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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sta Seo Jun 16. 2023

6월의 남도 고흥 여행

고흥에 머뭄

6월의 뜨거운 태양이 적나라하게 신록의 빛을 과시하는 곳이 고흥이었다. 팔영산과 나로도의 짙푸른 숲 속으로 햇볕이 비칠 때면 그 빛으로 숲의 모든 잎이 깨어났다. 해 떨어진 방파제 옆으로 슬며시 발을 들이밀었다. 별은 빛나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검은 갯벌을 핥았다. 


2021년 한 해 동안 "전라남도 SNS 서포터스" 활동을 했다. 그 기간에 아내와 함께 전라남도의 8개 시군을 여행했다. 그때 아내와 함께 여행하지 못했던 곳이 고흥이었다. 그래서 신청한 '고흥에 머뭄'에 이번에 선정되어 고흥 여행하게 됐다. 


여행의 의미가 만남에 있다면 고흥이야말로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없는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자연과 만나고, 문화와 만나고, 우주와 만나고 그리고 자기와 만나는 그런 곳이다. 이런 여행은 스르르 자기 변화로 이어진다.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이라는 명성에 맞게 연홍도, 쑥섬, 남포미술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평생 가슴에 담을 그림 한 장을 완성해 주었다. 

고흥의 일몰, 낙조는 살아오면서 내 안에 깃든 모든 마음을 다 괜찮아지게 했다.

황량한 일상의 벌판에서도 아스라이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도록 하는 우주 이야기가 고흥에는 있었다.


삶의 숨통을 트여주듯 쉼표를 찍어주는 자연을 품에 안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다리와 다리로 이어지는 그림 같은 다도해 풍경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몸에 밴 배려와 따스한 눈빛, 구수한 말투를 설명해 줬다.


고흥은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푸른 바다, 개성 넘치는 봉우리들, 바라보는 어디든지 이야기로 살살 수를 놓고 있었다.

느림이 속도에 가려진 모습들을 보여주듯이, 느리게 다닌 7일간의 고흥 여행은 나를 사물 너머의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여행자로 만들어 주었다. 이런 확장이 나에겐 커다란 기쁨이었다.


더 멋지게, 더 빛나게 보이려고 애쓰는 세상의 피로한 경쟁이 이곳에는 없었다. 있어야 할 것만이 꼭 그 자리에 있다.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그 빈 곳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나의 자유로운 상상과 눈부신 이야기들이 숨을 쉴 수 있었다. 


고흥 여행하는 동안 필요했던 것은 단 한 가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 이 글은 "남도여행 길잡이" 후기 게시판에 여행 후기로 등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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