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폰은 ‘쌩폰’이다. 검정색 갤럭시 폴드3로, 기기 전체를 감싸는 플라스틱 보호 케이스는 물론이고 그 흔한 화면 보호 필름조차 없다. 나도 한때는 새 휴대폰을 사면 그런 것들부터 정성스레 붙이곤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이란 게 결국 일상의 편리함을 위한 도구일 뿐인데, 이런 것까지 해가며 애지중지 모실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내가 주인이지, 이게 주인인가. 그때부터 나는 휴대폰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고 시원하게 쓰고 있다. 덕분에 꽤 무거운 휴대폰이지만 그나마 가지고 다닐 만해졌다. 기기 자체의 단단하고 매끄러운 촉감도 케이스를 씌울 때는 느낄 수 없던 즐거움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 이 휴대폰을 쓴 지도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이젠 곳곳에 도장이 벗겨져서 안쪽의 은색 속살이 반짝인다. 이들 중 절반은 재작년 가을 아차산을 오르다 거친 화강암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생긴 상처다. 강화유리로 된 외부 화면 한쪽에는 어디서 긁혔는지 빗금 같은 자국이 나 있다. 폴더블 폰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화면도 예전 같지 않다. 접었다가 펼 때마다 들뜬 부분이 보인다. 갤럭시를 쓰는 이유 중 하나인 삼성 페이도 가끔 먹통이 돼서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아무 대책 없이 쌩폰으로 쓴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준비해둔 게 있다. 휴대폰 파손 보장 보험(삼성에서는 이것을 ‘삼성케어플러스’라고 한다)이다. 마음 놓고 휴대폰을 굴리면서 쓸 생각으로 매달 6,900원을 보험료로 부담하였다. 이 보험을 이용하면서 16만 원만 추가로 내면 파손된 휴대폰을 거의 새것과 같은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만약 같은 수리를 보험 없이 한다면 백만 원은 쉽게 넘는다고 하니, 꽤 괜찮은 조건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기한이 구입일로부터 3년이다. 그 이후에는 보험료를 더 납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자, 계산해 보자. 내가 지금까지 쓴 보험료가 얼마인가. 3년 중 첫 해는 사전 구매 혜택으로 보험을 무료로 이용했으니 제외하고, 2년 차부터 매월 6,900원을 납부했다. 그렇게 지난 2년 동안 모두 합해 165,600원을 보험료로 지불했다. 기한 내에 수리를 받지 않는다면, 16만 원은 긍정적으로 보면 그동안 안심하고 쌩폰을 쓴 데 따른 비용이고, 냉정히 말하면 그냥 버린 돈이 된다. 나는 앞으로 이 휴대폰을 3년 정도 더 쓸 생각이다.
3년 전에 휴대폰을 구입했던 삼성전자 해운대 서비스센터에 수리 예약을 했다. 며칠 뒤, 필요한 부품이 준비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 직장에는 1시간 조퇴를 신청한 뒤 퇴근길에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해운대 서비스센터는 삼성 스토어 3층에 있는데, 업무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라 그런지 꽤 한산했다. 나는 입구에 서 있는 키오스크에 전화번호를 입력하여 접수증을 뽑고, 고객용 의자로 가서 몸을 기댔다. 곧 있으면 수리를 위해 휴대폰이 내 손을 떠날 테니 그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영화 음악 OST 앨범 몇 가지를 워치에 다운로드한 뒤, 지하철에서 보던 책을 마저 읽기 위해 가방에서 꺼냈다. 곧이어 내 휴대폰 번호 끝의 네 자리가 대기 현황 모니터에 떴다. 나는 지정된 수리 기사 앞에 가서 앉았다.
담당 기사에게 이런저런 부분에 손상이 있고, 삼성 페이도 됐다 안됐다 하고, 무엇보다도 삼성케어플러스 파손 보장 보험 만료가 임박했으니, 전반적으로 점검해서 고칠 필요가 있는 부분은 싹 고쳐달라고 청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담당 기사의 표정을 보니, 보험 만기 직전 수리를 맡기러 오는 이들이 종종 있는 듯했다. 담당 기사가 휴대폰을 분해해서 살펴보더니 혹시 그동안 전화 통화가 잘 안 된 적이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앞서 말했듯 삼성 페이가 잘 안될 때가 있긴 했지만, 통화 자체는 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담당 기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삼성 페이가 아니라 통화를 담당하는 칩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RF 뭐라고 했는데 들었어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러면서, 이게 지금 바로 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일단 집에 도로 가져갔다가 다시 가져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직장에 또 조퇴를 쓰고 나오기 좀 그러니 차라리 휴대폰을 맡기고 갔다가 다음 날 저녁 7시 전에 찾으러 와도 되는지 되물었다. 내 퇴근 시간은 6시이고 서비스센터까지는 1시간이 조금 덜 걸리며 서비스센터 운영 시간은 7시까지이니 시간만 잘 지킨다면 안 될 것도 없어 보였다. 다행히 담당 기사는 그렇게 하면 자기도 더 좋다고 답했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휴대폰을 서비스센터에 놓고 간다는 것은 다음 날 퇴근길에 이곳에 다시 올 때까지 휴대폰 없이 지내야 한다는 걸 뜻했다. 그래서 나는 담당 기사에게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고객용 휴대폰을 구비해 놓는 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만약 있다면 유심 칩을 옮겨서 하루 정도 쓰면 좋을 듯싶었다. 하지만 서비스센터에는 그런 목적의 임대폰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처음으로 기왕 이렇게 된 거 하루는 휴대폰 없이 지내볼까 하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휴대폰을 주고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나와 아내는 주말 부부다. 주중에 아내와 딸은 서울에 있고 나 혼자 부산에 지낸다. 퇴근 후에 전화 통화로 생존 신고를 한다. 그런데 서비스센터에 휴대폰을 놓고 가면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 전화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연락할 방법이 없다. 저녁에 평소에 하던 전화도 없고 전화했더니 전화기가 꺼져 있다면 아내가 걱정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담당 기사에게 혹시 유선 전화를 한 통화만 쓸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상담 부스 한쪽에 마련된 공용 전화기를 가리키며 부담 없이 쓰라고 했다. 다행히 나는 아내 휴대폰 번호를 외우고 있었고, 전화를 걸어서 내가 앞으로 24시간 동안 전화를 쓸 수 없게 되었다고 알렸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담당 기사는 나에게 혹시 유심 칩을 가져가겠느냐고 물었다. 일단 가져가 보겠다고 했다. 갤럭시 폴드를 사기 전에 쓰던 아이폰 6S 공폰이 집구석 어딘가에 있긴 있을 텐데, 문제는 그게 서울 집에 있는지 부산 집에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부산 집에 가서 공폰을 찾았을 때 없다면 그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 없이 24시간을 지내는 흔치 않은 경험이 집에서 공폰을 발견하여 좌절되면 아쉬울 것 같았다.
서비스센터를 나와서 집으로 향하는 하천변 산책로를 걸었다. 해운대 장산 계곡에서 내려온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내가 운동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장산역부터 걸어 올라오는 곳이다. 요즘 같은 여름이면 길 위로 수풀이 우거지고 옆에서는 천천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올라온다. 천천히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물론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단 하나였다. 집에 공폰이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나도 당시 내 사고의 흐름을 정확히는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휴대폰이 주는 편리를 포기할 수 없기에 공폰이 있었으면 하지만, 불가피한 어떤 상황이 이런 나를 저지해줄 수 있길 바랬던 것 같다.
집에 들어왔다. 신발을 벗자마자 안 쓰는 물건들을 담아 둔 정리함으로 향했다. 전에 쓰던 아이폰 6S 공폰이 있을까, 없을까.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듯 후보가 될 만한 곳들을 하나씩 들춰보았다.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단념하기에는 일렀다. 안 쓰는 충전기나 보조배터리를 되는 대로 담아둔 책상 아랫쪽 수납장으로 향했다. 어쩌면 여기에 있을 가능성이 더 클 것도 같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이상한 심리 상태다. 아이폰 6S를 찾는 동안 솔직한 심정으로 결국 그것이 없었으면 했다. 절실히 찾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없었으면 하다니. 사실은 이날 하루는 휴대폰 없이 지내보고 싶었던 거다. 마침내 나는 운 좋게도 아이폰 6S를 찾는 데 실패했다.
저녁을 카레라이스로 간단히 해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집 앞의 호수 공원에 나가볼까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으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면 보나마나 몇십 분은 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 텐데, 시간 허비 없이 곧장 산책을 나갈 수 있다니 흡족했다. 다만 아직 열대야가 물러가지 않고 있기에 나가기가 망설여졌다. 먼저 지금 밖의 기온이 얼마나 되었을지 궁금했다. 30도가 넘으면 나가지 않아야겠다. 자, 이제 휴대폰을 열어 몇 도 정도나 되는지 보려고 하는데… 맞다, 나에겐 지금 휴대폰이 없다. 평소에는 밖의 날씨가 궁금할 때 습관적으로 날씨 앱을 열어보곤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집 밖이 더운지 아닌지 알려면 직접 나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느꼈던 건 단지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편이 아니었다. 문 밖으로 나가면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는 날씨조차 휴대폰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서 오는 섬뜩함이었다.
산책을 다녀왔다. 아직 밤 9시도 되지 않았다. 자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었다. 무료한 중에 글이나 써볼까 하며 노트북을 열었다. 아,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다. 부산 집은 내가 평일에만 혼자 지내는 곳이라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다.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쓰고 싶다면 휴대폰의 핫스팟을 켜는 것으로 충분했다. 다소 불편함이 따르지만, 추가 비용을 들여서 인터넷을 설치하느니 그 편이 나았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는 휴대폰이 없다. 혹시나 와이파이에 암호를 걸지 않은 이웃이 있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노트북을 켰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노트북이 이렇게 쓸모없는 것이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터넷 접속 없이 오프라인으로 문서는 작성할 수 있는 구글 문서는 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 글의 초안을 작성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되었다. 모든 것을 연결하는 인터넷망에 입장할 수 없다는 게 이처럼 갑갑하고, 그러면서도 홀가분한 것이구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이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노트북에 글을 끄적이다 보니 얼마 안 가서 싫증이 났다.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평소에는 12시 전에 자는 게 목표였는데, 시계를 보니 이제 막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책을 한 권 집어 들고 침대에 누웠다. 매일 밤마다 휴대폰을 보는 대신에 하겠다고 그토록 다짐했던,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행동에 옮기지 못했던 일이었다. 수면에 도움을 준다는 옅은 주황색 조명을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는 걸 다음 날 아침에 워치의 수면 기록을 보고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전날 밤 사실 좀 걱정이 되었었다. 책상 위에 구식 알람시계가 없지 않았지만, 초단위로 정확한 휴대폰 시계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스스로 과연 정확한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행히 휴대폰의 빈자리는 스마트 워치가 대신해 주었고,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어떤 점에서는 차라리 평소보다 나았다. 잠자리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볼 일이 없으니 깊게 잠들 수 있었고 요 근래 경험하지 못한 꿀잠을 잤다. 스마트 워치에 기록된 수면 점수는 90점을 훌쩍 넘었다.
출근 채비를 마치고 집 앞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지도 앱을 열고 버스 정류장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몇 분 뒤에 올 건지 확인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구태여 버스를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휴대폰으로 보지 않아도 그냥 가서 기다리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알고 싶은 것을 그 순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은 편리함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족쇄처럼 느껴진다. 궁금한 것을 그때그때 충족해야 한다는 강박만 내려놓는다면 일상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나는 출근길에 늘 음악을 듣는다. 운전을 할 때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입이 심심할 때 주전부리를 찾듯, 귀가 심심할 때에는 뭐라도 꽂고 들어야 마음이 편하다. 족히 20년은 더 된 습관이다. 요즘에는 집 앞에서 직장 앞까지 다니는 버스 노선이 있어서 버스로 출퇴근할 때가 많은데,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귀에다 꽂고 있으면 출근길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는 효과도 덤으로 누릴 수 있다. 다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유튜브 뮤직 앱이 깔린 휴대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없다.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전날 휴대폰 수리를 맡기기에 앞서 워치에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두었다는 걸 떠올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이어폰을 꺼내 귀에 끼우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음악 감상을 시작했다. 이 조그만 워치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점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비록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워치에 이미 저장해 둔 수십 개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무엇을 들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담백하게 다가왔다. 사실 출근길에 이미 저장된 음악을 다 듣는 것도 시간상 불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온라인을 통해 너무 많은 선택지를 마주하고 있고, 실제로는 다 경험하지도 못할 이 선택지들을 갖고 있다는 그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을 위해 정작 진짜 경험에는 시간을 쓰고 있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경험보다는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망설임, 그리고 또 다른 선택지를 향한 변덕이 한없이 반복되고 있을 뿐.
의외였다. 업무 중에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책상 위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와 유선 전화기 덕이다. 실제로 의미 있는 업무는 이 두 가지로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책상 한켠에 휴대폰을 걸쳐두던 무선 충전기는 하루 종일 비어 있었다. 나는 틈날 때마다 습관처럼 그쪽에 눈길이 가긴 했지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만 재확인하고 다시 본래 하던 일로 돌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그렇게 시선이 향할 때마다 휴대폰을 들어 올려 카톡이나 포털 뉴스를 보느라 또 몇 분을 쓰고, 별다른 소득도 없이 휴대폰을 무선 충전기에 내려놓으며 또 괜한 일에 시간을 썼구나 하며 스스로 한심하게 느꼈을 터다. 그런 흐름이 차단되었다는 사실이 괜시리 흡족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은 단지 업무에 집중하는 걸 넘어서 순간순간 습관의 유혹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이어졌다.
다만, 휴대폰이 없어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공무원들은 평소에 다양한 교육을 들어야 한다. 그중에는 그 교육을 위탁받아서 수익을 내는 이들 말고 누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싶은 주제도 있다. 아무튼 할 건 하는 게 공무원의 기본 덕목이라 정해진 교육은 듣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교육들 거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평소에 이용하던 사이트가 아니면 로그인을 위해 본인 인증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본인 인증에는 휴대폰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침 휴대폰이 없던 이날도 나는 교육 하나를 들어야 했는데, 본인 인증을 위해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결국에는 휴대폰 없이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휴대폰을 찾은 뒤에 하는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이 없다면 온라인 세상에서 내가 나라는 것도 증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은 무섭게 다가왔다. 이 말은 곧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휴대폰을 들고 있다면 온라인에서는 나로 행세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조그만 기기에 너무나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휴대폰 없는 하루가 처음 우려와는 다르게 큰 불편 없이 지나갔다. 마침내 퇴근 시간이 되어 휴대폰과 재회할 시간이 다가왔다. 서비스센터 영업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역시 지도 앱은 쓸 수 없었지만, 나의 실제 삶에 생각보다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는 것 외의 큰 의미가 없었다. 장산역에서 내린 뒤 전날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어서 삼성 서비스센터에 도착했다. 6시 50분. 다행히 영업 시간 종료 전에 도착했다. 새로운 접수를 받는 키오스크는 화면이 꺼져 있었고 손님들도 서너 명밖에 없었다.
나는 곧장 담당 기사 쪽으로 향했다. 그는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며, 수리가 다 끝난 내 휴대폰을 나에게 건넸다. 아직 보호비닐도 떼지 않은 휴대폰을 보니 반갑기도 하면서 다시 휴대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예전 삶으로 돌아간다는 아쉬움도 느껴졌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부모님을 떠나 수련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랄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 당시 부모에게 의지했던 것처럼 지금의 내 일상을 휴대폰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집에 돌아와 휴대폰 데이터 복원을 진행했다. 메인보드가 손상되어 교체했기 때문에 사실상 새 휴대폰이 되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재부팅을 끝낸 뒤, 나의 휴대폰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원래의 익숙한 상태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내가 평소에 휴대폰으로 절약하는 시간 조각들을 다 합쳐도 이 정도 시간에 이르려면 몇 개월은 걸릴 것이다. 우리가 휴대폰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일상의 편리함이고 이는 곧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주는 걸 의미하지만, 휴대폰을 사용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들어가는 시간들도 꽤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다시 내 손에 쥐어진 휴대폰.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작은 기기가 나와 세계를 연결해 주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은 나에게도 특히 중요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주말 부부이기 때문에 평일 부산 집에서 홀로 지낸다. 이 말은 곧 나에게 있어 휴대폰이 하루 중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의미다. 좀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나는 심장 질환이 있기 때문에 혹여라도 갑자기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면 전화를 걸 수 있어야 위기를 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휴대폰은 나에게 생명줄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나의 신상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휴대폰이 과연 결과를 유의미하게 바꿀 수 있을까. 바로 곁에 사람이 있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목숨인데, 휴대폰이 있다고 해서 내가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과연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 휴대폰이 가져다주는 안정감, 그리고 그것에 의지하는 우리의 처지가 사실은 무척 취약하다.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에 대해 불안해하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휴대폰을 부여잡지만, 그게 충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건 이미 우리 스스로도 알고 있다.
유튜브에 90년대 뉴스를 편집해서 업로드한 걸 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불확실한 세상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큰 홍수로 골목마다 고무보트로 사람들을 구조하는 와중에 한쪽에서는 가슴 높이로 차오른 물을 뚫고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아직 안전 게이트가 설치되지 않았던 그 시절 지하철에서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며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들. 돌아가기 멀다고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가는 사람들.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그리고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불확실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학생이었다. 휴대폰은 당연히 없었다. 책을 보다가 모르는 건 사전을 찾아보고 음악은 CD로 들었다. 아침에 오후 날씨가 궁금하면 그냥 궁금한 대로 오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TV 채널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구독과 좋아요는 없었다. 휴대폰이 없던 그 시절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부족했고 그것을 얻는 과정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눈을 감고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마음만큼은 지금보다 더 여유로웠다.
휴대폰 없이 지낸 하루는 그 시절 90년대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끔은 휴대폰 없이 지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휴대폰이 없는 삶으로 완전히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그건 이미 불가능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휴대폰으로 틈틈이 검토했고, 지금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 휴대폰을 통해서 보고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뭐든 너무 지나치지 않는, 적당한 게 좋은 듯싶다. 적당하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d%9c%b4%eb%8c%80%ed%8f%b0-%ec%97%86%ec%9d%b4-%ed%95%98%eb%a3%a8-%eb%8f%99%ec%95%88-%ec%a7%80%eb%82%b4%eb%b3%b4%eb%8b%88/ |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