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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Oct 26. 2024

단점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어른의 글쓰기

초등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교실로 바이올린을 시켜주려고 엄마가 신청서를 써주셨다.


"내일 선생님이 방과 후 교실 신청서 내라고 하면 이거 드리면 돼."


아주 간단한 미션이었다. 그날 종례시간에 선생님이 방과 후 교실 신청서 써온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다. 두리번거렸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어쩌지. 나 혼자 손 들기는 너무 부끄러운데...'


결국 손을 들지 못했고, 엄마는 당연히 신청이 됐을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왜 바이올린 교실에서 아무 말이 없을까? 신청서는 잘 낸 거지?"

"음... 몰라!"


뭔가 수상쩍었던 엄마는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고 그제야 손 드는 게 부끄러워서 신청서도 못 낸 내 행적이 드러나고 말았다.




부끄러움, 수줍음 같은 단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웅얼거리지 말아라. 또박또박, 씩씩하게 말해라.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크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잔소리들이다. 왜 이리도 부끄러움이 많은지, 항상 그런 내가 스스로도 참 답답했고, 숨기고만 싶은 모습이었다. 쭈뼛거리고 있는 내게 "너도 저기 가서 어울려봐."하고 등 떠밀릴 때면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얘져 숨고만 싶었으니까.




어느덧 훌쩍 큰 내가 8살 그때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대도 손을 드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나는 여전히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다만 지금은 그런 나의 모습이 영 싫지만은 않다.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는 수줍음이 많아서 언제나 용기 내는 사람이었다는 걸. 남들은 별수롭지 않게 하는 일들도 힘겹게 용기 내 해냈고, 그 힘으로 이만큼 살아올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런 나에게 타박보다는 칭찬을 건네고 싶다.


너는 언제나 용기 내며 사는 사람이었구나.
부끄러워도 피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씩씩하게 이겨내며 살았구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30년 넘게 견디며 살아보니 결국 씩씩한 용기가 됐다. 그래서 이제는 좀 수줍어해도 괜찮다는 걸 안다. 수줍음을 타도 괜찮다는 걸 아는 나로 살아가는 앞으로의 인생은 전과 다를 것이다. 그게 참 기대가 된다. 수줍은 나라서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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