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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iq Oct 26. 2015

엄마에게

엄마의 기쁨조 드림

엄마 안녕?


엄마에게는 늘 할 말이 많아서 가볍게 노트북을 펼쳤는데, 어쩐 일인지 그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만 뒤죽박죽이고 입 안 가득 머물기만 할 뿐 나올 줄을 모르네. 


내가 이렇게 먼 중동 땅에 나온 지도 벌써 일 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이제 이 생활에도 그럭저럭 적응해서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지내고 있는데 엄마는 이제야 엄마 딸 이 더운 땅에 보낸 애달픈 속내를 드러내며 속상해 하노. 어찌 보면 다행이지. 처음부터 엄마가 날 안쓰러워하는 티를 냈다면 난 초장에 이 생활 포기하고 귀국했을지도 모르니까. 이런 거 보면 엄마랑 나랑은 참 타이밍이 잘 맞는 것 같다. 역시 소울메이트답군.


이틀 전에 엄마가 보낸 카톡 보고 많이 울었다. 어깨가 아파서 일 그만 두기로 했다는 말과 그래서 너무 우울하다는 말이 그 문자 그대로 내 가슴에 턱턱 얹히는 것만 같았다. 당최 힘들다는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늘 속으로 혼자 앓기만 하는 엄마라서 그 감정 날 것 그대로의 말을 들었을 때 더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동시에 엄마가 꼭 정년 퇴직하고 싶다고 했던 말과, 가끔 대구 내려가면 같이 커피 마시러 가서 엄마가 계산하며 '내가 돈 버니까 좋제?' 하며 웃던 엄마 모습이 생각났다. 엄마, 나는 왜  그때 엄마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좀 더 사려 깊게 듣지 못했을까?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좀 더 생각했더라면,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둔다며 우울해하는 엄마에게 더 힘이 되는 얘기를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십오 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냠냠 선생님으로 있으면서 그 사이 우리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시켰는데, 나도 이렇게 아쉬운데 엄마의 허전함과 공허한 기분은 헤아릴 수가 없겠지. 그래, 어쩌면 단순히 일을 그만두게 되어 기분이 안 좋은 것만 아니겠구나 우리 엄마. 좋으나 싫으나 엄마의 치열했던 사십 대를 보냈던 곳이고 수많은 추억들이 응집된 곳이니 그 곳 자체가 이제 엄마에게는 정이겠구나. 많이 섭섭하겠네. 그 말을 먼저 했어야 했을걸. 나는 아직도 엄마의 마음을 읽기엔 너무 어린 딸인가 보다.


아빠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도, 엄마 반찬 가게를 접을 때도, 집에 크고 작은 소란들이 있을 때도 담담했던 엄마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사실 나도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뭔가 엄마를 위로한다는 행위 자체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하는지조차 몰라 허둥댔던 것 같다. 내가 참 강하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이렇게 여리고 말랑말랑한 심장을 지녔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숱한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나, 지금 그 속이 괜찮은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직 나도 시집 보내야 하고 흠이도 장가 보내야 하는데 큰일이라는 엄마 얘기에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수화기 넘어 내 가슴까지 텁텁해지더라. 엄마한테는 우리와 관련된 일은 모든 것이 못해줘서 속상한  것뿐인 것 같아서.


엄마, 나는 그저 엄마가 웃을 일이 참 많았으면 좋겠다. 


어릴 적 엄마는 한 때 포항 어느 마을 복숭아 과수원집 셋째 딸로 귀하게 큰 적도 있었다가, 외할아버지를 일찍 여의고는 기운 가세에 남동생 둘 데리고 대구로 올라와 열다섯 살 적부터 밥 지어 먹이며 학교를 다녔다고 했잖아. 옛날에 내가 엄마 음식에 감탄하다가 엄마는 요리를 어떻게 배웠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그 시절에 대한 내공이라고 우스개소리로 얘기했었지.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백화점에서 근무하다가  스물다섯에 아빠를 만나고 삼 개월만에 결혼하고는  스물여섯에 나를 낳았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물여덟에 흠이 낳고는 혼자 버는 아빠가 안쓰러워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엄마 봐봐. 벌써 이십칠 년이네. 늘 배워놓은 기술이 없어 큰 돈 못 번다고 속상해했던 엄마가 이십칠 년이나 일해서 우리 대학 졸업까지 했다. 엄마, 엄마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당당해야 해.  


엄마, 저번에 내가 엄마는 대학 갔었으면 뭐 배우고 싶었을 것 같냐고 했던 말에 엄마가 사진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말에 엄마 주변으로 희끄무레한 후광이 덮이는 것처럼 순간 엄마가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었다. 사진 찍으며 자유롭게 살았을 거라는 엄마. 그러면서 나는 네가 참 부럽다고 하던 엄마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사진 찍어보라는 내 말에 이젠 팔이고 어깨고 아파서 못한다고 새초롬하게 내뱉는 엄마가 살짝 밉기도 했었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우리 엄마이기 이전의 엄마 모습을 생각해봤던 것 같다. 아, 엄마도 꿈이 있고 낭만적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구나. 녹록지 않은 현실에 약간의 좌절과 얼마간의 타협을 번갈아가며 꿈은 접어두고 현실 앞에 마주 섰던 여렸던 아가씨 시절이 있었구나. 그 시절 엄마가 참 안타까웠고, 기회가 된다면 달려가 아직은 그 젊은 손을 붙잡으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 것 하고 배우고 싶은 것 배우면서 재밌게 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럼 엄마 표정은 어땠을까. 궁금하다. 


엄마, 나는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엄마의 그 깊은 속을 다 헤아릴 수 없을 거다.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할 때 보니 생각보다 내가 엄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어쨌든 내가 원하는 건 엄마가 남은 인생 이제는 좀 홀가분하게, 즐겁게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나는 그런 엄마를 위해 영원한 기쁨조가 되겠어. 사랑하는 엄마, 하고 싶은 말 너무  두서없이 적어 내렸네. 손으로 꼭꼭 눌러써서 예쁜 편지지에 내 마음을 담아 볼게. 한 글자, 한 글자에 내 진심을 다 담고 내 기도를 다 담고. 그 기도가 지금 눈물로 가득 차 있는 엄마 가슴을 토닥토닥 달래 주기를 바라면서. 사랑해. 지금 이 순간 이제는 더 이상 혼자서 견디지 말고 우리에게 기대. 


엄마의 사랑하는 큰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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