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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Jan 25. 2024

저장 혹은 Stand by

육체노동의 나날들_07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즉시 꺼내어 원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도록 가지런하게 정리해서 저장해두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과연 팔릴 것인가를 예측해서 분량의 것을 적절하게 저장해두는 것 또한 몹시 중요한 일이다.

공간이 한없이 넓어서 그 모든 것을 꽉꽉 채워두고 판매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기엔 공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때에 인공지능이 개입한다.

인공지능은 어느 지역의 어떤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물건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각각의 아이디가 있으니 이 개별적인 소비자는 주로 어떤 물건을 언제 구매하는지 귀신처럼 알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소비자가 플랫폼으로 유입되어 무언가를 주문할 준비가 되면 ‘지금 구매하려는 그것에다가 이것까지 더해서 주문하면 할인이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제안까지 할 수 있는 것.

이런 모든 일을 관장하는 인공지능이기에 매일 매장의 판매 상황을 분석하고 매일을 요일로, 시간으로 세분화하고 그걸 다시 월 단위로, 계절 단위로 분석해둔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벽에 출근한 크루들에게 그 날 새롭게 진열할 물건들의 주문을 내려 물류 트럭에 실어 매장별로 배달하는 것.

설날을 즈음해서는 떡국 재료인 떡, 김, 레트로 고기육수가 아주 많이 입고되고 복날 전날에는 레트로 생 가리지 않고 닭과 삼계탕 재료들이 진열대를 꽉꽉 채우는 이유다.

이런 인공지능의 예언은 저렇게 잘 들어맞기도 하지만 틀려서 물건이 과다 입고되어 가뜩이나 좁은 매장에 골칫거리처럼 쌓여 있을 때도 있다.

나는 이따금 그렇게 인공지능이 엉뚱하게 실수하는 날이면 혼자 킬킬거리며 웃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자니 그런 실수조차도 아마 인공지능에게는 데이터로 쌓여서 이런 실수조차 조금씩 줄여나가고 개선되겠지.

맙소사.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인간인 나에게도 각종 삶의 데이터가 축적이 되지만 인공지능처럼 척척 개선되지만은 않는다.

어쨌든 그렇게 팔기 위한 저장 과정이 끝나면 팔기 위해 저장하느라 나온 각종 폐기물의 정리가 기다리고 있다.

종이상자, 플라스틱, 비닐의 잔해들을 다시 차곡차곡 분류해서 ‘저장’한다.

냉장칸에서 오늘 들어온 신선식품 중 선도가 떨어지는 것이 들어오진 않았는지 그동안 진열하며 냉장칸에서 판매되길 기다리는 동안 상한 것은 없는지 신선도를 검사하고 나면 거기서 추려진 각종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을 분류해서 전산으로 입력한 뒤 폐기 예정 통에 ‘저장’해둔다.

앞에 이야기한 두 가지 저장은 조금 의미가 다르다.

이들은 버려지기 위해 저장되는 것이다.

매장에서는 매일 그리고 끊임없이 저장이라는 과정이 일어나고 있다.

혹은 다음 과정을 위한 Stand by라고 해야 할까.

팔려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위해 혹은 폐기되기 위해.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삶에서 끊임없이 저장과 Stand by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과정이 일어나니까.

우리도 각자 안에 쌓인 데이터를 통해서 어떤 것을 입고해서 진열할지 결정하고 어떤 것을 잘 분류, 저장해서 버릴지를 결정해야 하는 거다.

그 싸이클이 잘 돌아야만 당신의 인생도 순조롭게 착착 돌아간다.





주의!!

실수의 데이터는 잘 입력해뒀다가 반복하지 말자. 인공지능에 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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