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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봅 Jul 22. 2020

대충, 가랑비에 옷 젖을 만큼만.

   

 한때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는 뭘 해도 어설프고, 아무리 완벽해 지려 노력해도 처음의 각오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게다가 완벽하지 못한 것은 쓸모없는 것이고, 무엇이든 대충 일 처리를 하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완벽하기란 얼마나 힘이 든 일인가.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 해 질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완벽하기를 바랐다. 그렇다 보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초반엔 온갖 힘을 싫어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해 나가지만 결국 제 풀에 나가떨어져 마지막엔 흐지부지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나의 경우는 피아노가 그랬다. 피아노 연습을 할 때 처음엔 완벽하게 하고자 한음한음, 박자, 악상을 모두 살려 연주해 나갔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기본적인 악보를 읽는데 급급해 결국 크게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곡의 첫 부분은 잘 치치만 끝으로 갈수록 어설퍼지는...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찌어찌 나는 피아노과에 진학을 했고, 피아노라는 악기를 전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어설픈 완벽주의 따라 하기는 불가능해졌다.      


 교수님은 차근차근 악보를 읽는 것부터 함께 해 주지 않는다. 첫 레슨 때부터 악보를 다 읽었다는 가정하에 레슨이 진행되는데, 만약 악보를 대충이라도 다 숙지하지 않은 채 레슨에 들어가게 되면 레슨의 퀄리티가 낮아지고, 교수님의 큰 한숨소리와 함께 “오늘 레슨은 여기까지 하자. 다음 레슨 때는 꼭 악보 읽어와.”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다음 레슨, 즉 일주일 뒤엔 죽이 된 악보이던, 밥이 된 악보이던 끝까지 악보를 읽어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악보를 ‘대충’ 읽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그 대충 읽은 악보를 다듬고 또 다듬어서 시험을 치를 때나 연주를 해야 할 즈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 더 완벽에 가까운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을 대충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서 끝까지 그 일을 대충 하게 되지는 않는다. 아니, 대충 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대충이란 시간이 모이면 더 이상 그 대충은 대충 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니 너무 처음부터 완벽함에 목을 멜 이유가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초반에만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는 대충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겐 완벽함을 끝까지 유지할 능력이 없는 것을 인정한 셈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지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지구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고, 결과에 목 메지 않고, 그저 마음먹은 일을 ‘대충’ 해 나가는 것은 어떤 기대도, 스트레스도 없는 일이다. 무슨 일을 시도하던 처음부터 완벽함을 쫓을 때는 모르던 여유였다. 그래서 무엇이든 대충이나마 꾸준히 하게 될 수 있었다. 스트레스가 없으니 무언가를 계속하는 게 어렵지 않아 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한다. 또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완벽의 늪에 빠져 무엇도 끝까지 완벽함을 유지하지 못한 채 버거워하고 싶지 않다. 딱 가랑비에 옷 젖을 만큼만, 딱 그만큼만 무언가를 계속하고 싶다.     


 나는 요즘에도 대충 무언가를 한다. 대충 일을 하고, 대충 육아를 하고, 대충 피아노를 치고, 대충 글을 쓴다. 하지만 대충 시작했다고 해서 계속 대충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나에게는 대충이나마 뭐라도 하면서 쌓아온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일단 대충 초고를 작성한 뒤, 대충 한번 읽어보고, 글을 수정하고, 오타 검사를 마친 뒤에, 이 글을 마무리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 내 글은 ‘대충 쓴 글’ 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충이나마 써 온 글자의 수가, 키보드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이 나를 당당하게 한다.  내가 쌓아온 시간이 결과적으로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준 것을 알기에 그렇다.      


 가랑비에 옷 젖고,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으며, 티끌모아 태산이랬다.


 그러니, 대충이나마 뭐든 해 보면 뭐라도 되어 있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살아온 내 삶이 결국 나를 이뤄내지 않았는가.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     

 

 그것은 내게 대충 쌓인 시간이다. 내가 대충 지나온 모든 날들이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냥 이렇게 대충 서 있어도 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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