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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 Days Jan 22. 2024

중국이 '남의 나라'에서 제 2의 고향이 되기까지

TCK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TCK Korea 운영자 노진리님 


개인적으로 2023년은 출산과 육아 외의 것은 모두 멈춰있던 한해였다. 


나의 TCK로서 이야기를 하는 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기가 조금 앉기 시작하고 낮잠의 패턴이 잡히기 시작하며 감사하게도 나는 몇달만에 노트북을 펼쳐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육아로 인해 잠시 멈춰있던 TCK에 대한 탐험을 다시 재개하면서 여러 채널과 기사를 찾아보았다. 


사실 책을 읽거나 이런저런 것을 찾아보면 TCK에 대한 커뮤니티 중 많은 곳이 일정기간 활발하다 멈춰있는 상태인 곳이 많았다. 왜일까 혼자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무래도 TCK 자체가 아직까지는 니시한 주제고, 타겟인 동시에 스스로가 TCK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많기도 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TCK로서의 성장 이야기는 아마 Adult Third Culture Kid (ATCK)로 거듭나는 20대 때, '내가 남들가 뭔가가 다르구나!'를 깨달으며 가장 활발히 이야기가 되다가, 다들 점점 더 성인이 되어 거주하는 곳에 잘 적응을 하거나 본인들의 커리어와 가정을 꾸리고 점점 사그라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여하간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더더욱 여러 분야에서 각자의 커리어를 가지고, 다이나믹한 성장과정을 나무테처럼 가지고 살아가는 성인이 된 ATCK 이야기들을 하고 싶기도 하다. 단순 '부모 잘 만나 일찍 외국물 먹은', 혹은 '교포', '유학생'으로만 설명 되기에는 아쉬운 이 복잡다단하면서도 제각각의, 동시에 또 어느 의미에서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며, 어떤 일을 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앞으로 TCK는 점점 더 많아질테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 따르면 가장 액티브한 (혹은 과거형으로 액티브했던) TCK 커뮤니티는 페이스북 그룹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페이스북 앱을 지운지 오래라 나는 대신 인스타그램과 여러 책 속 레퍼런스, 그리고 유튜브 채널을 검색했고 TCK Korea 채널은 내가 찾은 유일한 한국어 기반의 TCK 채널인 동시에, 가장 최근에 개설되어 콘텐츠가 올라온 주옥같은 계정이었다. 이러한 채널을 만들고 TCK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운영자분은 누굴까도 궁금했고 바로 연결이 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가 아기를 잠시 재웠을 때 나는 계정의 운영자분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이렉트 메세지를 보냈고 몇일 뒤 TCK Korea 채널의 운영자인 노진리님으로부터 반가운 답장이 와서 매우 기뻐하며 열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해도 되냐고 메세지를 보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아직은 유명하지 않은 나의 브런치와 누군가를 인터뷰를 하고 새해에는 책을 내려고 한다고 이야기 하기엔 부족한 나의 글쓰기 실력 역시 문득 조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고 새로이 행동을 하면 또 내게 다른 문이 열리리라 믿고 요청한 인터뷰였다. 


진리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굉장히 정확했고, 깔끔했으며, 시원했다.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함께 중국에서 자란 듯한 느낌이 들었고, 조선족 학교의 경험이 너무나도 궁금했으며, 그녀가 올린 조선족 학교의 교재 사진도 너무 흥미로웠고 그녀 역시 나처럼 여러 외국어를 탐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공통점을 찾아서 반가웠다. 


본업외에도 여러 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그 외 활동을 이어나가는 그녀가, 다양성이 넘치는 삶이라는 바다 속에서 멋진 가교 역할을 하며 그녀만의 색깔로 살아가는 것이 느껴졌고, 노진리님은 어쩌면 자기다운게 삶에 있어 가장 멋진 일이라는 ‘진리'를 새삼스레 일깨워준 멋진 인터뷰이였으며 다시 한번 귀한 인터뷰에 감사한 마음이다. 



1. 안녕하세요, 진리님!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Seoul Foreign School Christmas Party 에서 Jennifer &  Rachelle과 함께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노진리라고 합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고, 최근에 만나이로 31살이 되었네요. 현재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 외에 SFS (Seoul Foreign School, 서울외국인학교, 연희동에 위치) 에서 Faculty memebers 대상으로 라틴댄스 수업 어시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서울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입학하여 1학기를 마치고는 여름방학 끝날 무렵에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9월에 새학기가 시작되는데요, 여름방학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되는 9월에 중학교 1학년으로 중국 심양의 한 조선족학교에 입학 후 쭉 중국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다녔습니다. 


2015년 여름, Tsinghua University 학부 졸업식에서 어머니와 함께

2. 중국에서 굉장히 오래 계셨는데, 학창시절 중국에서의 삶이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성장기를 중국에서 보내신 것은 진리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처음 중국에 가게 된것은 중국에 뜻이 있어서, 유학이라는것에 뜻이 있어서 가게 된게 아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시고 당시에 두분 다 저를 양육하시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서 중국에 아는 분께 저를 맡기다 시피해서 보내게 되신거죠. 


당시 중국 선교 활동을 하시던 목사님을 통해 한국유학생들을 케어하던 센터에 가서 기숙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부모님은 막 이혼을 하셨던 시기여서 매일 밤 울며 잠이 들고 학교에 가서는 엎어져서 잠만 자고 그랬던 우울한 시기였어요. 


처음에는 모든것에 화가나고 반항적이고 슬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살 두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삶에 적응을 하게 된것 같아요. 중국은 14살 처음 보내졌을 땐 ‘남의 나라’ 였지만 이제는 ‘제 2의 고향’이 되었답니다.



2015년 여름, 학부 4학년 재학 중에 북경의 국제 기구 행사에서


3. 진리님이 운영하시는 채널 TCK Korea를 찾았을 때 너무 반가웠기도 했고 또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어떤 계기로 TCK 에 대한 채널을 만들기로 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제가 TCK 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실 TCK 라는 말을 최근까지도 몰랐었어요. 


TCK 라는 말은 1년 전쯤 만나게 된 한 중국의전대행사의 대표님께서 알려주셨었는데, 대표님께서 TCK 와 관련한 여러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계셨었어요. 


대표님도 예전에 중국에서 계셨던 경험이 있으신데 당시 만났던 여러 한국 유학생들을 통해 TCK 라는 말을 알게되고 또 그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셨던 거죠. 그 때 이후로 TCK 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어떠한 재밌는 일들을 꾸며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었다고 해요. 그런데 저를 알게 되고 진짜 TCK 인 사람이 TCK 커뮤니티를 한번 만들어보는것이 어떤가하는 제안을 주셨었어요. 


저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어떤것들을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국에 있는 한국의 정체성과 또다른 어떠한 정체성을 함께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진행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주변에 TCK 가 꽤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제 학교 동기들 혹은 직장동료들을 인터뷰 하는것으로 시작을 했고 채널이 알려지면 많은 다른 인연들이 생길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하는것이 처음이라 어렵게만 느껴지고 그랬는데 이렇게 나라님과도 만날 수 있게 되니 조금 정체되어 있던 채널도 조금 더 열심히 운영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4. 진리님이 TCK들을 인터뷰하고 만나보았을 때 경험하신 공통점이 있으신가요? 


제가 인터뷰 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서 일반화 하기는 어려운것 같아요. 


겉으로 보면 TCK 인 사람들은 성장한 나라 그리고 부모님의 나라 이 두 곳에 대한 복합적인 정체성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 공통점일 것 같지만 그 것 또한 소위 ‘사바사’ 사람 바이 사람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나라들에서 겪은 개인적인 경험들이 그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것 같았습니다. 


어려서 중국에 갔지만 한국인들과만 생활한 경우는 중국에 대한 애정이 그렇지 않은 케이스보다 덜한 것 같았고, 현지인들과의 접촉이 많았는지, 한국에서는 어떤 삶을 살다가 이주를 했는지, 그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어느 시점에 이주를 했는지 같은 여러 상황들에서 정체성은 케이스별로 많이 달랐던것 같아요. 


오히려 인종차별적인 어려움을 겪은 경우는 고국을 향한 향수와 애국심이 더 발휘되는것 같고, 고국에서 힘들어 넘어간 경우는 새로운 국가에 대한 애정이 더 발휘되는것 같아요.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다른 문화와 언어 그리고 환경에 노출 되다보니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5. 진리님이 생각하시기에 TCK로 자란 것의 장점은 무엇이고, 반면 아쉬운 점 혹은 본인이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장점은 다른 문화와 다른 사람들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만 자란 ‘로컬(?)’ 친구들 보다 ‘세계’를 받아들이는 부분이 좀 더 수월 한 것 같아요. 


저는 어느 나라에 가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나라에 간다는 그 발상 자체가 아무런 두려움이나 장벽이 되지 않아요. 언어의 장벽도 거주에 필요한 비자문제도, 현지에서의 삶도,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곳에 간다는 것이 걱정거리가 아닌거죠.  


반면 한곳에서만 자란 사람들 중 많은 경우 한번도 ‘해외’ 생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가 도전으로 다가오는거죠. 저는 ‘외국인’으로서의 삶을 평생 살았기 때문에 expat 가 되는것도 두렵지 않고 expat 들도 두렵지 않아요. (expat=국외거주자를 일컫는 expatriate의 줄임말) 그게 장점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원래 없는 장벽은 더 없어지는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이란, 한국적인 정서가 덜해서 소위 ‘눈치’가 상대적으로 느린 점, 이 부분에 대해선 제 본래 타고난 성향이 눈치가 없는 사람인지, 아니면 오랜 외국생활로 인해 정서적인 부분에서 달라서인지 알수가 없네요. (웃음)


그리고 언어적인 부분에서 제가 한국어를 완전히 원어민처럼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 상에서 모호한 경우 잘 못알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는것 같아요. 한마디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그런 센스말이죠.


이것도 눈치부분과 어쩌면 일맥상통하는것 같기도 해요. 제가 석사 전공이 응용언어학이었는데, 언어의 기능은 문자 그대로의 정보 전달 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게 중요한것 같아요. 


언제나 말이라는 것에는 ‘between the lines’의 의미들이 존재하는데 저는 그런 미묘한것들에 대한 캐치가 좀 둔한감이 있다고 해야할까요.. 그럴때마다 좀 좌절이 될때도 있어요.


6. TCK가 현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갈등이나 분쟁이 있을 때 양쪽을 다 이해하는 사람들 이라고 생각해요. 


TCK 는 보통 두가지 언어 이상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양쪽의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있어요. 말만 배운 게 아니라 양쪽의 문화도 다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때문에 TCK 는 어려서부터 통역, 번역일을 접하기 쉬운데, A의 말도 십분 이해하고 B의 말도 이해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른 세계에 대한 무지 (ignorance)에서 오는 차별이나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는 사람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7. 현재 TCK로 자라고 있는 10대들에게 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나요?


부모님의 나라 외에 타국에서 자라고 있는 10대인 경우, 10대이기 때문에 또래에 대한 소속감이 중요한 시기일 텐데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라서, 피부색이 달라서, 모국어가 달라서, 내 부모님의 언어가 달라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 등이 있을텐데 내가 현재 속한 그 곳의 문화만 선 (善or/and先)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어린 아이가 가난한 엄마가 학교에 데리러 오면 괜히 친구들이 볼까봐 두렵고 창피한 마음이 드는 그런 심리를 예를 들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아요. 10대라서 느낄 수 있는 아직은 덜 성숙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결코 창피할 일도 아님에도 “다르다” 는 것에서 오는 심리적인 창피함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 발음이 좀 다르거나, 소풍갈 때 김밥이나 김치를 가지고 가는 것, 설날에 떡국을 먹거나, 혹은 추석을 중추절이라 말하거나, 내일을 래일이라고 발음하거나, gym 을 health club이라고 하거나, 핸드폰을 정말 ‘handphone’ 이라고 말하는 것 모두 이미 한 곳의 문화와 언어를 먼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에, 한 곳에만 적응하려고 너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것 같다고, 조선족 말투로 한국말을 해도, 콩글리시로 영어를 해도, 베네수엘라 억양으로 스페인어를 해도, 경상도 사람이 서울 말씨를 써야지만 세련되게 느끼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두군데 혹은 세군데 네군데 모든 곳의 경험이 동일한 값진 경험으로 받아들여 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조선족 학교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 사진 - 련습문제, 수학리해 와 같은 단어들을 볼 수 있다 


8. TCK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 자신. TCK란 나, 노진리 인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매일 10번씩 물어요.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 뿐만 아니라 그냥 ‘나’ 라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에서 매일 혼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매일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그 다름에서 오는, ‘아(我)’와 ‘타(他)’라는 두개의 세계의 부딪힘을 수용함으로, 또는 배척함으로, 또는 싸움으로 혹은 피함으로 겪어내고 있는 나. 매일을 지지고 볶는 삶을 인내로 기쁨으로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나. 그리고 성장하고자 하는 나. TCK 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요.


저는 중국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잘하는데, 동시에 사실 저는 중국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고 한국어도 못하거든요. 


그런 짬뽕같은 나 자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대학시절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 여러 언어 (러시아어, 슬로바키아어, 히브리어, 일본어, 불어, 아랍어, 로마니아어, 스페인어, 피지어, 우르두어)를 배웠다 



TCK Korea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tckkorea/videos

TCK Korea 인스타그램 계정: https://www.instagram.com/tck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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