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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황 Aug 09. 2021

수능 출제오류 행정소송 분투기

핵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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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강사인데 어쩌다보니 2021수능 '정치와 법' 정답취소 행정소송을 이끌고 있는 이해황입니다. 핵심이 아래에 짧게 요약되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보길 바랍니다.

6월 17일에 첫 변론이 있었고, 다음 기일은 8월 19일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1

지금까지 전문가 여섯 분이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중 다섯 분의 의견서를 공개합니다. 의견서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A. 현직 국어교사 박지성 의견서 (국어문법 기본서 『파란문법』 저자)

B. 서울대학교 국어학(문장론) 박사님 의견서(모 대학 조교수)

C. 고려대학교 국문학 박사님 의견서(오르비클래스 이성권 선생님)

D. 한국논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교수님 의견서

E. 국립대 정치외교학과 정교수님 의견서


의견서 자체가 명문이라서, 읽어보면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 겁니다. 



A. 현직 국어교사 박지성 의견서 (국어문법 기본서 『파란문법』 저자)

소장을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원고측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제 설계에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덧붙여 현장에서 근무하는 국어 교사로서 원고측 의견을 지지하는 근거를 밝히고자 합니다.


원고측 의견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우리말 문법에 기반한 합리적인 해석입니다. 지금 사건에서 다루고 있는 ‘갑국과 을국의 정부 형태는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이다.’라는 문장에서 부사어로 쓰인 ‘각각’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나 물건의 하나하나마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각각’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하나마다’라는 개별성에 핵심이 있습니다. 즉, 부사어 ‘각각’은 주어가 복수를 의미하는 말일 때, 주어를 구성하는 각 주체 요소들이 서술어와 개별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를 덧붙이는 수식어입니다. 이는 곧 위에서 언급한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국의 정부 형태는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을국의 정부 형태는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이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의 문법 직관에도 부합합니다. 처음의 문장에 ‘병국’을 추가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됩니다. 


‘갑국과 을국과 병국의 정부 형태는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이다.’


이 문장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누구도 ‘갑국’과 ‘을국’과 ‘병국’이 모두 다른 ‘정부 형태’를 가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가는 세 개이고 정부 형태는 두 가지뿐이니, 반드시 두 개 이상의 국가가 서로 같은 정부 형태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는 ‘각각’이라는 말이 주체 요소 간의 ‘서로 다름’과는 필연적인 관계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결국 ‘갑국과 을국의 정부 형태는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이다.’라는 문장에서 ‘갑국’과 ‘을국’의 ‘정부 형태’는 서로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어서, 두 국가의 정부 형태가 서로 같은 경우를 문장의 의미 해석에서 배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문제 출제자의 의도가 어떠하든,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 추론과 판단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한 대부분의 문제들은 정규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고 성실히 학습하여 합리적 이성을 갖춘 이들이라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국어 사전을 통해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보편과 상식에 기대어 문장을 해석하고 문제를 풀었음에도 정답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는 수험생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길러진 합리적 이성과 지혜만으로는 수능을 대비할 수 없고,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만의 특수한 언어 관습을 별도로 교육받아야 한다는 불신과 오해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불신과 오해는 결국 수험생들을 불필요한 불안으로 몰아넣고,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정규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착실히 지식을 쌓고 합리적 이성을 길러온 수험생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었으면 합니다.




B. 서울대학교 국어학(문장론) 박사님 의견서(모 대학 조교수)


원고측 소장을 검토했을 때, abXY문장의 의미 해석에 대해서 원고측 의견에 동의합니다. 즉 “a와 b가 각각 X와 Y 중 하나이다”가 a와 b가 모두 X이거나 모두 Y인 경우를 허용한다고 봅니다.  

특히 시험 출제자가 배타적 해석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언어구조들, 예를 들어 'a와 b 중 하나는 X이고, 다른 하나는 Y이다', 'a와 b는 X와 Y를 순서 없이 나타낸 것이다' 등이 충분히 존재했고, 이미 수능 시험에서 쓰이고 있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C. 고려대학교 국문학 박사님 의견서(오르비클래스 이성권 선생님!)


1.  '갑국과 을국의 정부 형태는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 내각제 중 하나이다'의 의미는 문장 자체의 의미로 볼 때 '각각 …와 …이다'로 표현된 것이라면 차례대로 1:1로 대응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으나, '각각 …와 … 중의 하나이다'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갑국과 을국 모두 대통령제, 내각제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2. '각각'이라는 명사는 '하나하나마다'의 의미로서 그 자체로 어떤 1:1의 대응관계를 갖지 않고 개방적으로 쓰인다. 다만 “a와 b는 각각 X와 Y이다”와 같은 문장으로 활용될 때에는 차례대로 1:1로 대응되는 한정된 의미를 지닌다. 


3. 그러나 “a와 b는 각각 X와 Y 중의 하나이다” 문장에서는 이러한 1:1의 순차적인 대응관계로 한정할 수 없다. 이때의 '각각'의 의미는 원래 '각각'의 명사가 어떤 것이든 '하나하나마다'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진 개념 위에 “…중의 하나이다”라는 개방적인 판단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4. 기본적인 문장의 논리적인 의미를 엄정하게 사용하지 않고 쓰는 시험지의 문장에 대한 반성이 요구된다. 결국 이 문제는 논리적인 문장 사용의 오류의 사례로 볼 수 있고 소장의 주장처럼 오답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 




D. 한국논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교수님 의견서


*포괄적 해석 

<갑국과 을국의 정부 형태는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 내각제 중 하나이다.> 

‘~ 각각 대통령제와 의원 내각제 중 하나이다.’라는 표현은 ‘갑국과 을국은 각기 대통령제이거나 의원 내각제라는 정부 형태를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갑국과 을국의 정부형태는 아래의 네 가지 가능성이 있다. 


<갑 (대통령제), 을 (대통령제)>, <갑 (대통령제), 을 (의원내각제)>,  

<갑 (의원 내각제), 을 (대통령제)>, <갑 (의원 내각제), 을 (의원 내각제)> 


또한 소수의 의원 수를 가진 정당에서도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으므로 의회 의석률과 관계된 지문에서의 정보는 첫 번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각각 ~ 중 하나이다”는 포괄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③의 정답 여부 

갑국의 정부 형태와 을국의 정부형태가 모두 대통령제일 경우 (나)에 ③에서의 질문이 들어갈 수 있다. 양국의 정부 형태가 모두 대통령제일 경우는 앞에서 고려한 첫 번째 가능성에 해당한다. 따라서 ③은 정답으로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④의 정답 여부 

④에서 “을국과 달리 갑국의 ...” 라는 표현은 ‘을국의 행정부 수반은 법률안 거부권을 갖지 못하지만 갑국의 행정부 수반은 법률안 거부권을 갖는다.’를 의미할 것이다. 만약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이 법률안 거부권을 가지지만 의원 내각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이 법률안 거부권을 갖지 못한다는 등식이 성립한다면 ④는 갑국은 대통령제이고 을국은 의원 내각제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④의 (나)에 대해 을국이 “예”에 해당한다는 것이 을국이 의원내각제라는 것을 보증해주지 못한다.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도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고 앞에서 보았듯이 양국이 모두 대통령제일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E. 국립대 정치외교학과 정교수님 의견서


이 문제에 관해 제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갑국과 을국의 정부 형태는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 내각제 중 하나이다"라는 표현은 갑국과 을국이 모두 대통령제인 경우와 모두 의원내각제인 경우를 허용한다고 보는 게 맞다. 


1-1. 출제자가 만약 한 나라가 대통령제면 다른 나라는 반드시 의원내각제여야 한다는 의도를 가졌다면, 두 나라의 정부형태가 같지 않다는 점을 명시했어야 한다. 수능시험처럼 제한된 시간에 많은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환경에 수험생들을 몰아넣는 방식의 시험에서 문언의 모호성과 관련해서 출제자가 불확실성의 혜택(the benefit of the doubt)을 누리게 된다면, 사실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 다양한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는 학생일수록 모호한 문언에서 특정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는 부당한 추론을 강제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수험생들이 불확실성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고, 따라서 해당 문항의 문언은 두 나라 정부 형태가 같은 경우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1-2. 답지 ④의 "을국과 달리"라는 표현은 자료의 첫 문장에서 모호하게 표현된 사항을 특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추가 문구에 해당한다. 자료의 첫 문장을 배타적으로 해석한 수험생이라면 "을국과 달리"가 그 자료의 첫 문장 안에 함축된 의미라 여길 수 있었겠지만, 자료의 첫 문장을 포괄적으로 해석한 수험생이라면 부당한 추론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1-3. 답지 ④를 "(나)에 '의회내 과반 정당이 존재하는가?'가 들어가면, (가)에 '행정부 수반은 법률안 거부권을 가진다'가 들어갈 수 있는가?"로 바꿔 써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갑국에서는 35% 의석을 가진 정당의 지도자가 행정부 수반으로서 법률안 거부권을 가지고, 을국에서는 65% 의석을 가진 정당의 지도자가 행정부 수반으로서 법률안 거부권이 없는 경우가 가능한가를 묻는다면  답은 "가능하다"가 된다. 답지를 이렇게 바꿔 썼다면 ④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맞는 답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갑국에서는 35% 의석을 가진 정당의 지도자가 행정부 수반으로서 법률안 거부권을 가지고, 을국에서는 65% 의석을 가진 정당의 지도자가 행정부 수반으로서 법률안 거부권이 없는 경우 말고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러한 결론은 제시된 조건들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 을국이 대통령제일 가능성이 배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출제된 답지 ④는 이를 주장하는 셈이다. 


1-4. 답지 ③은 만일 출제자가 "의원내각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데 비해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고 생각했고, 이 생각이 맞다고 양보하더라도, 원고측에서 주장하듯이 자료의 첫 문장을 포괄적으로 이해한다면 맞는 답이 되므로 복수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 



2. 이의신청서가 다루지 않은 사항에 관한 추가 의견 

2-1. 이 문항은 이의신청서에서 주목한 모호성 이외에도, "전형적인"과 "직접"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몹시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문언의 해석에 관해 논쟁이 발생하는 경우 출제자만이 알 수 있는 자의적(恣意的) 전제가 첨가되지 않는 한 문언의 취지가 확정될 수 없도록 짜여 있다. 


2-2. 답지  ④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 대통령제의 "전형적" 특징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정답이 될 수 있는데, 예컨대 대만 총통에게는 법률안 거부권이 없고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수정 의견과 함께 법률안을 되돌려 보낼 수는 있지만 의회는 단순과반수만으로 재의결해서 대통령의 의견을 묵살할 수 있다. 대만의 경우나 베네수엘라의 경우를 "전형적인 대통령제"라고 주장할 여지도 별로 없지만, 법률안 거부권이 대통령제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봐야 할 이유도 별로 없다. 법률안 거부권이 대통령제의 "전형적인 성격"인지는 아무리 양보해도 논쟁적인 주제 정도에서 그치지 학계의 통설은 될 수 없다. 대통령제/의회제 구분은 대단히 모호하고 거친 구분으로서 "전형적인 성격"에 관해 연구자들 사이에서 어떤 합의도 이뤄진 적이 없고 이뤄질 가망도 없다. 출제자가 만약 미국을 "전형적인" 대통령제로 영국을 "전형적인" 의원내각제로 봤다면, "전형적인" 따위 가식적이고 자의적인 문구를 없애고 그냥 미국과 영국을 논의 대상으로 명시했어야 한다. 만약 미국과 영국의 정부형태 각각에도 "전형적인"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의 모습과 다른 점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면, 더더욱 "전형적인" 같은 모호한 문구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고려로 이어갔어야 한다.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각국 정부형태의 실제 모습을 더욱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문항을 해석해서 답하기에 곤란을 겪을 것이다. 


2-3. 답지 ③은 "의원내각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데 비해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고 양보해도, 자료의 첫 문장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위 1-4에서 밝혔다. 이에 덧붙여, "의원내각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데 비해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문장이 만약 자료의 첫 문장을 배타적으로 해석한다면 맞는지 검토가 필요하고, 이를 검토하려면 "의원내각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데 비해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문장 자체가 얼마나 맞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의원내각제에서도 대통령제에서도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답지 ③은 자체로 정답이 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아마도 추정컨대, 영국이나 독일이나 일본에서 수상을 선출하는 전국 선거가 없고, 각자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일 텐데, 이것은 백보를 양보해도 "직접"이라는 단어가 가질 수 있는 여러 의미 중 하나일 뿐이고 매우 모호하고 자의적인 의미다. 왜냐하면 의원내각제 아래서도 실제 선거는 수상 후보들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지는 형태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영국 보리스 존슨의 선거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한 유권자가 보수당 후보에게 투표한다면, 이 유권자는 십중팔구 수상 후보로 나선 존슨에게 투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투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원내각제에서도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표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선거가 지역구별로 (독일은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이뤄지지만, 그 선거는 개별적인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선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총선거(general elections)로서 하나의 정부를 (그러므로 그 정부를 이끌어갈 수반을) 선출한다는 더 큰 의미를 반드시 그리고 당연히 가진다. 국민이 직접 행정부를 선출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자료의 첫 문장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느냐 마느냐와도 상관없이, "직접"이라는 단어를 사소한 기술적인 차원에 매몰하지 않고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시야에서 이해한다면, 답지 ③은 자체로 정답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수상이라는 직위 자체를 명시적으로 내건 선거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면 바로 그 점을 그대로 지적해서 말하면 될 것이다. 이것을 "직접" 선출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해야 할 이유는 "직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규정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 한 없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어떤 면에서 "간접 선거"라고 부를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국민에 의한 직접 선출"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닌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11월 선거에 투표장에 나갈 때 "선거인단을 선출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선출하러" 가는 것이다. 영국의 유권자들 역시 총선거를 맞아 투표할 때에는 개별 의원에게 표를 주는 의미와 함께 (많은 경우에는 더 무거운 의미로) 어떤 당이 집권해서 누가 수상이 될 것인지에 투표하는 의미가 있다. 의원내각제에서 수상이 선거에서는 일개 의원으로서 지역구에 출마하는 데 비해 대통령제에서는 전국을 선거구로 삼아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담당할 사람을 명시해서 선거가 행해진다는 차이는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국민이 직접 투표해서 정부를 선출한다는 민주주의의 대의에 비해 아주 사소한 기술적인 차이에 불과하다. 더 크고 중요한 의미의 "직접"에 따르면 정답이 되어야 하는 답지를 더 작고 사소하며 부정확하기까지 한 의미의 "직접" 때문에 정답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 


2-4. 어느 나라도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를 "전형적인" 성격들을 한데 모아 채택한 적이 없다. 이런 저런 나라에서 이런 저런 형태의 정부를 세우고, 때때로 변경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학자들이 사후적으로 이런 모습들을 몇 가지로 유형화해보려는 노력이 대통령제/의원내각제라는 용어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의 노력은 여전히 논의 중인 상태이지, "전형적인" 대통령제/의원내각제가 무엇인지에 관해 합의 비슷한 어떤 것도 없다. 이런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문항은 마치 질문의 주제를 이루는 주요 사항들이 자체로 매우 명확해서, 다양한 방향의 논리적 조작이 용이할 때에나 활용해 볼 수 있는 구도로 설계되어 있다. 이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다. 대통령제/의원내각제는 "전형적인" 성격을 누가 어떻게 규정하든지, 그것만 알아서는 거의 쓸모가 없고, 가치 있는 지식에 도달하려면 대통령제/의원내각제의 도식을 벗어나 실제 어떤 나라에서 헌정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하는 종류의 주제다. 이것을 도식적으로 주입하고 선다형 시험으로 성과를 측정하는 것도 부적절한데, 더구나 그렇게 불확실한 영역의 주제에 관해 "반드시 그렇다"와 "때로는 그렇지 않다", "반드시 그렇지 않다"와 "때로는 그럴 수도 있다"의 분별을 묵살하는 방식으로 논리적 조작을 요구하는 문항 설계는 특히 부적절하다.




이 자리를 빌려 의견서 제출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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