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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y 07. 2022

프로페셔널 행자 이모

날쌘 호랑이같았던 행자



 아이를 기를 때였다. 팔다리가 짧은 육개월 짜리 아이가 잠에서 깨면 엄마부터 찾았다. 곧장 아이에게로  자리를 잡고 양반다리로 앉은  아이를 번쩍 들어 다리 안에  넣었다. 팔로 아이 목을 받치고 아이 머리가 향한 쪽의 브레지어를 내려 땡땡하게 불어있는 가슴을 아이 입에 갖다댔다. 작고 보들보들한 입술을 위아래로 힘껏 벌리고 혀로 젖꼭지를 감싼 아이가 쩍쩍 소리를 내며 젖을 빨았다. 유방  얽히고 섥혀있는 유선에 가득차 있던 모유가 빠지는  고스란히 느껴졌다. 십분  지나자 빵빵했던 가슴이 말캉말캉했다. 배가 통통하게 채워진 아이가 입술에 허연 젖을 묻히고  보며 웃었다.


아이가 6개월이 지나자 젖을 먹은 직후 고체식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때가 왔다. 배고픈 아이는 매우 심하게 울었는데 날카로운 울음 소리에 마음이 급해져 막 젖을 물린 가슴을 옷밖으로 내놓은 채로 아이 이유식을 먹인 적도 있다. 좁은 주방의 개수대엔 그릇이 늘 가득 차 있었고 거실은 다 마른 빨래와 아이 용품으로 너저분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늘어난 것은 여유가 아니라 아이 연령에 맞춰 챙겨야 할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루에 네시간 씩 사람을 부르기로 했다. 빨래 청소 간단한 정리정돈을 해주실 이모님을 구했다. 맘카페에서 하늘엄마라는 닉네임의 회원이 자기 집 이모님을 소개시켜줬다. 엘레베이터 없는 아파트 4층이었던 우리집을 헉헉거리며 숨가쁘게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프라노처럼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를 가진 행자 이모는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더니 손을 씻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음, 각 나왔어. 애기 엄마 나 일 시작해도될까?”


거실은 이렇게 주방은 이렇게 보일러실은 이 정도로 해주세요 라는 멘트를 준비해놨지만 그녀는 가이드가 필요없는 스페셜리스트였다. 거실에 깔린 아이 매트를 들어올릴 때도 바닥을 쓸고 닦을 때에도 행자이모는 파워가 넘쳤다. 걸레를 꼭 짜서 바닥을 닦다가 무언가 성에 차지 않는지 나를 불렀다.


“애기 엄마, 애 이름이 솔이지. 솔이엄마라고 할게요. 이 걸레는 청소가 잘 안돼요. 빳빳한 그 걸레 있는데 내가 알려줄테니까 그거 사요. 그리고 마대자루 있어요. 그걸로 바닥을 밀어야 바닥이 빤딱빤딱 하거든. 그것 좀 주문해놔요.”


주어진 일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매애우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 행자 이모는 프로페셔널 그 자체였다. 주방 설거지를 하면서 싱크대에 낀 물때를 닦고 엉성하게 정리된 상부장을 연 후 식탁 의자를 번쩍 들고 가 작은 키로 위태위태하게 그 속에 들어있는 모든 그릇을 꺼내 닦고 차곡차곡 그릇 종류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날쌘 호랑이 같았다.


행자이모는 빨래도 프로페셔널했다. 세탁통에 들어있는 빨래감들만 세탁기에 돌리지 않았다. 걸려있는 옷들의 옷깃과 손목 부분의 냄새를 일일히 맡고는 코를 거슬리게 하는 냄새가 나면 가차없이 옷걸이에서 잡아뺐다. 그것들을 왼쪽 팔에 포개어 걸쳤다. 옷방을 나서는 그의 팔엔 빨래해야 할 옷들이 항상 한 무더기였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늘 세제 향이 상쾌하게 나는 옷들을 입을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눈에 보이는 건 못 참아. 다 깨끗하게 해야되서 그런가봐. 내 성격이 이래요. 아니 여기 말씀이 붙어있네? 나도 교회다녀. 반갑네? 예비하신 인연인가?”


정말로 예비하신 인연이었는지 우리는 첫 만남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살림에 소질도 굳이 내세울 주관도 없었기에 이모가 하자는 대로 했다. 우리 집 살림은 점점 행자화가 되어갔다. 그렇게 살림이 자리를 잡고 나아지면서 나의 편의와 함께 행자의 자기효능감도 증가했다. 행자는 우리집을 자기 집처럼 애정을 쏟아 관리하며 구색을 갖춰가는 모습에 “내가 이럴려고 청소하나봐. 아유 뿌듯해 죽겠네.” 말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행자 이모는 그 작은 몸으로 맘에 들지 않는 가구 배치를 직접 구상하고 실행했다. 그녀의 관절 건강이 염려되어 말리는 내게 말했다.


“솔이엄마 이런 일 안해봐서 모르지. 이것이 다 요령이거든. 나는 허리를 쓰지 않아. 무거운 걸 옮길 때는 허벅지를 쓰는거야.”  


정말로 행자 이모의 허벅지는 딴딴하고 탄탄했다. 소프라노의 높고 넉넉한 웃음 나와 아기를 향한 살뜰한 관심. 계단을 올라설 때 들리는 큰 발자국 소리들은 모두 허벅지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돈으로 그녀의 노동력을 그녀는 노동력을 대가로 돈을 갖게 되었지만 어느새부턴가 나와 그녀가 거래한 것들은 돈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음식 관심 기도 안부 정서적 지지같이 돈이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났다.


“내가 솔이 엄마 굶고 있을 줄 알았어. 애보면 정신없지. 내가 해봤잖아. 생고구마를 가져왔지롱. 구워줄테니 잠깐만 기다려”


고구마를 동그랗고 얇게 썰어 기름을 조금 넣고 양면팬에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노랗고 퍼슬퍼슬한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편하게 먹으라며 아이를 거실로 데려가 종종 아이에게 지나치게 큰 소리로 까꿍을 해서 아이가 놀라기도 하고 금새 엄마를 찾을 때도 있었지만 그녀가 컵에 따라준 우유를 먹으며 그 모습을 보는 일이 싫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좋았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그런 어른을 가져본 것이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솔이 엄마네 베개 커버 헐었더라. 아니 빨아도 빨아도 머리 냄새가 안 지워져. 요 앞 이브자리에서 세일하길래 사왔어. 솔이 아빠는 부우농 솔이 엄마 노오랑 이거 비고 좋은 꿈 꿔”


“아니 생각해보니까 오늘이 어린이날이지 뭐야. 난 애들이 커서 어린이날을 잊은지 오랜데 솔이가 어린이잖아. 가만보자 그냥 애긴가. 뽀로로 식판을 사왔어요 솔이야 이모가. 솔이 여기다 밥 많이 먹어요.”


“나는 딸이 둘. 솔이 엄마보다 좀 어려. 첫째는 공무원 시험 준비중이고 둘째는 작곡 전공한 대학생이야. 남편은 있는데 없느니만 못하지. 헤어졌어 몇 년전에. 도박에 자꾸 손을 대길래 딸들이랑 살려고 나와버렸지. 그래서 이 고생을 하고 있잖아.”


관계에는 적당한 선이 있어야 한다고 다들 그랬다. 그래야 나와 상대방을 지킬 수 있다고. 나는 나를 향한 행자이모의 말과 행동이 좋았고 그냥 그녀가 좋았다.


행자이모는 거의 자기가 가진 에너지의 반 이상을 교회에 썼다. 새신자 반 리더라 교회에 새로 온 사람들을 돌보고 모든 기도회와 행사에 참석했다. 어느 땐 목사님 취임 십년이라며 없는 돈을 쪼개어 목사님 양복을 맞추기도 했다.


“목사님이 내가 맞춘 양복을 입고 말씀 전하실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 솔이 엄마. 주의 종이니 이 정도 해드려야지. 내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우리나라는 목사를 너무 신격화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돼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행자이모가 행복을 느끼는 일을 그 자체로 보고 싶었다. 우리는 혈연과 호적 상의 가족처럼 누가 봐도 확실하고 끈끈한 관계가 아니었다. 나와 그녀는 느슨했고 불확실했고 너른했지만 그것이 우리 사이에 긴장감을 흐르게 했고 편안함으로 서로를 쉽게 생각하지 않도록 했다. 느슨함 불확실함 너른함은 우리가 관계를 3년이나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다.


물걸레 마대자루, 뽀로로 식판, 첫째가 신다가 지금은 둘째가 신는 양말, 국자, 뒤집개, 머그컵, 빨래집게.


5년이 지났어도 거실과 주방엔 아직도 이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 있다. 그 사이에 이사를 두 번이나 했지만 아직도 그것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계산보다 마음이 먼저였던 행자이모와의 시간.


올해 3월 솔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와 찍은 사진을 행자이모에게 보냈다. 카톡을 확인한 그녀는 내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솔이 엄마 솔이가 언니가 되었네. 솔이 여덟살 둘째가 네살? 딱 좋다 딱 좋아.


나는 지금 평택에 있어. 첫째가 공무원 일을 하다가 썩을 놈의 상사새끼가 좀 괴롭혀야지. 그냥 때려쳐불고 우리 딸 공황장애랑 위궤양 고치고 있어. 평택에 딸이랑 사위랑 같이 내려왔어. 지금은 첫째가 빨간펜 선생님하고 있는데 행복해보여.


상가 건물 사서 세 받고 산다 우리. 아 참. 내가 이야기 안했지. 나 남편이랑 합쳤어. 오호홍. 그래서 내가 일을 더이상 안 해. 말년에 복이 터졌대 사람들이.옛날에 사고 치던 남편도 없고 지금은 나를 끔찍하게 아껴줘.


그나저나 우리 첫째는 아를 가져야 하는데 허구언날 배란일이네 뭐네 그 날에 맞춰 밤일을 한다네. 아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런거 신경 안쓰고 그냥 눈 마주치면 해야 하는데. 안 그래?”


행자 이모는 항상 청소 후에 우리 부부 침대 옆 협탁에 물티슈와 각티슈를 가지런히 올려놨었다. 행자이모가 올려둔 협탁 위 각티슈와 물티슈가 떠올라 낄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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