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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장윤 Aug 24. 2017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김도환 저

홍대용은 북학파 실학자의 핵심 멤버중 한명입니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지동설을 주장했고, 처음보는 파이프 오르간을 즉석에서 연주할 정도의 천재였으며, 무려 썬그라스를 쓰고 양금을 들고 북경에서 귀국했을 정도의 패션 리더였던 분이죠. 


홍대용의 실학자로서의 명성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한때 정조를 가르친 선생이었다는 점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는 세손의 과외공부인 '서연'을 담당하는 관리중 하나였던 홍대용이 후에 정조가 되는 세손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며 의견을 주고 받은 기록을 남긴 '계방일기'를 완역한 결과물입니다. 


단순히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당시 등장인물들의 상황이나 정치적 역학관계등을 잘 설명해 놓아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논의하는 주제 자체가 상당히 어렵고 형이상적인 내용이라, 기본적이로 동양고전이나 성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뭔소린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읽어도 상당히 재미는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홍대용과 정조, 그리고 홍국영을 비롯한 등장인물간의 때로는 진정되고, 때로는 날선 토론들로 점철된 심리학적인 대결 덕입니다. 뜬금없이 던지는 질문 뒤에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다 알면서도 답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완곡하게 내비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종 이후 가장 완벽에 가까운 철인군주를 꿈꾸었던 정조는, 이십대 초반이었던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회한 정치인의 태도를 취하면서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혈기를 숨기지 않고 낚시에 가까운 질문을 던져댑니다. 기득권층에서 태어나 우수한 학벌을 자랑하면서도 과거를 보지않고 실학 공부에 여념이 없던 사십대 중반의 홍대용이, 수많은 낚시에 걸려들지 않고 양비론과 궤변을 적당히 섞어가며 점잖게 세손을 타이르는 모습은 백미라고나 할까요.


결국 정조와 홍대용의 결합은 그들의 상이한 관점 덕에 불완전연소로 끝이나고, 생각보다 짧은 서연 기간 이후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일으켰으나 결국 유교적인 틀을 버리지 못했던 정조와 당시 양금을 연주하고 북경에 다양한 인맥을 자랑했던 홍대용이 조금 더 서로의 고집을 줄이고, 협력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가 사뭇 궁금해집니다.


제 평가는 별 세개 반. 손에 잡은지 한나절만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그 재미있는 내용에 비해 학술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 일반적인 교양서로 읽히기엔 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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