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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Dec 25. 2017

19.심장이 터질거 같던 스위스의 하늘(2)

인터라켄밖으로

마지막 여행기를 쓴 게 지난 11월.

바빠서 피곤해서라는 여러 핑계가 있지만 사실 요즘 통 지나온 여행의 느낌이 사라지는 것 같았었다.

시간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때는 절대 절대 잊지 못할 감정이야 라고 생각했던 것도 일상에 파묻혀 사라질 위기여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슬프게도.


요즘 지난하고 건조한

매일이 시작되는 장소에서 난 잠시 멀리 여행을 다녀온다.

하루는 스페인의 그 온몸을 태우는 태양 밑에 잠시 있다 오기도 하고, 서늘하고 맑은 공기가 느껴지는 스위스의 호수를 바라보고 오기도 한다.

번뜩 정신이 들면 다시 건조하고 삭막한 장소에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슬퍼지지만, 사라진 것 같은 여행의 느낌이 스멀스멀 나타나고 그 잠시 동안이라도 힘을 낸다.


여행이 주는 힘이 대단하다는 걸 다시 느낀다.

의미 없고 지난한 하루하루 그때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 힘을 주니 말이다.



일기 예보에 뜬 인터라켄의 마지막 맑은 날.

아침 일찍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융프라우에 갈 예정이었다.

융프라우 기차 티켓을 사기 위해 갔지만 지금 가면 막차시간이 얼마 안남아 30분밖에 구경을 못한다는 승무원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상의 끝에 융프라우 티켓을 사는 걸 포기했다.


고민한 끝에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 밖으로 나가보자고 결정했다.

날도 맑겠다 싶어 인터라켄의 브리엔츠로 유람선을 타고 이동한 후 기차를 타기로 했다.

유람선 타러가는 길은 여기에요!


어딜 가나 표지판이 잘 되어있어서 길을 헤매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물론 마을 자체가 작기도 했지만)

배를 타고 가자던 우리의 계획은 탁월했고 맑은 하늘과 에매랄드 호수가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탈 배가 저건가 보다.

크진 않지만 깨끗하고 안정감 있어 보이는 배였다.


태양이 너무 반짝이는 탓에 눈을 뜰 수 조차 없었다.

하늘은 태양 빛으로 가늠이 안될 정도였고 그 빛이 비치는 호수의 아름다운 색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다.


하늘도 호수도 반짝거렸고 옆에 앉아있던 아이들의 노란 머리칼도 빛에 반짝여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이곳에 있으며 이런 풍경을 매일 눈에 담고사는 이곳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내심 샘이 나고 부럽기도 했다.



-인터라켄에서 루체른

배가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승무원들이 배를 묶을 줄을 던지고 있는 걸 구경했다.

우리가 너무 뚫어져라 구경하고 있었던 탓인지 몇 번의 실패 끝에 배를 고정하고 우리는 배에서 내려 기차를 타러 갔다.


루체른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팠던 우리는 역 근처에 보이는 프레첼 가게로 갔다. 상당히 크기가 큰 프레츨들 앞에서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 골라든 프레첼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왕소금이 박혀있는 프레첼의 짠맛에 기겁을 했기 때문이다. 짠 걸 좋아하는 친구도 이건 정말 짜서 못 먹겠다고 말할 정도니

어쨌든 너무 배가 고팠던 우리는 그 짠 프레첼을 카펠교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며 다 먹었다.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던 루체른의 거리 모습은 인터라켄의 조용했던 곳과는 달랐다.

차도 많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차선과 신호등들 여기저기 표지판들.

한 낮의 태양이 붉은 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따뜻한느낌과 동시에 쓸쓸함을 느꼈다. 하루가 간다는 아쉬움. 해가지는 그 시간대의 장소가 어디든 져가는 해의 빛은 맘을 울렁이게 한다.


해가 저물어가는 대로 생긴 그림자들과 카펠교 및에 반짝이는 빛에 다시 한번 정신을 못 차렸다.

멀리서 보이는, 다리를 장식하고 있는 꽃들이 카펠교에 생기를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가까이 가서 걸어본 카펠교의 나무의 결에서, 나무에 그려진 판화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밤이 되면 조명이 켜져 더 아름답다는 데 아쉽게도 숙소가 근처가 아니었던 지라 카펠교에서 로이스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장소를 이동했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근처에 사자 기념비가 있다고 들어 루체른까지 온 김에 보고 가기로 했다.  



사자상까지 걸어가는 길이 좋았다.

깨끗하고 서늘한 느낌을 주는 건물과 길들이 좋았고, 루체른의 골목실을 걸으며 구경하는 상점들의 물건들과 간판들은 또 다른 여행의 재미였다.



해가 저물며 급격하게 추위를 느꼈다. 정오만 해도 더웠는데 해가 져 간다고 이럴 수가 있나!

민소매 원피를 입고 나왔던 나는 가져온 스카프가 아니었으면 정말 감기라도 걸릴 날씨였다.

정말 유럽 와서 오만가지 날씨를 한 달 만에 경험하고 가네 라는 생각과 함께 코를 훌쩍였다.

6월이라도 방심하지 말고 스위스엔 겉옷을 꼭 챙겨가야 한다.



-루체른에서 인터라켄까지 직행이 없어!

사실 시간이 좀 지연됐던 터라 카펠교에서부터 숙소까지 돌아갈 수 있나 마음이 조급했었다.

기차 시간표를 검색하며 시간을 계산하니 더 불안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차를 놓치면 그곳에서 일박을 하면 되었을 텐데 당시에는 그 생각을 못했었다. 그저 우리 돌아가지 않으면 노숙이야 라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과 당시의 상황이 달라서인 것이 크지만 말이다.


다급하게 폰으로 기차 시간표를 검색했다.

맙소사 인터라켄까지 가는 직행이 없었다. 루체른에서 베른에 갔다가 인터라켄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해야 했다. 게다가 환승 시간도 촉박해!

노숙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루체른역으로 향했다.




조급했던 마음 탓인지 루체른에서 베른까지 가는 기차도 영어 표지판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 거리다가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베른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 때의 기차역에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철제색의 기차들과 암흑색의 역의 인상. 무섭고 삭막하기까지 했다.


무사히 기차에 탔다고 안심하는 것도 잠시 베른에 도착해 인터라켄까지 가는 기차를 7분 만에 환승해야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선택지가 있다면 베른 기차역에서 노숙일 뿐..


밤 10시 베른에 도착했다. 이 곳은 이탈리아가 아닌 스위스. 기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이 칼 같은 스위스.

우린 할 수 있어 7분 만에 환승할 수 있어!!

베른 기차역은 또 왜 이렇게 넓고 표지판은 왜 보이지 않는가.

우린 내리자마자 질주했고 에스컬레이터를 두 걸음씩 뛰어오르고 내리며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기차에 아슬아슬하게 탑승했다.


팔딱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좌석에 앉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막차였지만 스위스의 치안은 굳은 믿음을 만들어 줬기에 그저 인터라켄을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긴장이 풀려 좌석에 널브러졌다.

-정말 하얗게 불태웠어...

기차의 창 밖에는 불빛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인터라켄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깜깜한 인터라켄이었지만 지친 우리는 숙소 간판이 보이자 거의 울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

분명 가로등이 켜져있었을 텐데 숙소건물이 내는 빛이 어둑한 동네에서 유일한 빛처럼 느껴졌다.

숙소의 문을 열고 익숙한 로비가 보이지 완전히 안심을 했다.

와 예상치 못한 피곤한 하루였어

아 뭐 힘들긴 했지만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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