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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l 09. 2024

나의 최초의 어른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깨면 머리를 대고 있던 베개를 그의 쪽으로 끌고 가 바짝 붙였다. 그러고선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붙였다 떼며 집게손으로 만들어 손등 쪽으로 그의 팔뚝을 훑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차가운 살갗을 찾아 더듬던 나에게 그는 하지 말라거나 눈을 떠서 눈치를 준다거나 한 적이 없다. 여름에 그리고 밤에 그가 내 옆에 있을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살갗. 선잠을 자면서도 두 손가락과 팔을 움직이던 열 살의 나. 지나고 보니 단지 더위를 잊거나 잠을 자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엄마에 대한 결핍을 채우려 했던 것에 가까웠다. 그 집게손이 여름밤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었는지. 부들부들한 살갗의 감촉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다시는 엄마를 잃기 싫다는 간절한 아이의 표현. “엄마 친구 만나고 올게, 엄마 이 앞에 나갔다 올게.” 이런 말들을 남긴 엄마는 일주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거나 집에 곧 들어오더라도 약속한 시간을 한참이나 넘겼다. 술에 가득 취한 채 들어와 일주일은 취해 있기만 했다. 아무리 엄마가 좋았어도 술 취한 엄마 옆에서 잠을 잔 기억은 없다. 술 냄새가 나기도 했고 새벽에 자주 깨서 술을 찾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엄마가 술에 취해 있을 때면 알아서 이불을 챙겨 엄마가 있는 안방이 아닌 작은방으로 갔다. 엄마가 낯설다는 느낌은 겁이 나는 것과 동시에 인지하기조차 괴로운 어떤 것이었다. 술 취한 엄마를 보면 취하지 않은 목소리와 표정과 낯빛을 가진 엄마 생각이 간절했다.


엄마는 화가 나면 온몸이 뜨거워지는 동시에 얼굴이 벌게졌다. 팔뚝과 윗가슴과 등 뒤에는 두드러기가 일순간에 퍼지기도 했다. “엄마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네 할머니는 꼭 사람 속을 긁더라. 술 먹는 게 뭐가 대수라고.” 외할머니와 술 먹는 문제로 다툰 후 엄마는 입고 있던 티의 목덜미를 아래로 늘이며 내게 윗가슴에 돋은 두드러기를 보여줬다. 좁쌀보다도 작은 투명한 두드러기는 손톱으로 긁으면 톡 하고 터지면서 물기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열이 나면 꼭 이렇게 몸에 뭐가 나더라고. 성질머리가 나빠서 그런가 봐. 너랑은 다르게. 너라도 할머니한테 잘해라. 엄마는 이미 글렀어.” 그는 화가 난 상황에서 내게 몇 마디를 내뱉고는 잠시 뒤 본래의 얼굴빛을 찾았다. 쉽게 벌게지고 울그락 불그락 했던. 감정에 따라 변하는 그의 몸은 어린 내게 꽤나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살아 숨 쉬는 활화산과 같았고 횟집 뜰채 안에서 날뛰는 활어 같았다.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인 동시에 예측이 되지 않는 어른. 그는 나의 최초의 어른이었다.


함께 목욕을 할 때면 볼 수 있었던 그의 풍만한 가슴과 처진 뱃살은 볼 때마다 새로웠다. 무엇보다 배 아래에 종으로 새겨진 선. 내가 그의 몸에서 나올 때 남긴 자국은 내게 묘한 안정감과 불안감을 함께 주었다. ‘내가 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맞구나’라는 확신과 그것이 주는 안도감. 동시에 엄마에게 저런 자국을 남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달갑지 않은 마음. “너 이 수술 자국 보이지?  지금은 다들 가로로 길게 찢기도 한다더라. 그런데 그땐 다 이렇게 세로로 찢었어. 막달에 네가 3.6 킬로그램. 얼마나 컸는지 몰라. 먹은 것도 없는데 너는 내 속에서 그렇게 잘 자라더라고. 그래서 수술을 하기로 했지. 제왕절개. 얼마나 아프던지. 수술해서 그런지 배가 들어가지도 않아요. 엄마가 많이 먹어서 뚱뚱한 게 아니란 말이다. 알았니.” 딱히 강조하거나 질책하는 어투가 아니었지만 엄마가 남긴 그 말은 내 속 어딘가에 남겨져 엄마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게 했다.


취하지 않은 엄마에게선 소주 냄새가 아니라 마늘 냄새가 났다. 특히 손끝에는 알싸한 마늘 향이 언제나 배어 있었다. 맨정신의 엄마는 하루 종일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무엇을 볶거나 만들었다. 또는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채소를 다듬거나 마늘을 깠다. 마늘을 깔 때면 온 집안에 큼큼하고 아릿한 마늘 냄새가 가득했다. 뽀얀 속살이 나온 하얀 마늘을 엄마는 절구에 빻아 지퍼백에 넣은 뒤 얇게 펴서 냉동실에 넣었다. “이게 우리 먹을 식량이야 식량. 네가 그걸 알기나 하냐. 마늘은 안 들어가는 데가 없거든.” 엄마가 주방 일에 몰두할 때면 일상으로써의 살림을 영위한다거나 음식을 만드는 보통의 어떤 무던한 상태로 보이지 않았다. 술에 취하지 않은 엄마는 주방 일 중에서도 특히 반찬 만드는 일에 무섭게 몰입했다. 그 몰입은 과도했고 필사적이었다. 어쩌면 술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엄마가 하루 종일 서서 만든 콩나물무침과 황태 뭇국, 닭볶음탕을 먹을 때 혀에 마늘 향이 강하게 감겼다. 불에 오래 익혀진 다진 마늘에서는 달큰한 맛이 났다.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주었는지. 나는 엄청난 애정과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존재이며, 그것을 위해 그녀 본인이 포기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는 쉴 새 없이 내게 말했다. “너는 내 하나뿐인 보물이야. 내가 어떻게 너처럼 예쁜 아일 낳을 수 있었을까. 그것도 딸. 어디 보자. 손가락 좀 보자. 손도 이쁘다 너는 정말. 새끼손가락에 너처럼 점이 있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이 바깥쪽에. 나중에 혹시 너를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이 새끼에 있는 점으로 너를 찾을 거야. 네 아빠가 비록 우릴 떠났어도 너라는 보물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내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가 있다는 게 너는 어떤 기분인지 아니.“ 하지만 그녀의 말들은 술 때문에 실제 그녀의 행동으로 증명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면서 내 곁에 있어주지 않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자주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그가 말해온, 그렇다고 진실은 아닌, 그의 말. 내가 사랑을 많이 받은 존재이며 그런 대우를 받아왔다는 조각난 진실을 껴안은 채 방패를 삼아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었으며,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것을 방어막 삼아 나를 지킬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엔 버려야 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내 방어 기제가 되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지켜준 어떤 부적과도 같은 영험한 진실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정신이 온전한 엄마는 해가 어둑한 저녁 나와 먹은 저녁밥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아홉시 뉴스가 하기 전에 하는 삼십분짜리 짤막하지만 이야기가 태풍처럼 몰아치고 배우들이 자주 오열하는 심각한 드라마를 보며 엄마는 한쪽 다리를 반대편 다리 위에 올려 뒤꿈치의 각질을 뜯어냈다. “엄마 발이 까끌까끌하지. 너처럼 맨들맨들하지가 않아. 나도 너처럼 어릴 땐 뽀얀 뒤꿈치를 가졌는데. 어른이 되고 하니까 자꾸 뒤가 갈라져서 피도 나고 그래. 이렇게 다 늙나 보다. 그래도 관리를 해야 돼. 이렇게라도 안 하면 얼마나 지저분해 보이는지 몰라.” 굳은살을 떼어 난 자리에 엄마는 정성스럽게 오일을 발랐고 그 위에 로션을 덧바른 뒤 비닐봉지를 씌웠다. 그러고선 그 위에에 양말을 신고 집 안에서 어정어정 걸어 다녔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석식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밤 열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을 때. 더 이상 저녁시간에 엄마와 같이 밥을 먹지 않고 티브이를 보지 않게 되었을 때 엄마의 뒤꿈치는 눈이 쌓인 것 마냥 각질로 허옇게 뒤덮여 있었다. 그때부터 엄마가 죽기 전까지 십년 동안 엄마는 관리를 해야 한다던 그 곳의 살을 떼어내지도 그 위에 오일과 로션을 덧바르지도 않았다. 눈처럼 하얗게 쌓인 뒤꿈치 각질이 꼭 엄마 마음에 쌓여 녹지 않는 어떤 슬픔같았다.


엄마는 나를 돌보고 먹였다. 세상과는 그리고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람인 동시에 내게 정서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무엇 하나로 일치되거나 통합이 되지 않는 양육자를 가진 나는 늘 혼란 속에서 허우적댔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그로 인해 허덕이고 괴로워했어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녀와 나의 사랑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것이 멈추고 싶다면 멈출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늘 했던 다짐과 약속 “너 자기 전까지 들어올게. 내일까지 해가야 하는 수학 문제 꼭 같이 풀어줄게. 다녀와서 알림장에 싸인해줄게. 내일 아침에 엄마가 머리 예쁘게 묶어줄게.” 하지만 이런 말들은 그것이 발화되는 순간에만 의미가 있었을 뿐 그 말들이 행동이나 시간으로 지켜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그 순간에는 진실이었고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그녀는 그녀의 다짐을 삶과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이었으니까.


술에 취하지 않은 엄마와 취한 엄마. 나랑 사랑하는 엄마와의 시간과 엄마가 없이 홀로 버텨야 하는 시간. 나는 그것들을 내 안에서 통합시키지 못했다. 그것들은 여전히 내 속에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존재한다. 그녀는 이 세상에 자신을 포개어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양육자라는 역할과 세상이 말하는 어떤 역할에도 포개어지지 못한 채 무엇에도 들어맞지 않은 채로. 그녀를 향한 이율배반적이면서 이중적인 나의 기억과 감각들이 내 안에 공존한다. 그리고 뒤엉켜 있으면서 단절되어 있다.


술을 먹는 천덕꾸러기였던 그녀였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내게 대체불가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연락이 두절된 엄마가 살아 돌아오길 바랐으며 모두가 잠든 밤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운데에 누워 몰래 베갯잇을 적시고 잠을 자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기 시작했을 때, 알코올 중독이 심해져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기행을 벌이는 그녀가 차라리 없어졌으면 하고 바랐을 때는 내게 가족이란 게 생겼을 때였다. 배우자와 나의 아이들. 내 곁을 지키는 사람과 내가 지켜야 하는 존재인 가족이 생긴 이후부터 그랬다. 그녀가 죽고 나서 내게 주어진 중독으로부터의 자유, 중독자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홀가분함과 그녀가 얼른 죽길 바라며 가졌던 죄책감은 자주 나를 휘감는다. 그 어느 것이 우위에 서지도 열위에 서지도 않은 채로 그 둘은 그저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채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 위에 쌓아 둔 그녀에 대한 기억들, 그녀의 몸과 그 몸이 준 감각과 시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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