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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May 07. 2016

인간의 손을 더한, 원시림의 정원

스리랑카의 잊혀진 정원, 루누강가


루누강가
 인간의 손을 더한, 원시림의 정원



루누강가(Lunugana), 소금의 강이랑 뜻이다. 현지어로 소금을 뜻하는 루누(Lunu)와 강을 뜻하는 강가(Ganga)가 합쳐진 말이다. 강이 바다와 만나기 때문에 가끔 소금물이 강 상류까지 올라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소금의 강은 바와의 정원 앞을 가로질러서 벤토타 지류까지 흐른다.

소금의 강, 루누강가라는 이름에는 아주 솔직하게, 그 강의 성격을 잘 담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 우리에겐 잊혀진 생경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은 어디일까? 내 생애 최고의 건축과 자연을 만나게 해 준 곳은 다름아닌 인도 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였다.




루누강가

스리랑카가 낳은 스타 건축가의 집


루누강가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버스를 타고 타운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은 절대 절대 무리다. 멀기도 멀지만, 어디인지 찾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루누강가는 아주 외진 곳에 있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이런 후미진 곳에 집을 지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가는  순간, 스스로 놀라게 되는 자신을 만날 것이다.

'세상에, 이런 외진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 줄이야...'

당최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을 곳, 이곳은 바로 루누강가다. 루누강가는 바와가 남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개인적으로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루누강가는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찾아 가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벤토타 타운에서 내려 트리윌(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중간격인 바퀴 세 개 달린 운송수단)을 잡아타고 달린다. 타운에서 강을 가로지르고, 메인 도로에서 한참을 벗어나 달린다. 스리랑카 어디서나 볼법한 마을 어귀 몇 개를 지나치자, 집도 절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논과 밭이 숲과 질서 없이 공존하는 풍경이 보일뿐이다. 그저 그렇게 흔하디 흔한 스리랑카의 농촌마을을 지나쳐갔다.


작은 차 하나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은 논두렁길을 먼지 풀풀 날리며 바퀴 세 개 달린 차가 한참을 달렸다. 문득 이 운전기사 아저씨가 목적지를 제대로 알고나 가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루누강가의 허름한 출입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난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가난한 농촌의 여염집을 지나왔고, 논두렁을 지나왔고, 고무나무 숲을 지나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겨우 허름한 콘크리트 대문이었다. 그것도 있으나마나한 대문,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경계가 허술한 구조물이 말이다. 오래된 콘크리트는 덥고 습한 기후를 견뎌내며 이끼가 끼고 부슬부슬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루누강가의 입구, 방치된 핵폐기물 공장같이 생겼다



이런 산골에, 콜롬보에서 약 2시간이 넘는 거리에 바와의 마지막 작업실이자 정원이 있다. 나이가 들면 으레 복잡한 도시를 떠나 풀냄새 나는 곳을 찾는 것이 인간 노화의 정석일지도 모른다. 이런 원시림 같은 곳을 바와는 또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의문만 가득 생긴다. 허름한 시멘트 덩어리로 만든 출입구, 이끼가 끼고 덩굴이 관리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자라고 있다. 닫힌 철문 앞에 서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담을 넘어야하나?"

초인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보세요~~~~"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철문 넘어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집도 한참의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까운 집까지 들리게 소리를 지를려면 엄청나게 목소리에 힘을 주어 질러야 했다. 얌전한 내가 그럴순 없지 않은가? 대략 난감한 상황이 닥친 셈이다.


그렇게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주위를 왔다갔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더니, 트리윌 운전기사가 그제야 나에게 힌트를 준다. 그리고 손을 들어 허공의 어느 한 지점을 가르켰다. 그 손을 따라 시선이 머문 곳엔 철종이 보였다. 철문 위에 종이 달려있었다.  

이걸?’


조금 망설이다, 종에 달린 줄을 아래로 당겼다. 일순간 고요했던 숲의 정적이 깨졌다. 생각보다 큰 종소리에 놀라 머쓱해졌다.

'이거 꽤나 괜찮은 아날로그 시스템인데...'

그러나 복잡한 도시에서 이런 초인종을 걸어 놨다간, 분명 민원을 접수한 경찰이 우리집을 방문할 게 뻔했다. 종소리의 여운은 꽤 오래 갔다. 크게 울린 종은 진동을 남기며 천천히 작아져 갔다.

종을 울리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깊은 숲속에 있는 집에서 한 관리인이 나타났다. 그는 아주 느리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 어떤 인사도, 한 마디 말도 없이...


마침내 바와의 정원에 들어서게 되었다.



오랜 시간

바와가 건축을 실험한 곳


바와의 정원은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소금의 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아주 적막하고 아주 고요하다. 마치 이곳이 딴 세상인 것만 같이 느껴질 정도로 이제까지 내가 스리랑카에서 봐왔던 번잡하고 소음으로 가득찬 도시의 모습하고는 전혀 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잃어버린 정원이 이곳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에게 버려진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장소를 발견한 것만 같다. 그가 가장 사랑한 곳, 그가 가장 오랜 기간을 다듬고 다듬은 곳. 바로 이곳은 바와의 오랜 건축실험의 장이자 휴식처였다.

이곳은 인간이 꿈꿀수 있는 완벽한 공간에 가깝다. 마치 우리가 알던 세상과 선을 긋고 여기서 부터는 다른 곳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유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변호사를 꿈꾸던 한 젊은이는 어떻게 건축가가 되었을까?


바와는 법률을 공부했고,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누구나 원하는 엘리트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문득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을 유럽을 여행하며 젊음의 시간을 소비했다. 마치 먼 미래 따위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그리고 다시는 따분한 삶을 살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여러 곳을 방문하던 그는 이탈리아의 한 정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바와는 그 정원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바와는 후에 스리랑카로 돌아가면 이탈리아식 정원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반한 정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정원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스리랑카에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이 원하던 장소, 지금의 루누강가를 친형의 소개로 발견하게 된다. 이곳을 방문하자마자 그는 이곳이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정원을 만들 유일한 장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와는 땅을 사들였다. 그러나 그에겐 문제가 있었다. 그건 그가 건축과 관련된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고심 끝에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닌, 건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건축가를 배출한 영국의  AA스쿨에서 바와는 건축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왔다.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그건 바로, 이탈리아식 정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정원인 루누강가가 만들어졌다.


자신이 원하던 완벽한 장소에서, 바와는 자신이 머릿속으로만 구상해 왔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단순하고 간절했던 소망은 그를 건축가의 길로 이끌었다. 잘나가던 변호사에서 직업을 바꿔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그를 건축가가 되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루누강가다. 한 개인의 전설과 작은 역사를 간직한 정원은 그 이름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무나무 농장이

정원이 되기까지...


1948년 바와가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고무나무 농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후 언덕을 조성하고, 경사지를 다듬고, 나무를 심었다. 대지는 사람의 걸음걸이에 알맞게 조성되었다. 오래된 농장의 길은 묻혔고, 새로운 길이 열렸다. 모든 것은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고 다듬어져 갔다. 마치 땅이 풍화되어 대지의 형태가 바뀌듯이. 아주 천천히, 자연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려는 듯이, 조금씩 조금씩 정원은 가꾸어져 갔다.



자연을 압도하지 않는 바와의 건축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모호하다. 건축물의 대부분이 경사에 순응하고 있으며, 자연을 압도하지 않을 정도로 규모도 작다. 마치 이곳의 주인은 건축물이 아니라, 밖으로 열린 자연인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낮게 자란 풀 위에 나무가 오브제를 이루고, 지평선에 닿는 강과 강 건너의 산이 바라보는 곳으로 창을 열리고 경계가 생겨났다. 이전부터 있었던 자연의 풍경이었지만 그의 손이 더해지자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는 자연을 돋보이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 장소에 어떻게 건물이 생겨나야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곳을 걸었다. 바와가 다듬은 루누강가를 걸었다.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쳤다면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적막한 정원을 혼자서 걷고 있었다. 다행히 누구도 나의 감정 골에 접근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얼굴을 들어 그 바람에 얼굴의 온기를 식혀냈다. 감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을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이 만든

파라다이스,


바와는 이곳에서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공동 작업을 즐겼으며, 그러한 흔적은 정원과 건축물 곳곳에 남겨져 있다. 건축과 예술계의 만남은 그 당시 열악했던 스리랑카의 문화활동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시도였다. 사실 바와가 세상을 떠나고, 스리랑카의 건추계는 물론이거니와 예술계 또한 그 화려했던 시절은 끝이 났으며, 끝없이 성잘할 것 같았던 성장세도 숨을 멈추고 말았다. 한 사람의 죽음이었지만, 그가 스리랑카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주말이 되면 바와의 친구들이 이곳으로 몰려 들었다. 정원에서는 강이 내려다 보였다. 자신들의 이상을 공유하고, 웃고, 떠들고, 차를 마시던 정원. 이제는 오래된 흑백 사진으로만 그날의 즐거움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루누강가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천재 건축가의 파라다이스이자, 그들만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지금의 이곳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어딜 가더라도 소란하고 복잡했던 스리랑카의 길거리가 무색할 정도다. 이곳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다. 열대우림 속 공기는 마치 느리게 부유하는 먼지처럼 나의 폐 깊숙이 와서 닿았다가 빠져나간다. 그 공기 속 알갱이가 느껴질 정도로 습기가 가득하다. 빠르던 발걸음은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속도를 늦춘다. 시선은 힘이 빠져 마치 약이라도 한 듯 멍해지다가 초점을 맞추길 반복한다. 숨을 쉬는 게 자연스럽다. 얍삽한 생각만 주로 하던 머리도 잠시 작동을 멈춘다.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시간이 멈춘

공간을 걷다


그가 앉아서 휴식을 취하던 의자가 비어있다. 그리고 그가 앉아서 식사를 하던 탁자도 비어있었다. 주인이 떠나자 그를 찾아오던 친구들의 발걸음도 멈추었다. 다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찾아오는 마니아들의 비밀스러운 명소가 되었다. 그는 떠나고 없지만, 그가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던 장소에서 그의 모습을 그려내기는 어렵지 않다.

이곳에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그저 그이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마치 차원이 다른 공간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1950년대 초반에 바와는 루누강가 정원 프로젝트에 열중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야심찬 디자인을 완성하기에는 돈이 부족했고, 그가 명성을 더해가던 60년대와 70년대에는 밀려드는 프로젝트로 시간이 부족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루누강가 프로젝트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의 건축작업은 콜롬보와 이곳 루누강가를 오가며 진행되었다.


바와의 작업실이었던 <정원의 방>



타인의 취향 따위

고려하지 않은 곳


1983년도에 지어진 정원의 방(Garden Room)은 바와의 주된 작업실이었다. 입구를 통해 오솔길을 올라 방문객을 위해 지어진 2층 건물 밑을 지나면, 동쪽 테라스 근처에 위치한 곳에 바와의 작업실이 있다. 이곳에는 넓은 공간에 업무를 보던 긴 책상이 놓여 있고, 밖을 조망할 수 있는 창과 의자가 있다. 오로지 그 혼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혼자만 작업하기 위해 만들어진 긴 책상, 혼자만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의자가 남겨져 있다. 타인을 들일 계획이 없었기에, 타인의 취향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정원의 방> 바와의 책상


이렇게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이 낯선 나라, 이 가난한 나라에 있다니. 늘 공부하고, 늘 동경하던 건축이 있던 미국, 일본, 유럽이 아니라 인도 밑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에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눈을 뜨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이제까지 공부를 해오던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왜 우리는 미친듯이 미국을, 일본을 동경하며 살았던 것일까? 그 결과는 뭘까? 결국은 제프리바와와 같은 건축가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하얀 다고바가 바라보이는

화장실


시나몬 언덕(Cinnamon Hill) 위에 오르면 저 멀리 산 중턱에 위치한 절의 다고바(불교 사원의 탑)가 보인다. 푸룬 숲속에 깊숙히 묻혀 있는 흰색 다고바를 눈이 그렇게 좋지 않는 내가 찾기는 쉽지 않았다. 현지인이 손가가락으로 연신 다고바를 가르키지만, 미간을 찌푸려보아도 쉽사리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은, 그러니까 그곳에 흰색 둥근 탑의 다고바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곳에 다고바가 보였다. 다고바는 시선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울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시나몬 언덕에 있는 한 건물의 화장실에는 바와가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에도 이 다고바를 조망할 수 있도록 조그마한 창까지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바와는 이 다고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다고바가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작게 보일 뿐인데도 말이다. 화장실에 앉아 일을 보는 그 순간, 작은 창을 통해 바라보는 그 다고바는 어떤 느낌일까? 갑자기 그 화장실을 찾아 앉아 보고픈 강한 열망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루누강가를 안내하는 남자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저기... 그 바와가 다고바를 보면서 큰 일을 봤다는 그 화장실, 저도 한번 사용해 볼 수 있을까요?"

언제 다시 이곳을 올지 기약할 수 없는 나에겐 부끄러움보다는 궁금함을 충족시키는 일이 더 급했다.

그러나 그는 딱 잘라 안 된다고 거절했다.

'별... 화장실 한번 쓰자는 거 가지고, 유난이네.'

그리고 딱히 무엇 때문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지에 대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그냥 나를 앞서서 다른 장소에 서둘러 가더니, 내가 따라오지 않자 멀리서 잎사귀나 뜯으며 내가 오기를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와는 정기적으로 사원에 후원금을 보내 다고바가 흰색으로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도색비용을 지원했다. 다만, 그가 바라보는 다고바의 부분, 즉 절반의 비용만을 후원했다고 하니, 그를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야박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 독특한 사람이야.’

아마 바와에겐 자신의 정원 밖 멀리 있는 다고바도, 정원 옆을 따라 흐르는 강도, 저 멀리 강 건너 열대우림도, 불어오는 바람까지 모두가 자신의 건축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정원을 따라 거니는 일은 상당히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각각인 지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정원을 걷다보면 시선에 따라 만들어지는 다른 분위기가 즐겁다.





이곳에서 일기예보 따위는

가볍게 잊어주세요


이곳의 기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도대체 그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가 없다. 스리랑카에 살면서 그 누구도 뉴스에서 일기예보를 보는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스리랑카의 기상을 예측하는 기술이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스리랑카에서 날씨를 예측한다는 것은 정말 쓸잘데기 없는 일에 불가하기 떄문이지 않을까?

정말 이곳은 시시각각으로 날씨가 변하고 시도때도 없이 비가 온다. 그나마 현지인이 멀쩡한 하늘을 바라보며, '곧 비가 올거야. 그러니 얼른 집에 돌아가라구...'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그럴땐 어김없이 20분 내로 비가 왔다. 그렇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굳이 오늘의 비 올 확율은 60%인지 혹은 67%인지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이곳,

루누강가


열대우림의 후덥지근한 날이 계속되는가 싶다가도, 금방 어두워지고 비구름이 몰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비가 있는 힘을 다해 한껏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감해진 나는 근처에 있는 아무 건물 밑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그 건물은 처마가 깊은 지붕을 가진 집이었다.

비오는 날의 홍차를 좋아한다. 한국에선 홍차를 마시는 습관이 없었지만, 이곳에 와서는 커피대신 홍차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의 홍차 한잔은 정말 궁합이 잘 맞는다. 그날도 나는 홍차를 한잔 시켰다.

처마 밑에 앉아 비가 내리는 밖의 풍경에 바라보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선 북쪽 테라스와 설치된 조각상이 보였다.

그곳엔 나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 난 이곳을 찾은 유일한 방문객인것 같았다. 이곳을 독차지하고 앉아 자연이 주는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었다. 홍차를 날라다 주는 직원의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비 내리는 밖의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빗물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그대로 실내의 공간으로 울린다. 웨이터가 들고 온 차는 인상이 쓰일 정도로 형편이 없다. 그러나 짜증도 잠시. 고요한 적막을 빗소리로 채우는 공간에서 혼자 남겨져 있다. 머리가 멍해지고 생각하기를 멈춘다. 그저 깊은 처마 밑으로 보이는 강과 나무의 단조로운 풍경에 빠져든다. 완벽한 외로움은 완벽한 고요함으로 다가온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은 편안함과 한적한 외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아무도 이해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 고독을 이 세상 누군가도 느끼고 있다는 점에 안도감을 안겨주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갑자기 떠오른다.

'루누강가의 자연이 지금 나를 압도하고 있다.'




비는 한참을 내릴 기세로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새 해가 비치기 시작헀다. 내 기억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날씨는 금세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씩 젖었던 땅이 천천히 말라가고 있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두터워져 마치 아주 섬세하게 얇은 막을 여러 겹 공기 중에 걸쳐 놓은 듯 지나갈 때마다 습기가 느껴졌다.





바와의 아이디어로

가득한 곳


이곳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다. 정원에는 여러 가지 설치물들이 즐비하다. 정원 곳곳에는 16개의 종이 있는데, 넓은 정원에서 바와가 직원을 부를 때 사용했던 종들이다. 울리는 위치를 구분하기 위해 종은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다. 맑고 오래가는 소리가 있는 반면, 짧고 된소리로 듣기 거북한 소리까지 다양하다.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진 종을 듣고 직원은 바와가 어디쯤 있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정원이 워낙 넓으니 전화를 걸어 설명하기도 힘들 게 분명하다. 차라리 이렇게 각 장소마다 다른 음색을 가진 종소리를 듣고 찾아가는 편이 더 편리할 것이다.


엄청나게 큰 정원을 거닐다 곳곳에 숨겨둔 소리가 다른 종소리를 들은 직원이 바와가 있는 장소로 천천히 걸어왔을 것이다. "Sir, 뭘 원하세요?" 라고 말이다.


바와의 정원에는 곳곳에 다른 소리를 가진 종을 설치해 두었다.



또한 그의 많은 동료들이 만들어 설치한 예술작품이 곳곳에 비치되어 오브제를 이루고 있다. 얼굴형상을 한 화분, 고대 중국의 큰 항아리, 해시계, 조각상, 통로의 벽화 등이 산책하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당대 스리랑카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이곳에 집결되어 있다. 현지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호주와 인도의 예술가를 비롯해 해외 예술가와 협업한 작품도 있다.

이 넓은 정원에서 바와는 하루 세끼의 식사를 다른 장소에서 즐겼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괴팍한 노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독특한 시스템의 이 집과 정원은 철저히 바와의 취향을 따르고 있으며, 남다른 그의 생활패턴을 보여주는 곳으로 건축양식부터 작은 소품, 정원배치와 나무까지 그가 한 평생 추구했던 미적가치와 철학이 집약된 곳이다.


 




한 개인의 전설이 된 곳,

소금의 강


1992년 바와는 시나몬 언덕의 가장자리에 또 다른 방문객용 집을 짓는 것을 끝으로 이 정원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었다. 2개의 방을 가진 작은 규모의 집이었다.

바와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시신은 평소 그가 사랑하던 다고바가 내려다보이는 곳인 시나몬 언덕위에서 화장되었다. 스리랑카의 건축계는 큰 스승을 잃었고, 그가 남긴 바와만의 고유한 스타일은 이제는 현대의 스리랑카 건축의 새로운 건축가들에게 재해석되고 있다.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바다 건너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 머물며 밤에 야생동물이 내는 소리에 겁에 질리고, 지루한 삶의 생활을 버티다보면 어느새 찾아오는 고요한 삶에 흠뻑 빠져들고 만다. 방문객들이 남겨놓은 오래되고 묵직한 방문록에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과 그림들로 빼곡하다.




그의 사후, 이 루누강가는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눈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공용건물을 비롯한 정원의 곳곳이 투어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객실로 사용되는 건물은 불행히도 접근이 불가하다. 물론 비싼 숙박비를 지불한다면 말이 틀려지겠지만.


한 개인의 전설이 된 소금의 강, 루누강가는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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