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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일북클럽 Aug 27. 2021

책이 있는 공간을 찾아서

책을 찾아 떠나는 여행#1

지난봄, 제주 여행은 특별했다.  이유들  하나는 ‘북 스테이’에서의 숙박인데. 서가의 배치와 조명, 음악이 하나하나 세심하게 선택된 공간이 주는 감동의 여운은  짙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큐레이션이 마음에  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림책, 시집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은 주인장이 읽고 나서  감상과 인용 문장들이 적힌 띠지로 둘러져 있었다. 메모지와 연필 등이 담긴 바구니, 차를 내려 마실  있는 도구들까지 세심한 배려의 흔적을 구석구석에서 발견하고 감탄했다. 여행가방에 항상 책을 넣어가도 여유 있게 책 읽기란 좀처럼 어려운데, 그곳의 따뜻한 적막 속에서 밤늦도록 독서에 몰입할  있었다.


그때부터 책이 있는 좋은 공간을 먼저 검색한 후에 그곳을 기점으로 주변을 탐색하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 예기치 못한 풍경과의 조우, 건축, 음식, 산책 등으로 이루어지는 설레고 즐거운 여정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이 주는 떨림과 안정감은 당일 여행에 적절하다.


춘천의 공유 서재를 찾아가는 길도 즉흥적이었다. 자동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이 고장 난 줄도 모르고 엉뚱한 길로 달리고 있다가 ‘춘천’이라는 표지판을 본 순간 꼭 한번 가봐야지 했던 북카페가 떠올라서 행선지를 바로 변경했다. 춘천에 진입해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구불구불 가파르게 올라가 찾아간 그곳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공간이었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어서 마음껏 둘러보고 머무를 수 있었다. 오래된 집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채 북카페로 개조한 그곳에는 돋보이는 아이디어가 곳곳에 숨어있었다. 백 년도 넘은 나이인 듯 보이는 커다란 나무를 둘러싼 원목 테이블과 벤치, 온실처럼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서재 안의 문짝 테이블, 책장 뒤에 숨겨진 화장실, 두 개의 방이 주제가 다른 큐레이션으로 채워진 책장. 감탄할 만한 점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공유 서재’라는 개념이었다. 적은 비용으로 누구나 서재를 시간 단위로 이용할 수 있고, 춘천지역 창작자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플랫폼으로의 역할도 하고, 창작자들을 위한 단기 레지던시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곳을 만든 주인의 마인드는 내 생각과 많이 일치해서 나를 다시 꿈꾸게 만들었다.


괴산과 제천의 서점은 휴무일이라서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소 낯선 여행지인 그곳, 책방을 둘러싼 풍경 속에서, 거닐다가 멈추고 들여다보다가 쉬고, 먹고 다시 걸으며 기분 좋은 충족감을 실컷 맛보았다. 두 군데 모두 주인이 거주하는 집과 함께 하는 곳이었는데 구체적인 꿈에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파주 출판단지는 처음 이곳이 만들어진 이후로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단지 안에서조차  차로 이동하면서 몇 군데 스폿만 둘러봤었다. 이번에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천천히 걸어 다녔다.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출판사 건물 사이 늪지를 통과하는 산책로. 우거진 나무들과 그 속에 감춰진 조형물들. 어느새 낡고 벗겨져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각각의 독특한 출판사 건물들. 헌책방, 북카페, 도서관, 박물관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낯선 행성 같은 분위기에서 ‘책’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다.


강릉의 독립서점은 올드 타운의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의 1층을 꾸민 공간이다. 책, 음악, 테이블, 의자 등이 어찌 보면 평범하게 놓인 공간인데, 그곳을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건 무엇보다 ‘책’이 그 이유이다. 작은 독립서점이지만 좋은 책이 많았다. 신간을 비롯해 다양하고 전문적인 책들이 잘 유통,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블라인드 책이 놓인 코너에서는 책을 권유하는 몇 줄의 이유만 읽고 연상되는 사람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는 일이 재미있었다.


보호자라는 자격으로 2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찾는 동네 의원은 ‘책’이 있어서 늘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향하는 곳이다. 큐레이션이 심상치 않아서 오래 망설이다가 마침내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 소설, 에세이, 예술, 심리, 그림책등 다양한 컬렉션은 늘 책을 가까이하고 꾸준한 정보를 모으는 애독자만이 선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직접 사서 모은 책이라는 대답과 함께 물어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수줍어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더 신뢰감이 느껴졌다. 그곳의 대기실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매번 아쉬워하며 병원문을 나서게 된다.


빈 테이블 위에, 화분 옆에, 창가에, 선반 위에 무심히 놓인 몇 권의 책과 볼륨 낮은 음악이 흐르는 공간이 주는 그 특별한 공기를 사랑한다. 사방을 둘러싼 바쁜 일상과 나 사이에 진공을 만들어주는 그곳은 어떤 상상도 가능케 하는 곳이다. 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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