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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Sep 10. 2017

15. 불빛이 일렁이는 체스키의 밤

동유럽의 작은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

유럽에서의 기차는 버스와 비교하여 매우 편리하게 이용 가능한 교통수단이다.  일단 역에 가서 기차 스케줄을 보고 플랫폼으로 가면  내가 탈 기차가 있다. 파업이 아니라면 딱히 어긋날 일이 없는 경로와 시간표가 있는 교통수단.

그에 비해 유럽의 버스는 기차에 비해 드문 시간, 경로 등과 더불어 이용할 때는 정확한 정류장을 몰라 상당히 헤매기 때문에 버스보단 기차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게 훨씬 좋다.

왜일까

왜 그랬을까

독일에서 동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버스를 이용했다. 그 때문에 이동에 대한 강박관념이 많았는데 이 버스를 놓칠 수도 있다는, 다른 곳에 내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작용했다.

 


-도시에서 마을로

아침 일곱 시.

체코의 동쪽 작은 도시 체스키에 가는 날이었다.

오늘의 교통수단은

1. 프라하 지하철을 타고 안델 역까지 간다.

2. 안델 역에서 버스정류장을 찾아 버스를 타고 체스키 크룸로프를 간다.

어쨌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날. 불안감에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정류장을 찾기 위해 일찍 나가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가지 않으려는데 민박집 사장님이 여기서 안델 역까지 얼마 걸리지 않으니 아침을 먹고 가도 충분할 것이라고 굳이 굳이 식탁에 우리를 앉혔다.

아침은 정말 맛있었고 앞으로 한식을 먹을 기회가 없는 만큼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배낭을 메고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보조가방을 메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왠지 여행을 하면서 짐이 더 늘어나는 기분이다. 아참 캐리어에 런던에서 쇼핑한 신발과 잎차들 파우치들이 들어있지..


프라하의 지하철역 입구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다.

우와 끝도 없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계단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의 엄청난 속도!

우리나라의 에스컬레이터가 쿠.. 궁.. 쿠.... 궁.. 이렇게 움직인다면 프라하의 에스컬레이터는 쿠궁쿠궁쿡우구우쿠구우궁 와핳아아앙 이렇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


안델 역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근처에 분명히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했는데!! 텅 빈 그곳에서 비도 내리고 버스정류장도 찾을 수 없었다.

둘이 찢어져서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차고지 같은 곳에는 많은 버스들이 있었다.

많은 버스 가운데서 어떻게 체스키 가는 버스를 찾지... 여기저기 물어봐도 영어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망연자실 앉아있는데 옆에 한국인처럼 보이는 가족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듯 보였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데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버스를 찾고 있었다. 고달픈 삶.


마침내 어떤 한 버스에 기사님이 다가온다. 잽싸게 물었더니 맞다고 한다. 체스키 가는 버스.

드디어 간다 체스키 크룸로프!!



-꾸미지않은 그대로의 동유럽

프라하를 벗어날수록 비가 매우 거칠게 온다. 우울했다.

3시간 여를 달려  체스키에 도착했다.

우와

비가 미친 듯이 온다!

우산을 썼지만 비를 다 맞았다. 얼른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싶었다. 쉬고 싶었다.

버스에 탄 그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다. 삼삼오오 숙소를 찾아갔다. 저들을 따라가면 호스텔촌이 나오겠지.

하지만 숙소는 나오지 않았고 하늘도 울고 나도 울고 있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건물들이 18세기 이후에는 지어진 게 거의 없다 하니 과연 길바닥도 돌이 알알이 박힌 울퉁불퉁 유럽의 그 길이었다. 캐리어가 덜커덩덜커덩 거렸다.

프라하의 반짝반짝 우아한 모습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동유럽의 진짜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한참을 헤매고 숙소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버스정류장에서 제일 지척인 것이 우리 숙소였다.

숙소를 찾느라 이미 이 동네를 다 돌아본 듯한 느낌이었다.

체스키크롬로프에서 묵은 숙소

숙소는 마치 호빗들이 사는 집 같았다. 내부의 지반도 천장도 낮았고 대부분이 나무로 되어있는 것 같았고 오래되어 보였다.

따뜻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만으로 좋았다. 낯선 곳에서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정리를 하니 비가 잦아들어 숙소를 나섰다. 비가 와서 못 봤던 풍경이 보였다.

누워있는 S자의 형태로 강이 흘렀고 그 주위에 붉은 지붕의 집들이 빼곡했다. 여긴 확실히 시골마을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동화 속 시골마을.

체스키 크룸로프는 굉장히 작은 마을이라 곳곳에 좁은 골목실이 있고 그곳을 지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어느 곳에서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엽서가 탄생했다. 한국의 휘향 찬란한 간판과 투박한 가로등과 비교해 가게의 간판 하나 가로등 하나 각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그 모습마저 이국적이었다.


체스키 크롬로프 성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온통 초록이었다. 마침 비도 와서 반짝반짝 길도 나무도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 비로 촉촉하게 젖은 나뭇잎과 잔디 사이에서 올라 갈수록 풀냄새가 진하게 났다. 산책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었고 내려다 보이는 체스키의 전경도 새로웠다.


동유럽에 다닐 때마다 특히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났다. 그 전에는 나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와 이국적이고 맛있는 음식들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길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로도 아름다운 나라였다. 이 좋은 걸 나 혼자 본다는 이상한 죄책감과 더불어


내려오는 길에 어디선가 코를 자극하는 빵 굽는 냄새가 났다.

우리도 모르게 이끌려 간 곳에서 빵을 팔고 있었다. 얼핏 보니 생소한 모양의 빵 모양이다. 안이 뻥 뚫린 빵 모양

하나 사서 나눠먹기로 했다.

맙소사. 이 쫄깃쫄깃한 식감과 코에서 나는 향기로운 계피 냄새와 달콤한 설탕 맛이 황홀했다.

트르데닉이라는 동유럽의 전통 빵이었다.

너무 맛있다 너무 맛있다!!!

맛있는 음식 하나에 행복이 몰려왔다.

숙소 근처 끌려 들어온 카페.

핫 초코와 맥주와 당근케이크를 하나씩 시켰다. 현지의 로컬 가게는 어딜 들어와도 기분이 좋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서늘한 밤과 따뜻한 불빛

체스키 성에 다시 오르기로 했다. 그곳에서 야경이 보고 싶었다.

분명 많이 사람들이 오는 걸 봤는데 우리가 갈 때는 텅텅 빈 느낌이었다. 날씨가 쌀쌀하고 어쩐지 사람들도 많이 없고 어두운 곳으로 변해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이 없고 어두운데 올라가도 되려나 겁을 한주먹 집어먹고 성을 올랐다.


오르다 보니 이상한 곳을 발견했다. 성으로 가는 곳 옆에 난간 아래 깊은 공간이 있는 곳을 지났는데 까치발을 하고 내려다보니 완전한 어둠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우리 같은 느낌이 있어서 친구에게 장난식으로

야 여기 무슨 곰 있는 거 아니야? 하며 웃었다.

알고 보니 정말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는 곰이 살고 있었다. 내려오다 보면서 곰이 살고 있다는 안내판을 본 것이다.

날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어떻게 알았냐고 소름 돋는 다고 웃는 친구 옆에서 한참을 웃었다.

근데 정말 어떻게 내가 말한 대로 곰이 살고 있는 거지..?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한적해서 더 좋았다. 오후에 보았던 체스키의 붉은 지붕은 붉은빛으로 바뀌어 있었고 더 따뜻하게 보였다. 가만히 체스키 마을을 내려다보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런 곳이 있었어.

정말 이런 곳이 있었네.

프라하의 화려한 야경과는 다른 조용한 시골의 야경이었다. 숲 냄새, 바람 냄새, 강 냄새 하나하나가 어쩐지 어릴 적 밤에 고속도로를 달려 시골 할머니 댁에 가던 그 기억이 생각나게 했다. 창밖에 보이는 조용하고 고요하고 어두우면서 주황 불빛이 빛내던 그 풍경. 저기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라고 생각하던 그때 그 시골 풍경과 겹쳐 보였고, 마음이 울렁울렁거렸다.

울렁이는 마음을 붙잡고 내일이면 떠나는 체스키 마을에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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