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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Mar 13. 2018

20.뷰파인더로 볼 수 없는 세상

유럽의 꼭대기 융프라우


여행을 와서까지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

사람마다 여행에 대한 이미지가 다를 것이다. 사실 이때까지 여행은 많이 걷고 많이 보고 일상에서보다 열심히 사는 것이었다. 여행은 쉬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한 날들이었다.

여행을 가서 빡빡한 스케줄을 보내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꼭 보기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열차 출발시간 15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기차표를 구입했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걸 보기 좋아하는 나도 오늘은 너무 졸리고 정신이 들지 않았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커피도 못 마셨는데

눈을 반쯤 감고 나른한 공기가 감도는 기차 안 침묵 속에 느릿느릿 가는 창 밖을 보며 앉아 눈이 꾸벅꾸벅 감겼다.  

반쯤 감은 눈을 떠 창 밖을 봤을 때 더 이상 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넓은 대지와 그 속의 집들이 작은 동화 속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가는 만큼 기차는 많이 비어있었고 잠깐 멈춘 산등성 간이역들도 사람들을 찾기 힘들었다.

얼마나 갔을까 점점 눈 덮은 산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해 지는 걸 느끼며 산으로 산 꼭대기로 갈아탄 기차는 천천히 올라갔다.


드디어 도착한 융프라우.

도착하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스위스 자체도 그전에 거쳐온 다른 나라보다 좀 서늘했지만 산 꼭대기까지 올라오니 더 추운 느낌이었다.

 

내가 떠난 계절은 5월 봄이었다. 6월이면 한국은 벌써 여름이 찾아오는 계절인데 10시간을 날아온 이 곳은 아직 겨울이 언뜻언뜻 보였다.

가져올 수 있는 짐은 한정적이었다. 캐리어도 내 몸만 한 크기를 가져왔는데 두꺼운 외투 하나 없다니..

어쩔 수 없이 가져온 얇은 옷들을 껴입고 그 위에 바람막이를 입어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왔지만

그런데도 아쉬운 맘이 들었다.

모자를 가져왔어야 했어..


동굴 같은 곳을 통과하고 나온 전망대에 보인 풍경은 터널 속을 통과해 바깥을 나온 것 처럼 눈이 부셨다.

이런 눈산을 바로 코 앞에서 맞닥뜨리는 느낌은 온통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목을 최대한 쳐 들어 창 밖에 보이는 눈산을 바라보다 야외 전망대 입구가 나왔다.

카메라에 내 눈으로 보는 풍경이 다 담기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연히 다른 뷰파인더의 풍경은 처음이었다.

밖에 나오자마자 바라본 이 풍경은 숨이 막히는 동시에 숨이 트였다.

저 멀리 보이는 산맥까지 끝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차에서 내리고 본 자랑스럽게 쓰인 Top of the Europe이란 팻말에 웃었던 나를 반성했다.

그래 이런 장관이라면 더 한 팻말도 쓰지

여수의 유명한 땅끝절벽의 절 향일암을 아실까.

그곳에서 일출을 보기위해서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한다는 말이 있다. 워낙 날씨를 예측하기 힘들어 나온 말이다.

융프라우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만난 한국인과 티켓판매원 모두 그런 소리를 했다. 날씨가 좋아야 볼 수있는데 날씨가 좋기 힘들다는 그 곳.

날씨의 영향을 받아 쉽사리 볼 수 없다던 융프라우의 풍경은 다행히 우리가 올라간 시각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기 시작하여 무사히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스위스의 유명한 액티비티 체험은 관심이 없었는데 융프라우의 경치를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액티비티 체험도 썩 좋았을 거 같았다.


유럽여행에 선글라스를 챙겨가긴 했는데 정작 필요한 때에 쓰지 못한 바 있다.

바로 융프라우에 가기로 한 날.

거추장스러울게 뻔해 보여 숙소에 놓고 간 선글라스는 이렇게 햇빛에 반사해 반짝이는 설산에서는 필수였다.

야외 전망대로 나가자마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 없는 현장에서 가지고 간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혹시 가시는 모든 분들 꼭 선글라스 장착하고 가시길 바란다.



노래는 특별한 경험을 상기시킨다.

기차를 갈아타는 과정까지 합쳐 거리가 꽤 걸리는 시간에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냥 멜로디와 가사가 좋아 듣던 노래도 스위스의 들꽃과 초록의 평원이 합쳐지니 마치 가수가 이곳 이 자리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하며 만든 노래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그 날의 공기와 습도 구름과 비슷한 계절이면 이 노래를 꺼내 듣는다.

나를 심장이 몽글몽글해지던 바로 그때로 데려가 주는 노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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