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 후기, 기록과 저장
독서모임을 시작한 첫 회부터 개인 노트에 모임 후기를 썼다. 일기를 쓰듯이 책에 대해 나눈 이야기 외에 날짜, 참석자, 시간, 그날의 대화와 분위기, 간식 등 소소한 것까지 두서없이 적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더듬어가며 사건과 감정들이 잊혀지기 전에 낱낱이 기억해서 문장으로 만드는 작업, 그건 내게 있어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물처럼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잠시라도 더 붙들고 싶은 행위에 다름 아니다.
몇 번의 모임이 진행되고 회원들 모두가 독서모임이라는 형식에 익숙해질 무렵, 모임 후기를 아카이 빙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몇 가지 제안을 고려한 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의 계정을 만들어 그곳에 후기를 공유하기로 했다. 모임명은 임시로 501 북클럽이라고 지었는데 결국 대표 이름이 되고 말았다.
사진 몇 장을 첨부해서 그날 모임에서 다룬 논제와 다양한 이야기들을 요약해서 올리는 것은 사실 부담이 적지 않은 일이다. 인스타그램은 제한된 글자 수가 있기 때문에 글이 너무 길어도 안 되고, 온라인이라는 특성상 문장은 짧고 명료한 게 좋고, 보기 편하도록 적당한 문장의 배열도 요구된다. 무엇보다 뒤처진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문체를 어느 정도는 익힐 필요도 있다. 올드함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나는 글을 올리기 전에 되도록 20대인 딸들의 검열을 받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유저들이 많은 매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을 모두 염두에 두고, 모임 중에 오갔던 이야기들을 기억해내면서 책에 대해 써 내려가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노트북의 빈 화면을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보다가 첫 문장을 간신히 시작한 후에 글의 구성을 대략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쓰다가 보면 이렇게 짧은 글도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게시물 작성 완료 버튼을 누른 후 뻐근해진 등허리를 바닥에 눕히고 나면 한 권의 책을 세 번 읽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오면서 달콤한 잠에 빠질 수가 있다. 혼자서 한번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미처 보지 못한 시선으로 새롭게 읽고, 후기를 작성하는 동안 한 번 더 책의 내용과 주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한 권의 책을 이렇게 정독하기란 아무래도 혼자서는 어렵다.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에 모임 후기를 하나둘 저장하고 어느 정도 지난 후 돌아가며 쓰자고 제안 한 건, 식상해지는 위험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각자의 일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시간 여유가 많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어서인지 처음에는 다들 난색을 표했다. 그렇다면 꼭 차례대로 써야 한다는 의무를 갖지 말고 쓰고 싶은 주제가 있을 때 자원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글의 형식이나 내용에도 얽매이지 말자고 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좋았다. 결이 다른 문체들, 나름의 독특한 시선들이 전해주는 생동감은 아카이빙의 격을 한층 높여 주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책을 더 잘 읽었다는 성취감을 나처럼 느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무튼 우리는 책을 잘 읽기 위해 모이지 않았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