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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장윤 Nov 03. 2015

역사와 사실은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역사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렇죠? 그거 틀렸습니다.’


‘누구나 모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이념으로 학교를 만든 괴짜 창업자 덕에, 내가 나온 대학교는 졸업 필수로 다양한 과목들을 배정했다. 전산과로 입학한 학생에게도 인문학/사회학 다섯과목을 졸업 필수로 던져주어 신입생부터 초난감한 상황에 놓였던 나는, 다른 많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쉽게쉽게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마음에 가득차 있었다.


전공 수업들을 배치하고 남는 시간대에 가장 쉬운 과목이 뭘까 뒤지다가 눈에 들어온 과목이 '고대 중국사'였다. 그래 내가 그래도 삼국지도 좋아했고 이야기 중국사도 완독 했으니 미국 애들 보다야 학점따기 훨씬 유리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신청을 했는데, 첫번째 수업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교수님이 하셨던 첫 마디가 저 위에 있는 말이었다.  


교수님이 저말을 하시자마자, 교실엔 적막이 흘렀다. 내 머리속에도 뭐 이딴 교수가 다있어.. 라는 생각 뿐이었고 주변 학생들도 다들 멘붕이더라. 잠깐의 적막이 흐른 후 교수님이 이어가신 말에 우리는 다시 한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역사는 관점을 기록한 것입니다. 모든 사료에는 작성자의 관점과 의견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관점을 넘어 사실을 보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지금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면 정말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반응을 하기가 불가능했다. 사실 정상적인 대학교 1학년이 저 말의 중요성을 이해하면 그게 더 이상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은 마음속의 울림으로 남아서, 그 수업이 끝나고 졸업 필수 과목을 다 채운 다음에도 역사 과목을 더 듣게 만들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나는 저 말의 울림 덕분에 전산과와 사학과라는 극과극의 복수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지금은 둘 다 관련되지 않은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저 날의 기억은 학창시절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아있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다른 시각에서 보는 사료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장려해야 할 일이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큰 이벤트였던 임진왜란을 기록 했던 선조때의 실록은 두가지 버전이 존재하는데, 대북파가 작성한 광해군 때의 선조실록과, 서인이 작성한 효종때의 선조수정실록이다. 두 버전에서 사람에 대한 평이나 전투 결과에 대해 보여주는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관점의 사료가 존재하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인 우리가 교차검증을 통해 임진왜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수 있게 되었다. (선조실록 하나만 존재했다고 하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원균을 구국의 명장으로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한 당대의 실권자들도, 이 버전으로 지난 버전을 대체하거나 통합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시각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만족했을 뿐이다.


역사 교과서를 한가지 버전으로 국정화 한다고 한다. 그 결정 뒤에 어떤 관점과 의견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그것이 뭐든 간에 교과서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후대가 될것이며, 후대를 위해 다양한 시각의 많은 자료를 남겨주는 것이 현대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교과서 국정화는 현대의 의무를 포기하는 일로, 분서갱유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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