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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장윤 Jan 04. 2016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이노세 나오키 저, 박연정 역. 



회사가 성장이 정체되거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 특정 이벤트에 대한 TFT (Task Force Team)을 짜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연관된 부서에서 관련 내용을 가장 빠삭하게 알고 있거나 똘똘한 사람들을 차출하여 관련 자료 뭉텅이를 안기고, 풀어야 할 문제를 칠판에 써놓고는 답을 낼 때까지 회의실에 감금해 버립니다. 짧으면 며칠에서, 길면 몇달까지. 


꼼짝없이 감금된 사람들은 주어진 자료들을 검토하고 분석한 후, 자기들끼리 다각도의 토론을 진행하며 발생 가능한 변수나 상황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날에 거쳐 난상토론을 벌인 후 어느 정도 의견의 합의점이 이뤄지면 결과는 보고서의 형태로 수렴이 되게 됩니다. TFT를 총괄하는 임원에게 이 보고서로 사전 보고를 한 후, 피드백을 받아 업데이트를 끝내면 최종 보고서라는 아름다운 신생아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 이 최종 보고서로 경영진 앞에 나가 PT를 하는 것입니다.


대략 이 시점쯤 되면 그간 밤새워 자료를 검토하고 논쟁을 벌이던 TFT 멤버들 사이에는 끈끈한 우애가 생기게 되고, 처음에는 딴지를 걸며 방해하던 멤버들도 어느새 현실을 받아 들이거나 자가 최면을 걸어 한몸으로 똘똘 뭉치게 됩니다. 이렇게 한몸이 된 멤버들은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방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 방안 가득한 임원진 앞에서 보고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멤버들의 눈높이와 경영진의 눈높이는 다르게 마련이고, 여기에 정치적인 이유가 가미되기 시작하면 보고가 순조롭게 흘러가기는 어려워집니다. 많은 경우 경영진은 TFT 멤버들이 왜 이딴 결론을 들고 왔는지 이해를 못하고, TFT 멤버들은 뻔히 보이는 결론를 애써 무시하는 경영진에 실망하게 됩니다. 이러다가 경영진이 '수고했고, 결정할때 참고하겠다'는 덕담을 한번 던지고 회의는 파장을 하게 됩니다. TFT는 해산되어 각자 자기 팀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열심히 작성한 보고서는 분쇄기로 직행하게 됩니다. 


이런 실망스런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TFT를 만든 사람들이 그 TFT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많은 경우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TFT활동은 요식행위가 되게되고, 심한 경우 정답을 칠판에 써주고 근거자료를 만들라고 대놓고 강요를 하게됩니다.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은 이러한 TFT 멤버들의 이야기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몸담고 있던 조직이 회사가 아니라 국가라는 정도.


1941년 미국과의 전쟁을 놓고 고민하던 일본 정부는 당시 정계, 재계, 군부, 언론을 통틀어 최고의 인재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각 소속 조직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던 삼십대 초반의 인재들은 '총력전 연구소'라는 이름의 모의 내각을 만들게 되고, 이들에게 주어졌던 임무는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을 벌일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시뮬레이션 이었습니다. 


일본 최고의 인재들이 격론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결론은 '개전 절대 불가.' 어떻게 접근하더라도 일본이 패망할것이 불보듯 뻔하니 절대 전쟁을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내용으로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도조 히데키를 포함한 내각 앞에서 최종보고를 하게되었고, 자신들이 내린 결론을 설명하며 전쟁을 말리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일본은 진주만을 습격하는 것으로 이들의 보고서를 무시했고, 이후 4년에 걸쳐 일본 제국은 서서히 몰락하고 맙니다. 


80년대 초에 쓰여진 책이지만, 저자는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균형잡힌 시선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조 히데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 점은 일제시대를 경험했던 국가의 국민으로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수 없겠지만, 도조를 악마화 하고 그 뒤에 숨어서 책임을 모른척 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이러다 우익에게 테러당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더군요. 


전체적으로 매우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분명 흥미진진한 역사책으로 알고 책을 집어들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오는 느낌이 들었던건, 아무래도 '총력전 연구소' 멤버들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한 탓일까요. 위에 나온 TFT에 끌려간 적이 많던 개인적인 경험이 즐거운 독서를 방해했던 것 같습니다. 


총평은 별 네개 정도. 태평양전쟁사와 당시 일본 정세에 대해 조금은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욱 즐기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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