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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Oct 29. 2017

영화 어라이벌

너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난 이날이 네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었어.

생각과는 다르게 기억이 돼.

우린 너무 시간에 매여있어.

그 순서에"

-어라이벌 루이스 대사


실패할 것을 명백히 알면서도 행하는 일이 있을까.

처음과 끝을 인식하는 선형적인 사고와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비선형적 사고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

'가정'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것일까.

'희망'이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무엇인 걸까.

 이 행위의 결과를 안다면 ,

희망이 통하지 않고 가정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기분은 무엇일까.

내내 슬프기만 할까 그렇지 않으면 목적지로 가는 과정을 더 소중히 하며 나아갈까.


잠이 오지 않는 밤 VOD로 본 영화 어라이벌의 크레딧이 불 꺼진 거실에서 유일한 빛을 내며 출렁이고 있고 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들로 복잡해졌다.

주인공 루이스가 선택한 인생은 나에게 물음표만 남겼다.

아니 애초에 루이스가 선택한 인생이긴 한 것인 건가?


외계 비행물체가 지구 곳곳의 12군데에 상륙했다.

모든 국가들은 이 외계 비행물체가 왜 지구에 나타난 것인가를 두고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진다.

영화 주인공 루이스 뱅크스 박사는 저명한 언어학 전문가이다. 이전에도 군을 도와 테러단체의 언어를 해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루이스 뱅크스 박사는 외계언어를 해석해 주기를 군으로부터 부탁받는다.

 


언어학 박사 루이스 뱅크스와 이론물리학 박사 이안 도널리를 필두로 18시간마다 문이 열리는 외계 비행물체 쉘에 들어가 외계인들과 접촉을 하고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외계인에게 적대적인 국가들이 전쟁 움직임을 보이자 다급해진 루이스는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홀로 쉘로 향한 한다.

그리고 외계인들에게 묻는다.

'이곳에 당신들이 온 목적이 뭔가요'



-페르마의 원리가 만든 이야기의 시작.


이 이야기의 시작은 물리학으로 시작된다.

여타 다른 물리학들과는 다른 물리학 원리.


"물리 법칙의 통상적인 공식은 인과적인데 반해 페르마의 원리 같은 변분 원리는 합목적적이고, 거의 목적론적이기까지 하다는 점"


영화를 보고 난 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영화의 원작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원작에서 이야기의 시작을 만날 수 있었다. 도표까지 사용한 물리학의 원리를 설명한 그 부분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인과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는 목적론적인 물리학의 원리를 발전시켜 우리 인간이 인식하는 것과 다른 세계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는 선형적인 세계관이 인간이 사는 세계관이다. 우리는 원인 다음에 반드시 결과가 있는 세계에 산다.

이를테면 단것을 많이 먹어서(원인) 이가 썩었다.(결과)

공부를 열심해서 만점을 맞았다.

와 같이 작은 개념에서부터 병이 들어 죽었다 와 같은 것까지.


영화 속 그리고 책 속의 외계인들 헵타 포드들은 이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들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적인 면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목적론적 인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헵타 포드들은 모든 사건들을 한 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바로 페르마의 원리처럼 말이다. 그것의 증거는 그들의 언어로 나타난다.

 인간의 언어는 그 순서가 있다. 영어의 경우 주어 동사 목적어라는 순서를 따라 문장이 완성된다. 인과관계처럼 인간은 원인을 통해 결과를 인지 하게 된다. 절대 원인 없이 결과를 인지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헵타 포트의 언어는 동시적이다. 얘기하려는 문자를 한 페이지 안에 순서없이 한꺼번에 완성시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동시에 경험하고 거기에 깔린 목적 즉 결과를 인식한다.


이러한 원리로부터 시작해 헵타 포드의 세계관이 완성된다. 그들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인류와 달리 종국적인 결말 즉 미래를 아는 종족이라는 사실 말이다.


헵타 포드는 지구에 온 이유를 말한다. 헵타 포드들이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으며 그때 도움을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루이스에게 헵타 포드의 '종국적인 결말을 인지'하는 세계관을 선물로 주고 떠나게 된다.


-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와 책 모두 시작은 루이스의 딸에 관한 나레이션, 기억들로 시작된다. 루이스는 딸을 가졌었고, 후에 딸을 잃게 된다. 영화의 플롯은 아주 교묘하다. 첫 시작은 루이스의 딸의 탄생과 커가는 과정들 그리고 죽음이다. 그 뒤를 이어 그 사건이 시작된다. 그리고 루이스는 헵타 포드를 만나는 중간중간 딸과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깨어난다.  


'인간의 인과관계론적 인식에 의하면' 영화를 끝까지 보면 결국 루이스의 딸의 경험은 헵타 포드 사건 이후에 일어나는 이야기인 것을 알 수 있다. 교묘하게도 교차편집으로 보이게 해 헵타포드의 구성이 된다. 딸을 잃고나서 헵타포드와의 사건이 일어난 줄 알았던 관객들은 마지막에 밝혀진 헵타포드의 비밀로 루이스가 줄곧 미래를 본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형식 자체도 시작과 끝이 없는 비선형적인 헵타포드의 세계관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루이스는 헵타 포드를 만나고 결말을 인지하는 세계관을 얻게된다. 그리고 동료였던 이안 도널리 박사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잃게 될 딸을 갖는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말이다.

원작과 영화에서의 차이점은 시각적 표현 말고도 주목할 점이 있다.

영화 속에선 루이스가 의지를 가지고 잃게 될 딸인걸 알면서 딸을 만나게 될 과정을 그대로 따른 것 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원작과 다른 흥미로운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루이스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하려면 A.딸을 갖는다. B.딸을 갖지 않는다 로 굉장히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한다. 그이유는 딸의 사망원인이 병이기 때문이다. 일단 딸을 갖게 된다면 루이스는 결국 딸의 죽음이라는 결말로 향해가게되는 것이다. 결국 루이스는 자유의지로 결국 있을 결말을 택하게 된다. (그런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루이스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른이야기를 한다. 원작에서 루이스는 자유의지를 [세월의 책]이라는 우화를 빗대어 이야기한다

[세월의 책]은 과거와 미래의 사건을 연대기 순으로 적인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사건을 매우 상세하게 연대기 순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책에 적혀있는 미래의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감을 혹은 호기심을 갖고 책에 적힌 사건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미 연대기 순으로 적혀있는 사건들이 책의 사건을 수행하지 않음으로 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책은 절대적으로 옳아야 하지만 또 동시에 책을 읽는 사람은 자유의지를 갖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월의 책]에 대한 모순이 발견되고 루이스는 생각한다.


자유의지의 존재는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유의지가 존재하다는 것을 안다. 의지란 의식의 본질적인 일부인 것이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일까? 미래를 안다는 경험이 사람을 바꿔 놓는 다면? 이런 경험이 일종의 절박감을, 자기 자신이 하게 될 행동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면?

-당신 인생의 이야기 P.196


원작에서 루이스의 딸의 사망 원인은 사고사이다. 루이스가 자신이 미래를 바꿀 의지만 있다면 어떤 노력으로 인해서 바뀔 수 있는 결론일지도 모를 원인인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세월의 책]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자유의지를 포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불가항력적인 의무감이 자유의지를 이긴 것이다.



이 모든 걸 인식하고 영화를 끝까지 보면 어쩔 수 없는 질문이 따른다.

원작과 달리 영화는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루이스라면?

만약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고통인 것을 알면서도 그 결과까지의 거리를 걸어 갈지 ,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며 고통이 없는 다른 삶을 선택할지. 영화가 끝나고 명백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원작을 읽고 나서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세월의 책을 지킬것인가 아니면 자유의지를 따를 것인가


원작이 있는 영화는 반드시 비교를 당하기 마련인데 책과 영화는 모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원작은 인간의 언어체계와 세계관으로 헵타 포드의 언어를 해석하는 데 매우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을 읽으면서 페르마의 원리와 만날 때는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고 구성하는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영화는 이 이야기를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매우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원작에서 나오지 않는 갈등 상황을 만들어 긴장감을 형성하여 관객들이 몰립하게 만든다. 쉘과 헵타 포드 그리고 헵타 포드의 언어의 시각적 표현은 그동안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신선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끝나고 머릿속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떠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도 계속되는 영화. 내가 할 수있는 최고의 감상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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