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의 일기
오늘따라 둘째가 유난히 잠에 들지 못했다. 내 팔 하나를 가져가 자기 옆통수 아래 놓고선 다른 팔 하나로는 자기 등을 치라고 또 팔을 가져간다. 여섯살, 만 네 살의 작은 아이 머리통이 내 가슴 팍에 작고 통통한 몸이 내 품에 쏘옥 들어온다. 작고 예쁜 아이를 품에 넣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나도 나의 엄마와 할머니에게 그런 존재였을까.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을 주는 그런 존재.
엊그제, 그러니까 일요일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날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가슴을 들썩이며 힘겹게 숨 쉬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눈을 못 뜨시길래 귀에다 대고 “나야, 한국희, 국희라고, 할머니 손녀” 라며 할머니 옆에서 크게 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굴었다. 잠시 뒤 세상에서 가장 무거웠을 그 눈꺼풀을 힘겹게 뗀 할머니가 나를 보았다. 흐리고 탁한 눈동자를 내게 보이며 다문 입을 벌리려 애를 썼다. 아무리 벌리려고 해도 벌려지지 않는 그 입을 끝내 열지 못한 채 할머니가 울었다. 내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입술이 닫혀있으니 무슨 말인지 들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할머니 옆에 앉아서 퉁퉁 붓고 차가운 그 손을 주무르고, 온열기를 가져다 쬐었다. 몇 분 지나니 4-60을 오갔던 산호포화도가 8-90까지 올라갔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한결 숨을 쉽게 내쉬었다. 그날 할머니 옆에 한두 시간 가량을 머물면서 눈을 좀 떠보라고 나를 좀 보고 가야 할 것 아니냐고 조르기도 하고, 내가 많이 못 와서 너무 미안하다고 엉엉 울고 나를 키워준 것 고맙다면서 끅끅 울먹였다. 그렇게 혼자서 이런 말 저런 말 다 하고 마지막으로는 솔이 현이를 잘 키우겠다는 다짐을 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문상객으로 온 어릴 때 보던 친척분들께 근황을 알리고 대화를 나누느라 바빴다. 납골당에 가서 할머니가 실린 관을 보고, 할머니가 화장장에 들어갈 때, 그리고 어릴적 나보다 곱절이 컸던 그 몸이 한 줌의 재로 돌아왔을 때, 납골당에 안치된 그 유골함을 마지막으로 만졌을 때 남아있던 따뜻했던 열기가 손으로 전해졌을 때 나는 많이 울었다. 어른이 되고나서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운 적이 없는데,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할머니의 유골함 앞에서 크게 울었다.
막상 집에 오니 아이들 밥을 먹여야 하고 싸우는 아이들을 말려야 하고 삼일간 엄마를 못 본 터라 더욱 나에게 엉겨붙는 아이들을 만져주어야 하니 정신이 없었다. 나는 다시 무사히 나의 일상에 안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둘째가 가져온 그림책, 두더지가 그의 할머니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림에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메인 목을 가지고서 어찌저찌 그림책을 끝까지 읽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의 생애를 기억해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보다 내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일이구나 싶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목욕을 했을 때 내가 처음으로 말을 내뱉었을 때, 걸음을 떼었을 때 그 모습들을 감격하고 마음 속의 황홀한 순간으로 품어준 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
할머니는 비록 떠났어도 나와 내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그녀가 남아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시래기된장국과 콩나물국에, 아이들에게 해주는 따뜻한 밥에, 잠이 안 오는 아이들의 내복 안에 손을 넣어 등을 긁는 그 손끝에, 학교 다녀온 아이를 안아 꼬옥 품어주는 가슴팍에 남아있다.
둘째를 낳고서 할머니에게 아이를 보여주러 갔을 때가 6년 전이다. 할머니는 내 옆에 바짝 붙어있는 첫째와 품 안에 안긴 둘째를 번갈아 보며 내게 말했다. “이제 애기 낳지 말아, 이제 끝이야, 더 낳지마, 힘들어서 낳으면 안되, 그만 낳아. 그리고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악기든지 체육이든지 공부든지 다 시켜야 해, 여자애라고 안 시키면 안되.”
무어라 설명도 묘사도 하기 힘든 그 상실감.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는 감정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만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엄두가 안 나는 어떤 상태. 결국 아이를 재우고 나와 키보드에 손을 놓고 타이핑을 하지만 그 무엇도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가 없다. 어줍짢게 뭐라도 쓰려했으나 결국 쓰면서 울기만 했다. 할머니가 너무 너무 보고싶다. 정말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