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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진 Jul 03. 2019

펜싱 이야기 #12. 어떤 펜서가 될 것인가.


 당신은 어떤 펜서가 되고 싶은가? 부디 '블랙 펜서'라고 답을 하지 않으셨길 바란다.


 국가 대표를 꿈꾸는 학생 선수들이나 현직 선수들과 시합을 뛰어보면 그 친구들의 플레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균형이다. 그들은 공격과 수비가 안정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화려한 공격이나 퍼포먼스보다는 간결하면서 빠른 공격을 우선시하는 날쌘 펜서들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펜싱을 하는 외국 선수들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름표를 떼면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은 스타일을 구사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우리나라 펜싱은 엘리트 스포츠이다. 어린 시절, 달리기를 잘한다거나 축구, 농구를 제법 하면 '너 펜싱 선수해라.'하고 콕 찍은 다음 죽어라 훈련시키는 징집형 스포츠이다.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부터 효과적인 군사 교육받으면서 고등학교 1학년쯤 되면 이미 특등 병사가 된다. 이제 여기서부터 살아남는 슈퍼 솔저들은 대학이나 실업팀으로 넘어가고, 여기서 떨어져 나간 친구들은 뒤늦게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제 아마추어 펜서들을 살펴보자. 공격이나 수비, 둘 중 하나를 특출 나게 잘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수비가 서툴면 수비를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공격이 서툴면 공격을 집중적으로 훈련해 모두가 모난 구석 없이 둥그스름한 형상이다. 여긴 또 왜 그런 걸까?


 엘리트 펜싱을 마친 선수들이 클럽을 차리거나 클럽 소속 감독, 코치로 일을 하면서 자신들이 어렸을 때 배웠던 (군사 훈련) 과정을 그대로 가르쳐서 그런 게 아닐까. 개인의 특성과 성격을 배제하고 모두에게 똑같은 순서,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모두 같은 모양, 같은 냄새를 풍기는 펜서가 된 것이 아닐까.


 그런 펜싱은 좀 지겨운 구석이 있다. 1대 다수의 레슨에서의 효율성이든가 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성장 측면에서는 확실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배움의) 재미 측면에서는 정말 꽝이다. 승리만이 살 길인 프로의 세계에선 합당한 훈련법일지 모르겠지만,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닌 아마추어의 세계에선 좀 불편한 훈련법인 것은 사실이다.


 특정 기술을 잘 써먹고 있으면 그것만 하지 말고 다른 것 좀 하라고 혼을 낸다. 공격으로 밀어붙여 승점을 따내는 사람에겐 뒤로 빠져서 방어도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방어에 능숙한 사람에겐 이제 좀 앞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냐고 공격을 부추긴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지 않고' 다른 방식을 취했다면 이겨도 진 것으로 여기어 버린다.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펜서가 되고 싶은가?


 황당무계한 전술도 좋다. 성공률이 5% 미만이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엄청 폼이 나는 카푸치노 펜서라도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격만 하는 불도저형도 좋고, 시작과 동시에 쪼르르 도망쳐서 잽만 날리는 쫄보 펜서가 되어도 좋다. 어떤 스타일의 펜서가 되고 싶은지 정했다면 그에 맞게 다양한 기술들을 연습해보자. 적당한 기술이 없다면 만들어도 보자.


 펜싱은 참 어려운 운동이다.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잘하기는 정말 어려운 운동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선수가 아니다. 펜싱이 직업이 아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자유로워지자. 50명, 100명, 각기 다른 개성의 사람들이 모인 시합장에 50개, 100개의 스타일이 흘러넘치는 펜싱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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