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계절은 다시 볼 수 없으니까
봄이 되면 패딩을 걸치지 않고도 걔와 산책을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외출을 하면 걔가 꽃 냄새를 맡고 꽃을 보게 하려고 애썼다. 까치발을 들고, 양손으로 10킬로가 넘는 걔를 안고, 꽃 가까이에 걔 얼굴을 댔다. 그러면 걔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사실 나는 걔가 꽃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안다. 꽃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이나 간식을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매번 꽃 옆에 걔를 앉혀놓거나, 떨어진 꽃을 목덜미에 얹어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 걔는 씩- 하고 웃었다. 팬 서비스를 하듯 한 번씩 보여주는 그 웃음 때문에 나는 걔의 타의적인 꽃구경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끔은 고구마 말랭이 같은 달콤한 뇌물을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올해는 이상기후로 벚꽃이 2주 이상 일찍 개화했다고 한다. 함께 다녔던 아파트 단지에도 개나리와 벚꽃이 곱게 폈다. 작년 봄엔 뭘 했더라, 핸드폰 앨범을 열었다. 작년 3월 말에는 날이 추웠던 모양이다. 패딩을 입고 산책했던 사진들이 몇 장 남아있었다. 사진 속 풀과 꽃들은 여전히 겨울의 색이었다. 4월이 되니 비로소 곳곳에 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하필 그 무렵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도 친구가 보내준 사진으로 알았다. 자가격리가 끝난 다음날부터는 이사를 했고, 정신이 없었다. 걔는 며칠간 호텔에 맡겨졌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 사이 꽃잎은 떨어져 부서지고 푸른 잎들이 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결국 걔도, 나도 꽃은 구경도 못했다. 꽃 앞에서 웃는 걔의 사진은 당연히 한 장도 못 찍었다.
작년에도 올해처럼 꽃이 일찍 폈다면, 하루는 같이 나가서 꽃 구경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이사를 천천히 했으면 여유가 좀 있었을까. 벚꽃으로 가득한 오늘의 하늘을 보고서야 돌이켜본다. 올해 핀 꽃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너와 나의 시간은 항상 이렇게 불공평했지. 그래도 너는 어느 풍경에 있든 예쁘고 환했으니까, 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이른 봄을 맞이한 모두가 따뜻한 시간을 함께, 오래오래 보냈으면 한다. 지나간 계절과 꽃은 다시 볼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