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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진 May 29. 2019

펜싱 이야기 #7. 아마추어가 갖추어야 할 3가지 덕목

 펜싱을 시작하면 생각보다 힘든 기본자세에 첫 좌절을 경험한다. 정말 피스트에 서서 앞뒤로 '걸어' 움직이는 것조차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스텝이라 부르기 민망한 자세로 오리처럼 뒤뚱뒤뚱 앞뒤로 걷기 연습만 하다가 녹초가 된다. (초보자를 비웃는 게 아니다. 나 역시 다른 사람과 같은 오리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2~3개월이 지나면 펜싱에 대한 개념이 잡히고, 규칙을 통한 공격과 수비가 몸에 익으면 본격적인 막싸움이 시작된다.

 

 기본적인 공격과 방어 기술을 숙달하는데 5~6개월 정도 걸린다. 그동안 펜싱이라는 종목에 실망한 사람, 늘지 않는 실력에 좌절하는 사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명씩 빠져나가고 처음 등록을 한 사람들 중 약 20% 정도만 클럽에 남는다.


 펜싱을 오래 즐기고자 한다면 아래 3가지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아마추어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폼 잡을 것

 둘째, 끊임없이 시도할 것

 셋째, 겸손할 것


  폼은 곧 바른 자세를 뜻한다. 멋진 자세가 나오는 선수는 시합에 지더라도 충분히 멋지다. 반면에 프로는 이기는 게 목적이다. 이기지 못하면 존재(월급)에 대한 정당성을 증명해낼 수 없다. 그들에게 멋짐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자세를 무너뜨려라도 득점에 성공시켜야만 한다. 간혹 그런 동작들이 누적되어 그 선수만의 기술로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그건 엄청난 시간 동안 끊임없이 기본기를 갈고닦은 뒤에나 가능한 동작이다. 그런데 유튜브의 시합 영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한 많은 초보들이 기본기가 아직 장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동작들을 무리하게 따라 하면서 기본자세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한 번 무너진 자세는 쉽게 돌아오지 않아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플레이가 지저분해진다. 담백하고 깔끔한 자세야말로 아마추어만이 가질 수 있는 낭만이다.


 펜싱(을 포함한 모든 스포츠)은 플레이하는 자신이 멋있게 느껴져야 오래 할 수 있다. 승리를 위해 점수 따기 쉬운 동작만 하고 지저분한 플레이만 계속하다 보면 시합은 지루해지고 실력은 늘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사람들은 당신과의 시합을 점점 피하게 될 것이다. 추잡하게 이길 바에 차라리 멋지게 지는 게 낫다. 비록 예선 탈락한 시합이라 할지라도 단 1점만이라도 우아하게 득점에 성공했다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웃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마추어는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로 잘 안 되던 어려운 기술을 성공시키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펜싱은 타이밍 싸움이라 상대의 리듬을 읽고 반 박자 빠르게, 혹은 반 박자 느리게 공격하는 것이 궁극의 경지이다. 하지만 그 리듬을 읽어내고 깨부수는 게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기술을 배워 놓고도 시합 중엔 그 기술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저 힘과 속도로만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5점 선취인 예선전에서는 통할 지 모르지만 15점이 걸린 본선 무대에선 그런 단순한 패턴이 통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피스트에 오를 때마다 다양한 공격을 계속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전술 노트, 오답노트를 꾸준히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나의 페인팅 동작을 개발하고, 나의 필살기를 하나씩 늘려가야만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 잘 되는 것만 고집하는 일방통행 펜서는 반드시 막히게 되어 있다. 늘 이기던 상대에게 어느 순간 잡히게 될 것이고, 다시는 그를 추월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추어는 겸손해야 한다.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 싶으면 슬슬 상대를 가리기 시작한다. 초보에게는 대충대충 검을 던지듯 플레이를 하고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인 선수에게만 최선을 다한다. 딴에는 약한 자와의 시합에서 체력을 아껴두었다가 강한 자에게 집중하겠다는 계획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고 오만이다. 상대 선수의 수준에 플레이를 맞추는 것과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상대 선수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아마추어는 끝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감독이나 코치에게도 배우지만 동료들에게도 배우고 신참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 상대가 나보다 실력이 못하다 하여 거만한 자세로 검을 던지는 플레이는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훈련을 하지만 이기는 것에만 가치를 둬서는 안 된다.


 펜싱은 손이 많이 가는 취미이다. 시작도 어렵지만 잘하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펜싱은 타고난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그야말로 노력한 만큼 실력이 쌓이는 정직한 운동이다. 처음엔 별 볼 일 없어 보이다가도 시간을 들이다 보면 어느 틈에 원금에 이자가 붙어 제법 두툼해지는 그런 적금 같은 스포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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