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진희 생각 - 1
어디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인상 깊게 읽은 글이 있어 소개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당연히 나는 그가 이성적인 판단력이나 높은 학력, 잘 관리한 비즈니스 인맥 같은 것을 꼽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답은 꽤 의외였다. 그는 본인을 믿어주는 다정한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냉철하고 날카로운 피드백이라면 얼마든지 받을 기회가 많지만 따뜻한 말을 들을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 이 글에서는 팀에서 팀원들을 관리하는 사람을 매니저, 관리를 받는 사람을 리포트, 관리하는 행위를 매니징으로 정의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매니징에 대한 내 생각과 통하는 부분이 많아서다. 나는 최근 2~3년 동안 과거의 어떤 때보다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에는 다정한 매니징이 큰 영향을 주었다. 좋은 매니저들을 만난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가 만난 매니저들은 좋은 사람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소통이다. 1 on 1 미팅으로 많은 것들을 나눴다. 업무 고충을 털어놓고 성장을 고민하며 함께 action item 세우고 시도했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과거의 매니저 아보카도 님의 제안 덕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엄청 높았고 그러다 보니 늘 조급했다. 회사 일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평소에 내가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짧은 글을 쓰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던 걸 알고 있던 아보카도 님은 일하면서 느낀 것들을 글로 써 브런치에 올려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공개된 곳에 글을 쓸 만큼 실력이 있는지 확신이 없었던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 지금까지 20개가 넘는 글을 썼다. 이렇게 남긴 글들은 과거의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내 재산이다. 자칫 흘려보낼 수 있던 생각을 소중한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2월 1일부로 입사 2주년을 맞았다. 2년을 넘게 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매니저님의 도움이 있었다. 입사 후 1년 가까이 함께한 매니저 브로콜리 님을 떠올리면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미안한 마음이 크다. 중간 관리자로서 위, 아래에서 오는 압박감이 엄청났을 텐데 늘 내색하지 않고 회사에서 내리는 결정에 내 의사가 가장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준 분이다. 특히 입사 초 나는 심리적 안정감이 많이 낮아진 상태였는데 그로 인해 부트캠프라고 부르는 3개월의 수습 기간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브로콜리 님은 부담감 때문에 내가 100%의 역량을 내지 못하는 것을 염려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얼마나 좋은 능력을 많이 갖추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마냥 좋은 역량만 갖춘 것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렇게 말해 준 덕분에 자신감을 갖고 부트캠프를 마칠 수 있었다. 아래는 당시에 브로콜리 님이 해주신 말이다.
"왜 이렇게 까지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진희 님은 부트캠프를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어요. 수습 기간을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진희 님과 맞는 팀을 찾을 수 있도록 서로의 핏을 맞추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진희 님이 가진 장점을 잘 어필할 수 있는 것을 과제로 정한 뒤 보여주시면 됩니다."
현재는 매니저 치즈 님과 매주 1 on 1을 하는데 격주로 다른 주제를 다룬다. 한 주는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한 주는 개인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개인의 성장은 주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이를 위해 어떤 역량을 키우고 싶은지에 관한 내용들이다. 보통 나는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것이나 Individual Contributor에서 매니저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량들을 키우기 위해 실행해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본다. 실제로 2022년부터는 목적 조직으로 구성된 팀(스쿼드)의 디자인 업무뿐만 아니라 기능 조직인 디자인 팀에서 새로운 역할들을 맡아서 해보고 있다. 그전에는 팀 안에서 구체적인 제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새로운 역할들로 인해 시야를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치즈 님은 디자이너들의 매니저이자 CDO를 겸하고 있다. 매니저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다. 큰 조직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처음으로 겪어보는 디자인 직무의 C레벨이다. 치즈 님의 영향력을 보고 있으면 조직에 왜 C 레벨이 필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따로 또 같이. 개인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여 각각이 본인의 강점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배치하고 역할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개개인의 역량이 모여 하나의 팀으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엮어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매니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따뜻한 말을 건넬 줄 아는 다정한 동료이다. 동료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매니저와 리포트의 관계도 편의를 위해 조직된 하나의 구조일 뿐 결국은 모두가 회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동지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치열하게 주장을 겨뤄야 할 때도 있고 자연스레 날카로운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속에서 일을 잘 해낼 수 있게 하는 것은 다정하게 주고받은 말과 그 속에서 쌓이는 서로 간의 신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2023년 진희 생각 - 2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