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정도 잊을만하면 오시는 환자분이 계셨다. 그리 가끔 오시면 보통 기억이 가물가물 하기 마련인데, 이 환자분 만큼은 확실히 기억이 났다. 호소하시는 증상이 너무나 다양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등짝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아침마다 힘들어요. 어깨 좀 만져봐 주시겠어요? 엄청 딱딱하죠?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속이 답답해서 소화도 하나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자꾸 소변이 마렵고 아래가 찌릿찌릿 아픈 것도 같아요. 머리도 항상 멍하고 무겁고 눈도 떨리는데 어떻게 해야 해요?"
이렇게나 아픈 곳이 많으신데도 꼭 한 달에 한 번 침을 맞으러 오실 뿐, 자주 내원해서 치료받으라는 말에도, 다른 치료를 더 해보자는 말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그저 신세한탄을 하고 싶으신 건가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심신증(心身症)인 것 같았다. 심신증이란 정신적인 원인으로 발생되는 신체적인 질환을 말한다.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그걸 견디어 내다가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드러내는 여러 가지 증상들, 그러니까 마치 화병처럼 말이다. 그래서 환자분이 오실 때마다 어떤 부분이 불안하신지, 최근 신경 쓰이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진 않으신지 여쭤봐도 자세한 이야기 하기를 꺼려하셔서 더 이상 접근하기 어렵던 차였다.
그렇게 환자분을 뵌 지 7~8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침을 놓으며 오늘은 어떤 증상이 있으신지 하나씩 들어보고 있었다. 솔직히 무력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이곳에 오셔서 뭘 원하시는 걸까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았고, 내가 하고 있는 치료가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환자분께서 처음으로 불안한 마음에 대한 힌트를 던져주시는 게 아닌가!
"사실은 아들 때문이에요. 제가 불안하고 초조한 거요..."
그 순간 직감적으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으면 치료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리란 걸 느꼈다. 이 힌트를 놓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했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때일수록 기본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료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문제점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고, 나의 역할은 그 힘을 발견해 유지하고 확장시키면서, 환자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는 일이다. 그래서 결국 "뭐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실까요?"라는 질문 대신 다른 질문을 택했다.
"oo님에게 아드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그러자 환자분의 낯빛이 금세 환해지는 게 아닌가.
"우리 아들이 키가 180cm에 몸무게가 90kg 정도 나가요. 엄청 듬직하죠. 그 아이를 보기만 해도 입이 귀에 걸릴 것처럼 미소가 지어져요."
답을 듣는 순간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하지만 겉으로는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oo님에게 아드님은 참 든든하고 생각만 해도 미소 짓게 만드는 존재네요. 그럼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할 때 평소에는 어떻게 견뎌내세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환자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절에 다니거든요. 그래서 불안할 때면 관세음보살을 외고, 다 잘 될 거야 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여요."
그동안 미처 몰랐던 그분만의 힘을 처음으로 발견한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환자분께서 그간 하시던 경험을 어떻게 다른 각도로 이해하고 해석해 볼 수 있을지 생각했다(reframing). 그리고 아주 작은 한줄기 빛이라도 스며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을 건넸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느끼시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텐데, 그럴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외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고 계셨네요. 저는 아직 자식의 입장으로 밖에 살아보지 못했는데, 제가 oo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식의 입장에서 느껴진 것 좀 말씀드려도 괜찮으실까요?"
환자분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작은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하셨다.
"만약 저의 부모님께서 저를 보면서 oo님이 말씀해 주신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단 걸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뒤에 너무 든든한 백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떤 일이든 이겨낼 힘이 생길 것 같아요. 아마 oo님의 아드님도 그렇지 않으실까요?"
그 순간 환자분의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툭 흘렀다. 매번 오실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끊임없이 이야기하시던 많은 호소들도 잦아들었다. 물론 이 순간 이후로 한 번에 환자분의 증상이 싹 사라지는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환자분께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걸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보고 있다.
이 환자분과의 긴 여정을 통해 한 사람을 치료하는데 얼마나 큰 인내심이 필요한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간들도 속에서도 환자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꼭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야만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배웠다.
무엇보다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잘 살고 싶어 하는 의지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resource)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내가 환자를 끌고 가려할 게 아니라 환자의 속도에 발맞추면서 사소한 것이라도 관찰하고, 발견해 내려 애쓰는 게(loving beingness) 얼마나 중요한지를 책 속의 이론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