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 울릴 배경음악을 틀기 위해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했다. 그랬더니 유튜브 뮤직을 무료로 사용해 보란다. 기존에 쓰고 있었던 음악 어플과 유튜브 뮤직이 많이 달라서 낯설었고 바꾸고 싶지 않았지만, 매달 정기결제되는 사용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유튜브 뮤직을 써보기로 했다.
유튜브 뮤직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벌써 사용한 지는 1년 가까이 됐을 텐데도. 나만을 위한 곡이라며 알아서 선곡을 해주는데 썩 내 취향인지도 모르겠고,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듣고 지나간 노래들의 기록이 남지 않아서 무슨 곡을 들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어플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아서 기능이 있는데도 못쓰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나. 노래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도 아니니 이대로 체념하고 운전할 때마다 뭔지 모를 노래들을 들으며 다니던 날이 이어졌다. 어느 평범했던 출근길,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힙합과 팝송들이 이어지던 중 내 마음에 쏙 드는 멜로디와 가사가 고막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이대로 노래가 다 흘러가면 또 무슨 곡이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갈게 뻔했다. 급히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고 빨간 신호등 아래 브레이크를 밟은 채 곡의 제목과 가수를 확인했다. <원슈타인-비밀의 화원>. 원슈타인의 독특한 음색은 워낙 좋아했지만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감성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감탄했다. 어쩐지... 찾아보니 리메이크 곡이었다. 나는 모르고 지나갈 뻔한 옛 노래를 요즘 감성으로 다시 해석해 주는 이런 리메이크 곡들을 정말 사랑한다. 내 귀가 정확히 그런 곡을 걸러준 것이었다.
이번주 어른의 글쓰기 미션은 '예술적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세 번 이상 반복해 들어보면서 한 주간의 스트레스도 풀고 가만히 눈을 감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어찌나 간단하고 행복한 미션인가! 하며 당장 '비밀의 화원'을 틀었다. 귀엽고 경쾌한 멜로디에 몸도 마음도 실으려는 찰나.
'아, 그 소모품 주문했던가? 내일 저녁 약속 때는 무슨 옷 입고 나가지? 이따 아빠한테 전화해서 다음 달 일정도 물어봐야 하는데. 그 강의는 언제까지 들어야 했더라?'
온갖 생각이 노랫소리를 비집고 들어와 결국 감았던 눈을 뜬 채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휴대폰 캘린더를 봤다가, 안절부절못하며 노래를 듣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다음날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길래 잠깐만, 딱 3분만 꾹 참고 노래만 들어보자... 마음먹었는데, 밀려오는 생각들을 막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중에서.
그래도 미션이라니까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노래를 듣고 또 들어봤다. 다행히도 날이 갈수록 온전히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늘었고, 언젠가부터는 노랫소리에 맞춰 고개를 까딱까딱, 몸을 흔들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노래에 흠뻑 빠져 즐겨본 적이 언제였나.' 싶게.
고작 3분 16초. 하루 24시간이 1440분인데, 그중에 3분 남짓 여유를 내는 게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일 줄 꿈에도 몰랐다. 몇 날 며칠을 노력한 끝에 이제 3분은 거뜬히! 어떤 날은 10분도 넘게 아무 생각 없이 노래만 들을 수 있게 됐다.
매일 해야하는 일들에만 치이듯 살던 나를 발견하고, 잠깐씩 멈추는 연습을 한 2주간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미션 그대로 예술적 감성을 무사히 회복시킨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걱정 없이, 음표, 향기 나는 연필, 일기, 어깨, 실수투성이, 아침 하늘빛의 민트향, 꿈, 마음, 그대,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