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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Apr 10. 2021

범죄 스릴러물을 보는 고통

드라마 괴물이 촉발한 분노

어렸을 적 미국 드라마, 줄여 미드를 CSI로 접한 사람은 커서 장르물 밖에 볼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범죄 추리물, 범죄 스릴러는 그중  가슴을 뛰게 하는 장르물이다. 무엇이  가슴을 그렇게 뛰게 하였는가를 꼽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단서 인지도 몰랐던 장치들이 추리를 통해 아귀가 딱딱 들어맞을 때의 쾌감 , 추리 크루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동할  느껴지는 케미스트리, 그리고 범인이 모든  간파당할 때의 느낌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들을 하나씩 꼽아 장면마다 찬양하고 싶지만 느끼는 감정만큼 글이 써지지 않아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최근엔 괴물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방금까지 10화를 보고 진지하게 장르물을 내가 앞으로 더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괴물은 주인공 이동식의 여동생이 살해당하는 시점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을 쫓는 범죄 추리 스릴러물이다. 한 줄짜리 줄거리를 들으면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범죄물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갖는 특이점은 주인공 이동식이 여동생이 살해당했던 당시 용의자로 몰려 집안이 풍비박살이 나고 20년이 지난 지금 경찰이 되어 사건이 일어난 장소 만양에 근무한다는 설정으로 새로움을 더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작은 마을로 한주원이라는 엘리트 경찰이 전근을 와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장르는 내 심장이 반응하는 장르였다. 내가 반드시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떻게 나의 장르물 역사의 근간을 흔들어놓았는가.


1. 용의 선상에서 용의자 지워나가기

미제로 남았던 사건이 20년이 지난 후 다시 시작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만양이라는 작은 마을 20년 전 살인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이 사건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캐릭터는 모두들 의심스럽다. 여러용의자들, 심지어 주인공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연출과 회차가 갈수록 용의 선상에서 용의자를 지워나가고 마지막 꼭짓점의 진짜 범인을 보여주는 방식의 서사는 범죄물의 낯선 구조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했던 범인의 면모를 드러내면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른다.

하지만 보는 내내  나는 진짜 범인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드라마는 하나의 연극 무대 같다. 만양이라는 공간적 위치를 고정시키고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만 바뀌며 극이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배경은  만양, 파출소, 경찰서, 정육점 반복. 그만큼 인물과 상황에 집중할 수 있지만 드라마 자체가 2차원적 무대처럼 평면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사건은 극을 이끄는 원동력이지만 핵심은 아니어 보인다. 오로지 주인공 두 명에게 모든 무게가 집중되어있다. 범인을 잡는 게 이 드라마의 중심 사건인지 두 주인공의 라이벌적 대결 혹은 공조가 중심 사건인지 도통 갈피가 안 잡히고 연신 두 주인공이 나와 비아냥거리고 분노를 터뜨린다. 그러면서 시청하고 있는 나를 드라마에서 밀어낸다.

  

2.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죽음의 묘사

범죄물에서는 필연적으로 피해자가 있고 죽음의  많은 원인이 살해이고  성별은 대부분이 여자다.  나는  영상물에서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묘사를 이야기하고 싶다. 드라마 괴물에서도 다른 범죄물들과 다르지 않게 여성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사건이다. 익숙한 소재를 사용해서일까 괴물에서의 피해 묘사는 자극의 극단적 도핑제로 사용된다. 때문에 나는  묘사가 방송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것에 매우  우려를 표한다. 특히 10화는 내가  글을 쓰게  이유이기도 한데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원인과  묘사가 불쾌했다. 등장인물의 죽어가는 과정을 그야말로 포르노적으로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죽음의 과정은 그동안 꽁꽁 숨겨온 드라마의 “이다.

 10화까지 숨겨온 진실을 보여주고 진짜 진짜 빌런은  사건과 연관된  사람이야 놀랐지?

심장 진정되지 않았다.


도구적 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인공들을 만나게 해야 하고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도구가 지나칠 정도로 자극제로만 쓰인다면 더군다나 그게 여성 살해라는 이야기라면  묘사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게다가 남성이 도구로 쓰일 때와 여성이 도구로 쓰일 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극이라면 여성만을 자극제로 물화시키고 분해하고 이용만 하고 던져버리는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10화를  보고 머리에 맴도는 영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잠자리를 하나 잡아 요리조리 돌려로며 날개를 하나씩 떼어보고 다리를 떼어보고 마지막에는 머리까지 떼는 순수한 잔인함. 영상물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드라마의 영향은 유해하다.


북유럽의 범죄물이 흥행하는 이유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범죄가 실생활에 와 닿지 않으니 그걸 영상물로 즐기고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성 살해라는 범죄 장치를 자극제와 도구로만 사용하기에는 전 세계의 여성범죄는 끊이질 않고 일어나지 않나.

나는 이 드라마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3. 캐릭터 묘사

극 중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누구 하나 제외할 거 없이 아주 훌륭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캐릭터의 짜임새는 주인공들이 가장 탄탄하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로 주인공과 멀어질수록 그 완성도는 덜해진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묘사에 강강만이 있다. 그 때문에 피로도가 상당하다. 전부 의심스럽고 수상하고 화를 내며 서로를 의심한다. 차라리 두 시간 정도의 영화였다면 무거운 무게감을 버틸 수 있었을 텐데 한 시간씩 열 번을 호흡이 긴 드라마로 매번 강강강의 서사와 분노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래서 극의 주요 여성 캐릭터  은 시선을 더 잡아끈다. 오지화를 연기하는 김신록 배우는 등장인물  누구보다도 캐릭터와 일치되어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눈빛과 행동 목소리 오지화라는 인물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주인공을 문주경찰서로 오게 하고 사건의 경위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더 보고 싶었다.

연극무대에서 대사 몇 마디만 하고 무대를 스쳐 지나가기에는 배우가 주는 존재감이 컸다.


 드라마엔 비밀의 숲의 한여진이, 마인드 헌터의 웬디가 없다. 주인공인 남자 캐릭터와 비등하게 존재하고  행동하는 여성 캐릭터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눈물과 괴로움이 극에, 그리고 시청하는 나에게 안착하지 못하고 붕붕 떠다닌  아닐까 싶다. 그저 두 캐릭터의 캐미를 위해 이용당하는 게 여성 살해사건인가 싶었다.



비단 이런 이유가 범죄 수사물인 드라마 괴물에만 해당하진 않는다. 내가 본 대부분의 범죄물들은 여성의 죽음을 소비하고 손을 탁탁 털고 그냥 떠나버린다. 그 묘사 방법이 건조한지, 집요하고도 상세한지의 여부는 영상물이 나에게 길티 프레져가 될지 길티가 될지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죽음을 내가 북유럽인들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즐길 수 있나? 보고 나면 어딘가 찝찝함은 계속 남아있다.

 

일주일 전에는 실제로 여성이 살해당한 충격적인 뉴스를 보고 악몽을 꾸다 깰 만큼 괴로워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했다.

앞으로 나는 장르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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