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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봅 Mar 03. 2020

육아_log : 아기를 바라보며 친정엄마를 생각한다

내가 아기였을 적, 엄마도 이랬겠지?

 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곧이어 친정엄마의 생각이 그 뒤를 따라온다. 힘들면 힘든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엄마 생각이 나고 그럴 때면 곧 엄마에게 전화를 해 아기 키우는 이야기며 옛날이야기며 이런저런 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살가운 딸이었던 적이 없었기에 그렇다.


 내가 중학생이 될 때에 엄마는 처음으로 나에게 핸드폰을 사 주셨고, 나는 그 핸드폰을 들고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전화나 문자는 할지언정 가족들에게는 연락 한 번을 제대로 하는 적이 없는 그런 애였다. 오죽하면 엄마가 누구네 집에 놀러 가면 놀러 간다고 연락하고, 수학여행 가서는 잘 도착했다고 연락 하라며 언제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줄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매뉴얼조차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독립을 해서도 마찬가지로,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핸드폰은 국을 끓여먹어 목소리 한번 듣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딸,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변한 건 딱 아기를 출산하고 나서부터이다. 임신 기간 동안에도 별다른 소식 없이 그저 오는 전화받을 줄이나 알던 딸은 엄마의 도움으로 산후조리를 마친 뒤 딱 180도로 달라져 무슨 일만 생기면 쪼르르 엄마에게 연락을 한다.


 엄마, 아기가 이러쿵저러쿵...

 엄마, 이유식이 이러쿵저러쿵...

 엄마, 아기 똥이 이러쿵저러쿵...

 엄마, 예방접종이 이러쿵저러쿵...

 

 무심한 딸은 아주 작은 아기의 엄마가 되어 그제야 엄마에게 이러쿵저러쿵 할 말이 많아졌다. 왜일까, 엄마가 되고 보니 그동안 당연한 줄이나 알던 엄마의 존재에 감사해서였을까, 아니면 초보 엄마에게는 이미 세 남매를 길러낸 베테랑 엄마의 조언이 필요해서였을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내 아기를 바라보며 엄마를 생각한다. 아기가 웃으면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울면 우는 대로 걱정스러워서, 이리 속이 타는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공감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아마 엄마도 내가 아기였을 적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작고 여린, 그래서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기를 바라보며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철없던 나는 이제와 조금씩 철이 들며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엄마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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