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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23. 2021

어부바 사랑

내게는 오래된 펜던트가 하나 있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주었다. 은색 펜던트에는 어린 예수를 업고 가는 크리스토 폴 성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외할머니는 성 크리스토 폴 이야기를 내게 자주 들려주었다. 크리스토 폴과 외할머니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업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토 폴은 사람들을 업고 강을 건너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간 거인이었다. 그는 자기보다 더 힘센 사람이 나타나면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어느 날, 손님 가운데 어린이가 있었다, 아이를 업고 강을 건너려던 그가 물속에 들어가면 갈수록 몸이 더 무거워서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어린이가 말했다. “너는 지금 전 세계를 옮기고 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 이후 크리스토 폴은 예수를 따랐고, 동행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내 나이 열 살 때였다. 벚꽃이 활짝 핀 봄날, 나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흰색 화관과 원피스를 입고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성당 안은 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외할머니는 꽃다발을 들고 내 곁에 오셨다. 글라라, 주님의 자녀로 태어난 걸 축하해. 외할머니는 세례명으로 나를 불렀고, 네모난 은색 펜던트를 꺼내 내 목에 걸어주었다. 나는 기분이 말캉말캉했다. 많은 사람이 축복해 주었다. 그 인파를 뚫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펜던트에서 잠시도 손을 떼지 못했다. 묘한 여운이 감돌았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펜던트였다. 그날 밤 나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엄마는 연년생으로 삼 남매를 낳으셨다. 나는 첫째였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다. 밤에도 운전하러 나갔던 아버지는 집에 있는 날이 드물었다. 외가는 시내버스로 삼십 분 거리에 있었다. 엄마는 삼 남매를 데리고 외갓집에 자주 갔다. 외가에 갈 때마다 한 달, 길게는 석 달까지 머물렀다.

  나는 자주 칭얼거리는 네 살 아이였다. 고집도 세고 말을 듣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엄마의 사랑을 동생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고 싶어도 두 동생이 차지해서 뒤로 밀려났다. 그럴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었다.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만 울라며 매를 꺼냈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 곧장 달려온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달래주었다. 그리고는 엄마를 야단쳤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오면 안심이 되었는지 아무 말 없이 동생들에게 다가갔다. 외할머니는 “어부바.” 하면서 내게 등을 내밀어 주었다. 나는 외할머니 등에 곧장 업혀 해맑게 웃었다. 외할머니는 포대기를 꺼내 나를 감쌌다. 외할머니의 등은 무척 따뜻했고 편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집 근처로 산책하러 다니기도 했고, 경로당에 갈 때도 있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에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외할머니는 나를 업고 다닐 때마다 기도문을 읊었다. 기도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잠이 솔솔 왔다. 그리고 뒷짐 진 할머니 두 손에 묵주가 들려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외가는 함석지붕 위에 슬레이트를 덧댄 시골집이었다. 겨울에는 웃풍이 심했다. 외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깜깜한 부엌에서 전구를 밝히며 하루를 시작했다. 부엌과 이어진 안방에서 우리 가족은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모여 단잠을 잤다. 나는 잠귀가 밝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쉽게 눈을 떴다. 외할머니가 옷을 입고 나갈 때부터 잠은 달아났다. 몇 번이고 뒹굴뒹굴하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는 부뚜막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마솥 두 개가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반질거렸다. 부뚜막 아래 아궁이에는 참나무가 타닥타닥 타고 있었다. 부뚜막 한쪽에 초가 있었다. 벽에는 십자고상이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외할머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서 들어가, 할머니가 손짓했다. 그러나 나는 들어가기 싫어서 할머니 목에 조용히 팔을 걸어 등에 기댔다. 외할머니는 내 엉덩이를 팡팡 치고는 어부바를 해주었다. 외할머니의 자장가는 언제 들어도 달콤한 초콜릿 같았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정신이 말똥말똥한 나를 내려주었다.

  “불은 위험한 거야. 만지면 앗, 뜨거워.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해!”

  “네.”

  나는 아궁이 앞에서 쪼그리고 앉았다. 외할머니는 차가운 가마솥에 물을 붓고 데웠다. 두껍고 둔탁한 가마솥은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았다. 증기 기차처럼 하얀 김이 사방에서 뿜어 나왔다. 가마솥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자, 할머니는 아궁이에 부지깽이로 휘저어 불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요란하던 가마솥도 조용해졌다. 해가 떠오르자, 빛이 부엌문 안까지 들어왔다. 외할머니는 준비했다는 듯 부뚜막에 있던 초에 붉을 밝혔다. 십자고상이 환하게 빛났다. 외할머니는 십자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였다. 기도 소리는 내 귀에 들릴락 말락 했다. 나는 신기해서 십자 성호를 따라 그었다. 그 모습이 외할머니에게 웃음을 주었다. 할머니는 내 조막손을 잡고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도 손을 만들어주었다. 외할머니가 알려주는 모든 손짓은 재미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외가에서 이십 분 거리에 성당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업고 평일 낮 미사에 참여했다. 성당에서 나는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성당과 첫 인연을 맺은 건 그때부터다. 외할머니를 두고 성당 사람들은 젬마 자매님이라고 불렀다. 성당은 볼거리가 많았다. 나는 호기심을 갖고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유독 성물방에 눈길이 갔다.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묵주와 성상들은 신기 그 자체였다. 외할머니는 나를 업고 성물방에 있는 물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와중에 유독 반짝이는 목걸이가 있었다. 크리스토 폴 성인의 일화가 담긴 펜던트였다. 그림을 보고 할머니와 똑같아.라고 손짓했다. 외할머니가 웃었다. 펜던트가 갖고 싶어서 자꾸 손을 뻗었다. 외할머니는 세례 받으면 그때 사줄게.라고 말하고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외할머니는 집에 와서 이 일을 엄마에게 말했고, 엄마는 눈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눈만 끔벅거리고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다른 놀이에 빠졌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내게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리고 틈틈이 크리스토 폴 성인이 누군지 알려주셨다. 내가 남자였다면 아마도 세례명을 크리스토 폴이라고 지었을 만큼 성인의 삶은 매력적이었다. 

  외할머니의 직업은 옷을 파는 보부상이었다. 나이는 오십 대 중반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에게 자식은 남매가 전부였다. 아들은 십 대에 집을 나가서 소식이 끊긴 지 오래였고 엄마는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외할머니는 매우 가난했다. 시골집도 남의 땅을 빌려 지은 집이었다. 혼자 남은 외할머니를 생각해선지 엄마는 결혼하고 신혼집을 외가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 장만했다. 그리고 수시로 찾아뵈었다. 외할머니는 다리 건강이 나빠지면서 장사를 그만두었다. 그 와중에 외할머니가 마음 둘 곳은 성당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자주 다퉜다. 엄마는 아빠의 벌이가 시원찮다며 맞벌이에 나섰다. 엄마의 일은 식당 찬모였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우리 집에 불렀다. 외할머니가 오면 나와 동생들은 신이 났다. 외할머니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 전국 팔도를 돌며 장사했던 일과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외할머니는 요리 솜씨도 뛰어났다. 외할머니 음식 중의 최고는 콩비지 찌개였다. 반찬이 없어도 콩비지와 간장을 섞어 흰밥에 쓱싹쓱싹 비벼 주셨던 그 밥맛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외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은 행복이었다. 무엇보다 나와 동생들은 외할머니의 어부바를 사랑했다. 내 몸이 커지면서 어부바는 동생들 몫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외할머니 어부바는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외할머니 허리 건강에 무리가 온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에 아빠 운수업이 잘 풀렸다. 엄마는 다시 전업주부가 되었고 우리 곁에서 지냈다. 그런데 외할머니에게 안 좋은 소식이 있었다. 치매라는 반갑지 않은 병이 찾아왔다. 치매는 외할머니를 아이로 만들었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엄마’하고 부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엄마는 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할머니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그러나 내 몸은 더 뚱뚱해지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똥오줌을 못 가렸다. 엉덩이에 기저귀를 차고 다녔다. 집안에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외할머니는 똥을 손으로 짓이겨 벽과 장판에 묻혔다 그 광경 앞에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집을 나가고 싶었다. 외할머니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엄마는 참으라고 했지만, 사춘기 소녀가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잠시 외출했을 때였다. 외할머니가 내게 오더니, 나를 보고 ‘엄마, 엄마.’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빨리 엄마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부바, 어부바’하고 두 손을 뻗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외할머니가 나를 업어 키워주었던 옛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외할머니가 너무 가여웠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고, 외할머니 앞에서 나는 등을 돌려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 넓은 등을 당신 앞에 보였다. 외할머니가 ‘엄마, 엄마’ 하면서 안겼다. 한없이 작아진 할머니 몸을 두 손으로 바싹 끌어당겨 힘껏 업었다. 그 행동은 나의 첫 어부바였다. 외할머니 몸은 너무 가벼웠다. 다정다감했던 할머니가 아기가 되었다. 나는 한동안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외할머니, 크리스토 폴 성인 알아요?”

  나는 외할머니가 자주 들려주었던 성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계속 ‘엄마, 엄마’라는 단어만 중얼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외할머니를 업고 서성였다. 엄마가 돌아왔을 때, 나는 엄마의 두 손을 부여잡고 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울어야만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외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지금쯤 외할머니와 크리스토 폴 성인이 하늘나라에서 만나 서로 업어주겠다고 난리를 피우지 않을까? 그만큼 두 사람은 많이 닮았다. 

  외할머니의 어부바 사랑이 있었기에 나의 유년 시절은 따뜻했고, 인고의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업을 때마다 외할머니와 크리스토 폴 성인 이야기는 단골손님처럼 빠뜨리지 않게 된다. 어부바는 상대방을 닮게 하는 힘이 있다. 외할머니에게 어부바는 기도였다. 사람과 사람이 몸으로 전하는 기도, 어렵고 신산한 삶에서 사랑을 잃지 않는 비법이었다. 그게 외할머니의 어부바였다. 어린 나에게 할머니의 등이 유난히 따뜻하고 편안했던 이유도 바로 그 충만한 기도의 힘 때문 아니었을까? 이제 그 어부바 사랑을 내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하련다. 그게 외할머니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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