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남종국 저
20~30대 들에게 유럽 상인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가장 큰 공신을 뽑는다면, ‘삼국지’로 유명한 일본 게임회사 KOEI의 ‘대항해시대’ 라는 게임입니다. 90년대 4편의 PC게임과 2000년대 온라인게임까지 나온 이 게임에서 주인공은 콜럼버스가 문을 연 대항해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선장이 되어, 상인이자, 모험가이자, 때로는 해적도 되는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많은 중고생들이 이 게임 때문에 처음으로 사회과 부도를 펴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증을 잘한 이 게임에서, 지역별 특산품과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시세를 암기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며, 심지어 독과점을 통한 시세 조작, 지역 권력층에 대한 로비를 통한 무역 독점권 확보, 타지역 특산물을 밀수해와 가까운 지역에 옮겨 심어 운송비를 절감하는 것까지 가능했습니다. 온라인 버전에서는 다양한 재료들을 사다가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생산기술까지 구현해 놓았으니 말 다했죠. 이 게임을 하면서 당시 상인의 생활이 상당히 매력적이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유럽 상인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공신을 뽑는다면, 논란은 많지만 역시나 무시할 수는 없는 판매량을 보인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자가 역사학자라고 불리기는 편견이 심한 사람이라 (예: 카이사르에 대한 집착과 동로마 제국에 대한 끝없는 적대) 좀 그렇긴 하지만, 그 전까지 르네상스 시대의 이야기라면 화려한 예술의 도시였던 피렌체에만 관심이 있던 일반인들에게 진정한 상인들의 공화국이었던 베네치아의 이야기를 각인시켜준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전부터 다양한 상업적인 루트를 만들어왔고, 분노한 교황에게 파문 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이윤을 찾아 이슬람 교도들과 줄타기 거래를 해왔던 이 상인들의 이야기를 보며 슬며시 웃음이 나오던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저 또한 위에 나오는 루트를 그대로 타온 사람이라,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상당히 기대를 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서울대 주경철 교수님의 무지하게 두꺼운 역작인 ‘대항해시대: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에서 상인의 내용을 상당히 다룬바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상인들에 포커스 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당시 사회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일환으로 논의된 것이며, 아무래도 15세기 이후만 다루고 있어서 그 이전 이야기는 빠져 있었으니까요.
이 책에 대한 첫 느낌은 ‘생각보다 친절하다’였습니다. 대부분의 역사책들은 사실을 다면적으로 이야기 해야 한다는 그 제약 사항 덕분에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무지하게 불친절한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배경이나 의미에 대해서 일언반구의 설명 없이 바로 본론으로 뛰어들어서 레퍼런스를 던져대는 역사책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책 초반 상당부분을 할애해서 12세기 순회상인들의 현황을 설명해 주는 것과, 각 장마다 시대적인 배경을 먼저 설명한 후 상인들의 이야기로 들어가 준 덕에 일반인들도 쉽게 책을 덮어버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적인 배경 설명 이후에는, 당시 살아왔던 상인들의 인생을 풀어내는 식으로 스토리가 흘러갑니다. 각 상인들이 남긴 거래내역서나 공증 문서, 지사에서 본사에 보냈던 보고서들을 종합하여 인생을 재구성 하는데, 비슷한 구성을 사용한 시오노 나나미와는 달리 저자의 주관이나 상상의 나래는 최대한 배재하고, 당시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자료들을 활용하여 생생한 그림을 그려대고 있습니다.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시대별 한 명씩의 상인의 인생을 그려내며 그 시대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낸 저자의 필력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낄 수 없습니다.
스포일러가 되는 것 같아 세부적인 설명은 피하려 하지만, 시에나와 피렌체 상인들이 그토록 교황청 공식 은행가가 되기 위해 로비를 해 댔던 이유가 직접적인 이익보다는, 영국 지역에서 거둬들인 교회세를 영국시장에서 양모를 사들이기 위한 현금으로 유용하고, 로마에는 본사에 있던 자금을 대신 전달하는 식으로 무역 네트워크를 이용한 국제 송금 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는 사실을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몽골 제국이 지배하던 유라시아 대륙 네트워크 하에서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상인들이 활약했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무역루트를 들키지 않으려 계획서에는 ‘콘스탄티노플’에 가서 거래한다고 한 점이라던지, 염색에서의 명반의 중요성을 일찌감지 파악하고 특성을 살려 독과점을 위해 다양한 압력을 행사했던 제노바 상인들의 노력 등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들 입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별 다섯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이론화 되기 한참 전부터 그 실체를 구현해왔다는 점에서 역사학계에서는 이전부터 주목해 왔던 주제이고, 그 내용을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쓰면서도 전공책의 건실함을 잃지 않는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