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율 Oct 29. 2016

예비교사의 시국선언

하루만큼 강해진 당신 앞에 찾아온 작은 습관 여섯

2016년 10월 28일

시국선언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한 자유발언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브런치에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예비교사인 학우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지만, 다음 세대에게 이 사회를 물려줄 모두에게도 이 책임에 대해 얘기해야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물론시국이 어지러운 요즘, 안녕하다는 대답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조금은 덜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일반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자보 하나 구경하기 힘든 교육대학에서도 시국 선언을 위해 많은 학우들이 모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는 세 글자, 최순실. 사이비 종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믿기 힘들 정도로 부당한 방법을 통해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극악무도한 이 사람에게, 우리의 대통령은 그녀의 모든 것을 내주었고, 그로써 우리의 모든 것을 내주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라 할지라도 아무나 볼 수 없는 극비 연설문을 고치고, 대통령의 주의를 맴돌며 정세를 쥐락펴락한 그녀를 보면,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뽑은 것인지 알 수 없어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 자괴감의 깊이만큼 저를 또 침몰시키는 것은 이 사태를 바라보는 몇몇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우리 학교 학생이 올린 글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어차피 학생들이 많이 모이지 않을테니 괜히 힘 빼지 말자는 게시글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시국선언을 하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사태를 외면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에 놀라기만 하고 넘길 것이고, 또 누군가는 술자리에서 얘기하는 시시껄렁한 토픽으로만 보고 지나칠지도 모릅니다.  

예비교사인 우리가 사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미래의 제자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까요? 과연 대한민국의 헌법을 마음의 거리낌 없이 가르치고, 민주주의를 일궈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흘려야했던 피와 땀의 역사를 아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독재에 맞서 싸우면서 목숨을 잃었던 수 많은 사람들,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리는 고문을 당해가면서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세운 사람들을 떠올릴 자격이나 있을까요?

사태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권선징악이 뚜렷한 시나리오와는 다른 현실과 마주하게 되면, 그리고 시간이 흐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사태에 무뎌지고, 이를 점점 잊어갈 것입니다. 그래도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만큼이라도, 계속해서 불의에 눈을 감지 말고, 목소리를 내고, 사태의 심각성에 무뎌지지 않기 계속적으로 노력해주십시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의 존엄성, 아이들의 설 곳,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야하는 친애하는 미래의 선생님들 모두,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참으로 불행했던 연애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