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xx Mar 01. 2018

프란시스 하! 너의 인생을 사랑해

사랑이 전부가 아닌 방황하고 실패하는 27살 여자의 삶


무용을 하는 27살 프란시스.
-직업이 뭐야?

-무용수예요 아 물론 전속은 아니고 수습 무용수지만요


뭘 하냐 물으면 프란시스는 꼭 이 말을 붙인다.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언제나 변명을 붙이는 사람의 특징이랄까

나처럼 말이다.


뉴욕에 살면서 룸메이트를 구하기 위해 어린이 발레학원의 알바를 뛰지만 프란시스를 규정할 그 어느 것도 없다. 대학생도 아니고 무용수도 아닌 그 사이 어떤 부정확함에서 떠다니고 있는 게 프란시스다.

 

-그저 그런 인생의 위기


프란시스는 대학교 때 만난 가장 친한 친구 소피와 같이 산다. 서슴지 않고 사랑해 라고 말할 정도로 말 그대로 프란시스는 친구 소피를 사랑한다. 남자 친구와의 동거 제안을 거절할 만큼(사실 남자가 같이 살 만큼은 아녔던 것도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인생이지만 꿈을 좇고 있고 사랑하는 친구가 있는 프란시스는 큰 좌절도 없다.
하지만 그런 프란시스의 인생에 사건이 일어난다.


-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

그저 그런 인생에서 나름의 희망이 보인다고 했던 공연이 무산되고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사라진 삶에 프란시스의 그저 그런 삶에 변화가 온다.

소피는 다른 좋은 조건의 룸메이트를 따라 프란시스와 헤어졌고 세 번의 이사와 월세를 위해 잡힌 크리스마스 공연도 무산된다.

이제부터 뭘 먹고살지. 이게 아니면 무얼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프란시스는 영화 한 편 볼 돈 도 없다.

그리고 서로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던 단짝은 이제 없다. 소피의 결혼은 프란시스 세계에서 소피를 떼어간다. 더 이상 서로의 삶이 같지 않고 각자의 세계가 생긴 것이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친구와의 이별은 이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물리적으로 헤어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헤어짐.

서로에게 각자의 세계가 생긴다는 것.

프란시스의 나이 즈음의 여자들은 겪어봤을 법한 이별. 너에게 언제나 우선순위가 나이고 나에게도 언제나 우선순위가 너였던, 너의 모든 걸 알던 나와 나의 모든 걸 아던 너 그런 사이에서 내가 급작스럽게 밀려난 기분은 세상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친구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진입하며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누구도 완전히 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완전히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 소피와 공유하던 세계가 찢어져 유독 멍해 보이던 나름의 방식으로 방황하던 프란시스의 엉망징창한 모습에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게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모든 일에 대해


하루는 우편을 뜯어본 프란시스가 뛸 듯이 기뻐한다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밥을 사준다고 한다
프란시스 너 백수잖아!!라는 나의 마음속 외침 뒤로 프란시스가 기쁨에 가득 차 외친다.

나 텍스 리펀 받았어!!!!


밥을 맛있게 먹고 자신 있게 계산을 하며 카드를 내지만 카드 사용불가
오 암 이디엇
내가 낸다던 친구를 만류하고 atm을 찾아 나선다 달리고 또 달리고 결국 atm을 찾고 돈을 뽑아오면서 넘어지기까지 한다.


난 안타까움에 외쳤다.

'오 프란시스'

이 장면을 보고 어떻게 프란시스를 미워할 수 있을까.

자신의 실수를 저주하지 않는 프란시스.

달리다 넘어지면 그냥 일어나 달리고 마는 그런 프란시스.

자신의 실수에도 암 이디엇이라 말하고 다시 앉아 웃으며 밥을 먹는 프란시스.

그녀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느냔 말이다.



무용수를 꿈꾸며 늦은 나이에도 그 주위를 맴돌던 프란시스는 지도교수의 제안으로 했던 무대감독의 일로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그렇게 싸늘하게 거절하며 절대 하지 않겠다던, 한물 간 무용수들의 일이라 여겼던 데스크에 앉아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의 유일한 재능이라고 생각한 무용과는 다른 곳에서 나름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만 같은 일이 있다.

그게 비단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완성해야 할 작업이라던지 학업의 일이라던지 

이걸 포기하면 내 인생이 모두 하찮아지고 인생 자체가 실패작이 될 것만 같은 그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졌던 목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야를 조금만 확장하면

이게 아니면 죽을 것만 같던 그런 일을 안 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고, 내가 꿈꾸던 일을 하지 않아도 나는 먹고, 잠자고, 생활하며, 사랑하고 나는 살고 있다.

인생의 모든 부분이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꿈꾸던 모든 일을 놓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실패라 말하지 않는다.

프란시스가 결국 무용수가 되지 않았지만 영화 그 어디에서도 프란시스의 삶을 실패한 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란시스의 주변인들은 프란시스를 응원하고 프란시스도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세상에 꿈을 이루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행운을 거머쥔 것이라는 걸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지금은 놓을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을 놓음으로써 완성된 것일 테니 말이다.


이 영화는

소피가 이혼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프란시스가 결국 무용수로 성공하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혼자만의 쉴 곳을 가지게 되었지만 명패의 자리가 부족해서 프란시스 홀리데이라는 프란시스의 풀 네임이 프란시스 하에서 잘려서 너무너무 좋았다.


프란시스 하!처럼 우리도 어딘가는 부족하고 실수하며 완벽하지 않아도 현재를 꾸려가는 모습 자체만으로 언제나 아름다울 것이다.




가볍게 본 프란시스 하라는 영화는 나에겐 충격이었다. 내가 20살 즈음부터 겪은 나의 작은 세계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 실패를 보여준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왜 이런 느낌의 영화가 없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본 그 많은 성장영화 중 엉망징 찬인 내 삶과 같은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 그린 영화는 처음이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삶을 사는 20대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어디 그리 흔할까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

미디어에 나오는 여성의 모습의 스펙트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져야 한다고.

그저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모습이 아닌 실수하고 어디로 가는지 혼란스러워하고 혼돈스러운 삶. 우리 옆에서 그리고 내가 그리는 실수하고 허술하지만 그래도 이어지는 여성의 모습.

학생이 아닌 10대

연애가 전부가 아닌 20대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30대

주부가 아닌 40대

모성애로 포장되지 않는 50대

그리고 그 후의 세대까지 더 다양한 이전 세대들에게 나이가 들어도 평범한 사람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모습을 더욱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어라이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