?'


쿠알라룸프르 Kampung Baru



    처음 사용해보는 링크드인이라 뭐가 뭔지는 잘 몰랐지만, 일단 연락이 왔으니 채팅을 이어나갔다. 무엇보다 사기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제일 먼저 남편의 의견을 물었다. 종종 나의 인스타그램이나 메일로 Job Offer라는 이름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무조건 확인을 해야만 했다. Content Moderator라는 일을 할 사람을 뽑고 있다고 했다.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처음으로 WhatsApp 번호를 알려줬다. 콘텐츠 보는 것을 좋아하면 너무나 잘 맞는 일이라고 했다. (아직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외노자인 나는 회사 방침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어떤 플랫폼인지 공개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다). 회사는 말레이시아에 있어서 워킹비자를 준비하는 동안 한국에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있을 거라고 했다. 월급은 한국의 괜찮은 회사에 다니는 정도의 수입으로, 이건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두 배 정도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기업의 일을 하고, 그 회사의 오피스를 사용할 거라고 했다. 통화를 하며 크게 세 가지가 놀라웠다. 먼저,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로도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미지의 나라인 말레이시아라는 점. 그리고 세계적인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한다니 너무나도 재밌을 것 같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전화를 하는 인도계 사람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너무나도 어려웠다는 점. 중간에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알겠다고 넘어간 것도 있고, 아마 'Sorry? 뭐라고?'를 20번 정도 했나 보다. 


    일단 이력서를 회사 사이트에 등록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서류 통과와 인터뷰를 통해 합격 여부가 결정 난다고 했다. 인터뷰에 나올 플랫폼 관련 예상 질문들을 미리 다 알려줬다. 미팅 링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인터뷰가 있는 날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링크에서 한 시간 동안 멀뚱히 노트북 화면만 보고 있었다. (온전히 나의 실수였다) 그다음 날, 우여곡절 끝에 봤던 30분가량의 인터뷰. 20분의 영어와 10분의 한국어 면접이 끝났다. 그리고 그날 밤 바로 연락이 왔다. 'Congratulations!' 



우리집 콘도 수영장에는 가끔 이런 꽃들이 떨어져있다.



    이 모든 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합격은 했지만 확신에 차지 않았다. 해외취업이 이렇게 쉬웠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두 사람에게 제일 먼저 물어봐야 했다. 먼저, 나에게 연락을 줬던 그 사람에게 회사에 대해서, 그리고 말레이시아 라이프에 대해서 물어봤다. 알고 보니 링크드인에서 나에게 연락을 줬던 사람은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적절한 지원자를 링크드인에서 찾아 지금의 회사와 잘 연결해주는 게 그 사람의 일이었다. 말레이시아가 얼마나 물가가 싸고 괜찮은지를 계속 강조했다. 한국인들은 말레이시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랑 같이 살고 있는 남편에게 합격 사실을 알려줬다. 나는 말레이시아에 가고 싶으니 말레이시아에 갈 거라고 했다. 대신 말레이시아에 가는 걸 최대한 미룰 거라, 말레이시아에서는 잠깐의 해외생활만 할 거라고 했다. 결국 이건 모두 나의 예상을 빗나갔지만. 아무튼 워낙 내 맘대로 하는 걸 존중해주는 남편에게도 (그래서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이번 일은 Long Distance를 해야 할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쿨하게 알겠다고 했다. 본인은 휴가로 잠깐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021년 10월 중순. 합격 소식을 받고 일주일 후, 집으로 크롬북이 왔다. 콘텐츠를 다루는 일이라 회사에서 모두에게 지원을 해줬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회사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락다운으로 모두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말레이시아로 넘어갈 수가 있었다. 보통은 말레이시아에 워킹 비자가 준비되는 대로 바로 넘어가야 한다. 내게 주어진 일들만 하면 되는 Content Moderator의 일은 처음엔 이 세상에 얼마나 미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있는지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쉬프트 일로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갈수록 익숙해졌다. 중간에 너무 많은 실수를 해서 혼이 나는 날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회사에서 일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너무나도 쉬웠기에 계속 버틸 수 있었다. 프리랜서로 너무나도 불안정했던 수입에서, 매달 말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말레이시아에 가야만 했다. 


핑크하늘을 만나는 날의 쿠알라룸프르는 더욱 예쁘다.

    

    2022년 3월 말, 드디어 워킹비자가 나왔다. 빠르면 3일 뒤 말레이시아로 출국을 해도 괜찮다고 했다. 아직은 남편이랑 떨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너무 빠른 콜이었다. (회사가 워낙 체계가 없어 모든 것이 참 급작스러웠다. 지금도 역시나 그렇지만.) 그러던 중 코로나가 걸렸다. 코로나를 핑계로, 나의 건강을 핑계로, 미루고 또 미뤘다. 2022년 5월,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백신 접종 완료라면 입국 시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드디어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 이제 갈 수 있다고 메일을 보냈을 뿐인데, 당장 4일 뒤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티켓을 끊어준 이 회사. 덕분에 나는 갑자기 이사 준비와 출국 준비를 하느라 너무나도 바빴다. (역시나 체계가 없는 말레이시아 회사) 2022년 5월 29일. 회사에서 끊어준 제일 싼 비행기 티켓인 싱가포르 경유 티켓으로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출국인지라 친구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났다. 언젠가 떠날 말레이시아를 위해 미리 송별회를 해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다. 회사에서 연락을 받자마자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다. 워낙 우리가 하는 일이라면 무한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시는 캐나다 부모님과, 내가 결정해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어주는 한국 부모님에게 우리의 계획을 전했다. 출국 당일날, 남동생과 남편이 배웅을 나왔다. 서른넷, 나 혼자 떠나는 해외라니. 약 8시간의 비행이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트윈 타워와 Saloma다리 모두를 만날 수 있는 곳

   

     제일 싼 티켓이라 그런지 기내식이 포함되지 않은 에어아시아 항공을 타고 겨우겨우 쿠알라룸프르에 도착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호텔은 KL Sentral에 있는지라, 한국의 공항철도 같은 KLIA를 타고 밤 10시가 넘어 KL Sentral 역에 도착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른 동남아의 여름이 나를 맞이했다. 아직 유심칩도 없고, Grab은 사용해본 적도 없고, 와이파이도 하나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한국의 서울역 같은 곳인지라 역이 얼마나 크던지, 어디로 나갈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평소 모든 것은 어떻게든 될 대로 된다는 걸 알기에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는 나에게도, 늦은 밤 낯선 땅에서 호텔에 찾아가는 건 꽤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유명 호텔 앞에 있는 택시를 잡아서 타야겠다 싶어 그쪽으로 일단 나갔다. 호텔까지 가는 길이 너무 어둑어둑해서 쉽게 나가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나는 공항 와이파이를 사용해서 호텔 주변 구글맵을 스크린샷해두었는데, 이걸 따라가 보기로 했다. 역에서 15분이면 갈 수 있다는 호텔은 역에서 연결되어 있는 Mall을 따라서 먼저 나와야 했다. 횡단보도도, 걸어갈 수 있는 인도도, 모두가 중간에 갑자기 끊긴 곳인지라 돌아 돌아가야만 했다. 다행히 길눈이 밝은 나는 구글맵 스크린샷을 따라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초행길이라서 30분이 훨씬 더 걸렸지만, 어쨌든 호텔에 도착하니 거의 밤 11시가 다 되었다. 한국에서 아침 11시에 집에서 나왔는데, 드디어 말레이시아에 도착이라니!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호텔에 나 혼자 있는 게 너무나 어색해서, 조금은 울고 싶었다. 기내식도 없이 아무것도 못 먹고 와서 그런지 너무 배가 고파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레이시아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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