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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pr 10. 2023

2023 봄, 몬트리올 한 달 살기 - 망한 입국 1

경유 비행기도 놓치고 캐리어도 잃어버린 불운한 사람? 그게 바로 나예요

    이번 편에는 출국 준비부터 경유까지의 얘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몬트리올 입국도 아니고 경유까지로 끊은 것은... 사실 이번 몬트리올 생활에 감정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터진 시간이기 때문이다. 일주일도 아니고 총 약 한 달 반 정도의 장기간 여행을 준비한다는 것은 굉장히 마음이 분주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마음'만' 분주했다는 것이다. 일단 한국도 그렇고 몬트리올 기준으로도 봄을 맞이하는 시점이기에 옷차림 자체가 크게 변하는 시점이었고, 가기 전 겨울 상태인 집을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냉장고 비우기 및 몬트리올에서의 일정들을 정리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행기표와 숙박만 정리해 둔 채 앞으로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만 약 2주를 보내고, 늘 그랬듯 출국 전 날에 짐을 미친 듯이 싸기 시작했다.


여행 전 날 나의 집은 늘 이 모양이다. 그래서 밤을 새운다...

20년 지기 친구 L에 의하면, 나는 희박한 확률에서 일어날 일까지 걱정을 하며 산다고 한다. 만약 내가 소화가 좀 더부룩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효소(...)를 샀고, 혹시 기력이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오쏘뮬을 챙겼고, 입이 텁텁한데 액체인 큰 가그린을 사기엔 번거로우려나? 싶어서 집에 있던 휴대용 가그린을 4개 챙겼고, 기본 어매니티 제품들이 맞지 않으면 어쩌지? 해서 러쉬 고체 제품들을 구매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한국에선 효소도, 영양제도 잘 안 먹는다. 친구 L의 냉정한 지적에 의하면 마치 캐나다에는 가그린과 러쉬를 팔지 않는 사람처럼, 그리고 러쉬 제품을 쓰지 않으면 몸에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사람처럼 고민하고 있냐고 했다. 구구절절 L의 말이 다 맞았지만 사실 그녀는 몰랐다. 내가 모든 것을 전부 구매한 뒤에 저 얘기를 고민 중인 일인 마냥 털어놓았다는 것을... 훗


1주일에 라면 1개씩 먹을 거니까 5개면 되겠지? 같은 전-략

    옷은 최대한 간소화하고 빨아 입을 것(과 쇼핑)을 고려해서 일주일 치만 챙기고(그리고 태블릿형 세탁 세제도 챙겼다), 어차피 영양제와 일상 제품들을 전부 사용하고 오게 될 것이니 나머지는 현지에서 조달하게 될 각종 쇼핑 용품으로 채우리라는 원대한 목표로 28인치 캐리어를 2개 챙기게 되었다. 버건디색 메인 캐리어에는 옷과 비상약, 그리고 기초 화장품들을 넣었고 남색의 서브 캐리어에는 보조 가방(핸드백, 1 박용 가방 등)들과 각종 영양제, 공간적 여유로 눌리지 말라며 아끼는 재킷과 키모보드 & 마우스를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인천 공항에서 구매한 컵라면들과 실내화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그 전날 본 '서진이네'에서 불닭볶음면이 매우 맛있어 보였었고, 해외에서 실내화를 주지 않는 숙소에서 양말 신고 다니며 고생했던 경험이 떠올라서였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라면을 먹을까 말까이다. (너무 좋아해서 자제하느라)

대체 뭐 어쩌라고 짐 싸는 과정과 내용을 다 쓰고 앉아있는 거야?라고 느낀다면, 다 이유가 있어서이다. 이번 편은 아니고 다음 편을 위해서지만.


    몬트리올까지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다. 그래서 그냥 경유 시간이 가장 짧은 비행을 택했는데, 델타 항공을 타고 인천에서 저녁 7시 25분 출발 → 미애나폴리스(미국) 오후 5시 반 도착 → 90분 경유시간을 거쳐 몬트리올에 밤 10시 40분 도착인 경로였다. 우선 12시간에 걸친 인천공항 → 미애나폴리스로의 이동을 하였다. 저녁 출발인데 밤에 현지에 떨어지는 일정이라서, 최대한 빠른 시차적응을 위해 비행기에서 거의 잠을 자지 않을 계획이었다. 준비해 둔 만화책과 델타 기내 영화를 보며 살짝 졸다 보니 12시간은 훌쩍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내에서 무슨 영화 봤는지 생각이 안 나는데, 리디에서 구매해 갔던 '약사의 혼잣말'은 진짜 재미있었다. 조만간 애니도 나온다길래 봤는데 요 감상은 언젠가 나중에. 여하튼 이렇게 별건 아니지만 사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노는 것은 제법 잘한다. 비록 고관절과 소화기관을 갖다 버리는 지름길이겠지만 화장실 한 번 안 갔다...


    그렇게 미애나폴리스에 도착을 했는데 이게 뭔 일, 경유인데 입국 심사부터 짐을 찾아 다시 위탁까지 하란다. 말이 경유 시간 90분이지,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보통 15분 정도가 소요되어 버리고, 입국 심사에 약 40분이 소요되었다. 딱히 사람이 많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미리 짐이 나와있었지만 이를 가지고 다시 위탁한 뒤에 몸수색 과정을 거치는데 약 15분이 추가로 지나게 되어 몬트리올행 비행기 출발까지 약 20분도 채 남지 않았었다. 그 와중에 몬트리올 비행기의 게이트까지는 또 왜 이렇게 먼지, 시작된 곳이 C게이트 구역이었는데 정말 뛰듯 경보를 해도 A게이트 구역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애플워치 기록을 보니 15분 사이에 한 2km는 걸은 것 같다. 이 정도면 걸은 게 아니라 그냥 경보 거나 뛴 정도다 나의 수준에서는. 솔직히 말하자면 미애나폴리스가 어디인지도, 그리고 이 공항이 이렇게 큰 곳인지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미국 내의 손꼽히는 허브 공항이었더라. 그리고 뒤늦게 알았지만 C게이트에서 A게이트까지 열차가 있을 정도였다. 그걸 그냥 내내 배낭 이고지고 걸었으니...


    그렇게 땀범벅이 되어 7시 8분, 몬트리올행 비행기 7시 10분 출발 2분 전에 게이트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비행기와의 브리지를 떼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게이트의 델타 직원들은 이미 비행기 출발해서 너 못 탄다며 I am sorry라고. 아니 사람이 안 왔는데 정시보다도 더 먼저 출발하는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같은 마음에 배낭을 던지고 싶었지만 꾹 참고 어른스럽게 한국 쌍욕만 살짝 내뱉어 주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니까 일단 오늘은 더 이상 몬트리올행 비행기가 없고, 숙박과 함께 다음 비행기 예약을 도와주겠다 했다. 여기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나 말고 2명이나 더 경유 비행기를 놓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경유시간이 짧다고 좋은 것도, 무조건 수화물 연결 되는 것도 아니구나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었다.


    일단 다음 날 비행기 옵션은 2있었는데, 저녁 8시 10분에 출발해 몬트리올에 밤 11시 44분에 도착하는 것 하나, 혹은 3시에 뉴욕으로 이동하여 다시 저녁 6시 비행기를 타고 몬트리올에 약 저녁 8시에 도착하는 경유가 하나 있었다. 더 이상 경유는 진절머리가 날 것 같아서 그냥 직항을 타겠다고 했고, 짐은 자동으로 연결되니 그냥 몸만 나가서 하루 자고 오면 된다고 했다. 숙소도 여러 가지 옵션을 주었는데 그냥 가장 알려져 있고 공항과 셔틀이 제공되는 힐튼 더블트리를 택했다. 여기에 추가로 20불짜리 식사 바우처 2개를 준다. 공항에서 사용해도 된다고 했지만 호텔에서도 사용은 되었다. 게이트의 델타 직원들은 그래도 미애나폴리스에서 하루라도 즐기고 가라고, 근처에 몰 오브 아메리카 충분히 놀다 갈 가치가 있다고 추천해 줬다. 이름이 심하게 직관적이라 잠시 귀를 의심했지만 진짜 이름이 Mall of America였다. 심지어 미국 최대의 실내 몰이라고.


    일단 이렇게 나는 졸지에 미국 미애나폴리스에서 하루 밤을 보내게 되었다. 살면서 미애나폴리스에서 하루를 보내게 될 줄이야. 역시 고민과 걱정은 미리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벌어질 일은 내 영향 밖에서 터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다음 편에 미애나폴리스에서 몬트리올까지의 사건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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